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차 감에 따라/ 안희환
물이 발목에 찼을 때
나는 거침없이 걸어다녔다
마음껏 물을 걷어차도
작은 저항 외엔 느낄 수 없었다.
물이 종아리에 찼을 때
속도가 조금 떨어졌을 뿐
다니는 것에 문제가 없었다
조금 늦어진들 대수일까
물이 허벅지에 찼을 때
물의 흐름이 버거워졌다
가고자 하는 곳에 갈 수 있으나
조금 힘겨운 싸움이 되곤 했다
물이 허리에 찼을 때
종종 휘청이는 몸의 중심
빠른 물살은 피해야했다
물은 하나의 커다란 세력이었다
물이 가슴에 찼을 때
나는 갈 방향을 정할 수 없었다
휩쓸리지 않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무력감이 있었다
물이 목에 찼을 때
물결 따라 흘러가는 날 본다
아차 실수에 물을 마신다
배불러도 마시는 물에 허덕인다
물이 머리 위에 찼을 때
모든 의지는 물 안에 갇히었다
온 몸에 힘을 빼낸 후에야
나는 새로운 호흡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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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이영복님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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