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 자작시

물이 차 감에 따라/ 안희환

안희환2 2006. 1. 23. 08:22

물이 차 감에 따라/ 안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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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발목에 찼을 때

나는 거침없이 걸어다녔다

마음껏 물을 걷어차도

작은 저항 외엔 느낄 수 없었다.


물이 종아리에 찼을 때

속도가 조금 떨어졌을 뿐

다니는 것에 문제가 없었다

조금 늦어진들 대수일까


물이 허벅지에 찼을 때

물의 흐름이 버거워졌다

가고자 하는 곳에 갈 수 있으나

조금 힘겨운 싸움이 되곤 했다


물이 허리에 찼을 때

종종 휘청이는 몸의 중심

빠른 물살은 피해야했다

물은 하나의 커다란 세력이었다


물이 가슴에 찼을 때

나는 갈 방향을 정할 수 없었다

휩쓸리지 않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무력감이 있었다


물이 목에 찼을 때

물결 따라 흘러가는 날 본다

아차 실수에 물을 마신다

배불러도 마시는 물에 허덕인다


물이 머리 위에 찼을 때

모든 의지는 물 안에 갇히었다

온 몸에 힘을 빼낸 후에야

나는 새로운 호흡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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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이영복님의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