타이밍을 놓친 한나라당 / 안희환
타이밍을 잘 맞추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동일한 말과 행동일지라도 그 말과 행동이 나온 시점이 어느 때인가에 따라서 그 말과 행동이 큰 유익이 될 수도 있고 전혀 유익이 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타이밍을 적절하게 포착하여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양심선언이라는 것을 한다고 할 때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고, 그 양심선언으로 인해 자신이 피해를 보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양심선언을 한다면 그 사람은 용기있는 사람으로 칭찬을 들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다 드러나서 모두가 알고 있는 상황이거나, 제반 여건이 바뀌어 양심선언을 하는 것이 유리해진 상황에서 소위 양심선언을 한다고 떠든다면 조롱거리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것은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가 배가 많이 고플 때 기분 좋게 밥을 사거나 고기를 산다면 환영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가 배고프다고 성화를 할 때 가만히 못 들은 채 하고 있다가 배고픈 나머지 빵과 우유를 사서 실컷 먹은 상대에게 그제야 밥을 사주겠다고 하면 욕을 먹고 말 것입니다. 무엇이든 제때 하는 것이 효과적인 법입니다.
이번 한나라당의 모습을 보면 도대체 생각이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최연희 의원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으로 인해 곤욕을 치르던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 이해찬 총리의 골프 사건으로 인해 여유를 얻었고 더 나아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되었을 때(이런 것으로 공방을 주고받는 것도 지겨운 일이지만) 왜 즉시로 최연희 의원 문제를 다루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최연희 의원을 동정하거나 편 들어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어떤 이유로든 최의원의 행동은 적절하지 못했고 한나라당에 부담을 안겨준 것이 사실입니다. 의원들간의 의리와 친분 문제도 있을 것이기에 쉽게 최의원을 처리하지 못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당 전체를 생각한다면, 더 나아가 얼마 후에 있을 선거를 염두에 둔다면 단호한 조처를 취했어야만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해찬총리의 사의를 받아들인 다음에야 급한 불을 끄려하는 한나라당의 모습은 타이밍을 놓친 채 허우적거리는 모습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박근혜 대표가 있습니다. "사퇴는 개인이 알아서 결정할 일"이라며 여유를 보이다가 뒤늦게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최고 지도자의 결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최연희 의원의 버티기가 언제까지 갈지 모르지만 곧 사퇴를 한다고 해도 이미 한나라당은 좋은 기회를 놓친 셈이 되며 최의원이 계속 버티기를 할 경우엔 한나라당이 타격을 입게 될 것입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한나라당의 모습은 적절한 타이밍을 놓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피해를 끼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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