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에게는 자신을 끔찍하게 아껴주는 어머니가 있었는데 소년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만큼 소년을 사랑했습니다. 따라서 그 어머니는 소년이 원하는 것을 해주기 온갖 수고를 다 했습니다. 소년은 그런 어머니의 보호 속에서 어려운 집안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줄 모르고 커갔습니다.
어느 날 소년은 조그만 볼펜을 하나 가지고 왔습니다. 어머니는 어디서 났냐고 물었고 소년은 친구 것인데 너무 예뻐서 가져왔다고 답을 했습니다. 다만 그것뿐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소년을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그 후로도 마음에 드는 것을 가지고 왔고 어머니는 소년이 자신이 가져온 것을 가지고 기뻐하는 것을 그냥 지켜보았을 뿐입니다.
때로 문제도 발생하였습니다. 소년의 친구가 소년이 가져간 물건에 대해 화를 내기도 했고 친구의 어머니가 와서 항의를 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마다 소년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을 나무라는 사람들에게 분노하였고 사주면 되지 않느냐고 도리어 큰소리를 쳤습니다. 소년은 그렇게 자기를 지켜주는 어머니가 든든하게 느껴졌고 고마웠습니다.
세월이 지나 남의 것을 훔치는데 익숙해진 소년은 도둑질하는 젊은이가 되었습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남의 것을 훔치다가 붙잡힌 젊은이는 급기야 교도소에 가게 되었고 어머니는 불쌍한 자기 아들을 위해 끊임없이 음식을 만들어 갖다 주었습니다. 젊은 아들을 뒷바라지 하기 위해 젊은이의 어머니는 잠을 줄여가며 고된 일을 하며 늙어갔습니다.
젊은이의 교도소행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형량은 늘어갔고 그래도 훔치는 버릇만큼은 끈기 있게 이어나갔습니다. 그런 삶이 반복되다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었기에 사형선고를 받은 아들, 이제 젊음도 다 지나간 그 아들은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집행일이 다가와 교수대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집행관은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소년은 어머니에게 할 말이 있으니 어머니를 곁에 오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펑펑 울던 어머니는 죽음을 앞에 둔 아들 앞에 왔고 사람들은 무슨 감격스런 광경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교수대를 주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곧 경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들은 귓속말을 하는 듯이 어머니의 귀에 자신의 입을 갖다 대더니 어머니의 귀를 물어뜯은 것입니다. 뜯겨나간 귀에는 피가 떨어졌고 귀를 움켜쥔 어머니의 손은 비명소리와 함께 떨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일제히 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빨리 사형을 집행하라고 소리치는 군중들의 눈빛은 어머니의 귓가에 번져가는 핏빛과도 같았습니다.
그 혼돈의 틈바구니 속에서 더 이상 군중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아들의 절규가 있었습니다. “어머니 내가 제일 처음 남의 것을 가져왔다고 말했을 때 그 말을 듣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어머니의 귀가 밉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따끔하게 야단을 쳐주었다면 나는 그것이 나쁜 짓이었음을 알았을 것 아닙니까? 나는 어머니의 그 귀가 너무 밉습니다”.
위의 이야기는 내가 어릴 때 들었던 것인데 워낙 인상 깊게 들었던지라 내용이 거의 다 기억이 납니다. 그 기억을 더듬어 써내려갔으니 처음 들었을 때와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대략 저런 이야기입니다. 아들을 끔찍하게 사랑하였으나 잘못했을 때 단호하게 책망할 줄 몰랐던 어머니의 어리석음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반대되는 실화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제 선배분의 이야기입니다. 그 선배에게는 딸과 아들이 하나씩 있었는데 오래 전 어느 날 어린 딸이 가게에 가서 물건을 슬쩍 가져왔습니다. 선배는 그 사실을 알고는 고민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딸의 잘못을 확실하게 고쳐줄까 하고 말입니다.
사실 이런 문제를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지나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한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여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배는 그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확실하게 딸을 교육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판단이 들은 것입니다.
선배는 딸은 데리고 딸이 물건을 가지고 온 가게로 갔습니다. 겁에 질린 딸은 가게 앞에서 움츠러들었지만 강한 아버지의 손에 의해 가게 안으로 딸려 들어갔습니다. 순간 딸의 눈에는 깜짝 놀랄만한 광경이 보입니다. 자기 아버지가 가게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해달라고 비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딸은 무릎을 꿇은 아버지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잘못이 얼마나 큰지를 알았습니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주체 못한 채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겁을 하며 놀란 가게 주인은 선배를 일으키고는 괜찮다고 아이가 그럴 수도 있는 것이라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 선배의 딸은 어떤 물건도 훔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선배는 그 딸을 위해 가장 소중한 선물을 준 것이었습니다.
사랑한다면 때로 단호해야 합니다. 늘 엄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소중한 자녀들이 훌륭하게 클 수 있도록 바른 가치관과 인생관을 제대로 심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모를 위해서 그리고 자녀를 위해서 꼭 필요한 작업인 것입니다. 잘못을 해도 내버려 두고 그것을 오히려 나무라는 어른과 싸우는 부모라면 세월 지나 그 어리석음의 대가를 지불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려운 것도 없고 막힘도 없는 어린 아이들을 보면서 때로 그것이 당당함으로만이 아닌 무례함으로도 보이는 것은 한 두 사람의 생각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기 자녀들은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만족하면서 한없이 관대하기만 한 부모들은 때로 단호하게 아이들을 꾸짖는 기술을 배워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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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이영복님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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