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간에 가장 필요한 것 / 안희환
여행사에 다니는 나는 업무상 해외 출장이 잦았고 늘 그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해외출장을 갈 때의 일이다. 회사에서 늦게까지 출장준비를 하고 있는데, 동료가 "남편이 허락했어?"라고 물었다.
순간 나는 그걸 왜 허락 받아야 하는지 의아해했다. 남편은 결혼 전부터 내가 해외 출장을 자주 간다는 걸 알고 있었고, 결혼 후에도 계속해서 직장 생활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동료의 말을 건성으로 흘려 들으며 책상을 대충 정리하고 집에 도착했는데, 남편이 그 늦은 시간에 김밥을 싸고 있었다. 긴 비행시간 동안 내가 피곤하고 배고플까 염려해서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남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톡 쏘아붙였다. "기내에서는 냄새도 나지 않는 기내식이 매끼마다 나오는데, 그걸 가지고 들어가면 사람들이 얼마나 싫어하겠어." 기가 푹 죽은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짐을 꾸리는 나를 도와 줄 뿐이었다.
다음날 남편은 공항에 배웅을 나와 건강하게 잘 다녀오라며 내게 쪽지 하나를 건넸다. 비행기에 올라 자리를 잡고 남편이 준 쪽지를 펼쳤다.
"사실 난 한 번도 비행기를 타 본 적이 없어서 기내식이 나오는지, 김밥을 가져가면 안 되는지도 몰랐어. 신혼여행 때라도 꼭 한 번 비행기를 타 보고 싶었는데, 편하게 동해안 일주가 좋겠다는 당신 말에 늘 업무상 지겹게 비행기를 타는 당신의 입장이 이해가 가서 말도 못 꺼냈는데…. 하지만 난 늘 당신이 자랑스러워. 내가 가 보지 못한 나라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당신을 통해 들을 수 있고, 친구들과 대화할 때도 그런 것들이 많은 도움이 돼. 늘 당당한 모습으로 힘차게 앞을 향해 나가는 당신을 정말 사랑해."
여기까지 읽자 나는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그 같은 남편의 배려에 '해외 출장가는 걸 왜 남편에게 허락받아야 되나' 할 정도로 나만을 생각했던 모습이 부끄러웠다. 이번 휴가에는 모든 일정을 다 미루고라도 꼭 제주도에 가려고 한다.
남편이 비행기를 타 볼 수 있도록 남편 몰래 계획을 세우고 있다. 때로는 당연히 알고 있겠지, 당연히 해 봤겠지 하는 일들이 늘 그렇지는 않다는 것과 그런 일들을 통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더욱 깊이 알아 가는 것 같다.
[김정수]님이 쓴 글의 전문이다.
참 좋은 남편을 둔 김정수씨라는 생각을 한다. 나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아마 화를 내지 않았을까? 이기적이고 못되먹은 아내라고. 아마 어떤 분들은 김정수씨의 남편을 나무랄지도 모르겠다. 왜 인생을 그처럼 바보같이 사느냐고. 아내에게 기죽어서 찍소리도 못하고 사는 것이라고...
요즘 들어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서로 이해해주고 용납하고 기다려주는 관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랜 세월 동안 서로 다른 부모 밑에서, 서로 다른 교육을 받으며, 서로 다른 경험을 했고, 서로 다른 인간관계를 맺었는데 그것을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에 비해 공부는 많이 했는데 지혜는 더욱 더 추락을 한 것이다. 그래서 나와 다른 것을 이해도 못하고 견뎌내지도 못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내 아내를 알아왔고 결혼 한 지 8년이 되어가는데도 나는 아내를 다 이해하지 못한다. 아내에게 물으니 아내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어떤 경우엔 내 아내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하고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것은 아내 역시 마찬가지이고. 그때 각자의 반응은 “왜 저래?”가 아니고 “아~ 저런 면도 있구나”이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그렇게 마음을 열고 상대방을 대할 때는 상대가 틀려먹었다라는 생각이 들기보다 나와는 많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이전에 분노하던 것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게 된다. 위에 언급한 김정수씨의 남편은 그런 원리를 잘 알고 있는 사람같다. 아니면 타고난 성품 자체가 성자같은 스타일이든지...
이혼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자식 때문에 참고 산다는 말도 어느새 옛말이 되었다. 주변의 한 여자는 남편과 이혼을 했는데 그리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이혼을 해버렸다. 5살짜리 딸 아이가 있는데 몸이 아픈 친정 엄마에게 맡겨놓고는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 결국 아이만 불쌍해지는 것이다. 아이의 외할머니는 너무 힘들어서 아이를 고아원에 보내거나 입양을 시키려 하는 중이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 한 칸에 먹구름이 꽉 찼다. 이혼과 가정의 파괴라는 것이 내 주변에서도 일상적으로 일어나는구나 하는 생각에 벌레씹은듯 일그러지는 내 얼굴을 스스로가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라는 것을 또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김정수씨 이야기를 다시 해보자. 남편의 용납과 배려는 결국 김정수씨의 반성을 가져왔지 않은가? 만약 남편이 화를 내고 못되먹은 여자라고 욕을 했어도 그런 결과를 가져왔을까? 그렇게 했다면 대판 싸우고 말았을 것이다. 아내는 찝찝한 상태로 출장을 갔을 것이고 남편 역시 내내 언짢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고.
사랑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내 개념이 많이 바뀌었다. 아직 젊을 때는(어릴때라고 해야 하나?) 감정적이고 즉흥적이며 전율이 흐르듯 다가오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그건 사랑이 아닐 수 있다. 아니 사랑이라고 해도 그런 사랑은 오래 못간다. 어떤 분의 표현에 의하면 연애 시절 손끝만 스쳐도 감전된 듯 했는데 지금은 온 몸이 붙어있어봐야 1.5v 전류도 안 흐른다고 한다.
그러면 사랑은 끝난 것인가? 그대로 갈라지면 되는 것인가? 천만에.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사랑은 감정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의지적이다. 마음에 들지 않고 속이 상하고 화가 나도 용납하고 이해하기로 결정하는 것이 사랑인 것이다. 장점만이 아닌 단점까지, 강점만이 아닌 약점까지 품에 안고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이다.
성경에 보면 사랑에 대한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3장)
나는 이 구절이 사랑에 대해 잘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사랑이 감정을 넘어선 의지라고 하는 부분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세 번이나 반복된 것이 바로 의지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오래 참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이것은 서로를 참아내며 한 평생 지겹게 살라는 말이 아니고 잘 살다가 정말 화가나고 섭섭한 일을 겪을 때 서로 인내하고 용납하라는 말로 생각된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가정이 잘 되야 모든 것이 잘된다. 가화만사성이란 말은 옳은 말이다. 그리고 가정이 잘 되려면 서로 사랑해야 한다. 그런데 이 사랑은 감정적인 것이 아니고 의지적인 것이다. 즉 서로가 다름은 인정한 상태에서 용납하고 이해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부분만 잘 훈련되어도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큰 싸움도 사소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서 생기는 게 다반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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