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길이 좁습니다 / 안희환
주님
길이 좁습니다.
나란히 가고픈 친구가 있는데
길이 좁아 함께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일 속삭이고픈 연인이 있는데
길이 좁아 떨어져가야만 합니다.
주님
길이 너무 험합니다.
넘어져 깨진 무릎에서 흐른 피
덩어리진 채 붙어있습니다.
가파른 언덕을 힘겹게 오를 때면
한번의 호흡조차 짐스럽습니다.
주님
저 옆의 넓은 길도 있는데
왜 주님은 좁은 길을 가라십니까?
그래도 묵묵히 길을 걷는 것은
주님이 먼저가신 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이기도 하고요.
주님
때로 눈물이 납니다.
십자가 위에 달리실 때 입으셨던
세마포 옷자락으로 닦아두세요
2000년의 시간 속에 굳은 피
그 흔적에 얼굴을 묻고 싶습니다.
주님
오늘도 걸어가고 있습니다
언제 그 길이 끝이 날지 모르지만
그 길 끄트머리에 집이 있습니다
긴 여정 무건 짐을 벗어버리고
영원히 거할 나의 집이 있습니다
__________
사진은 이영복님의 작품입니다.
__________
충청도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0^
'안희환 자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돌을 버리게나 / 안희환 (0) | 2006.01.27 |
---|---|
마른 나무 아래의 샘 / 안희환 (0) | 2006.01.25 |
물이 차 감에 따라/ 안희환 (0) | 2006.01.23 |
정말로 잃어버린 것은 / 안희환 (0) | 2006.01.21 |
이미 늦어버린 걸까 /안회환 (0) | 2006.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