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 자작시

망각 덕분에 살다/ 안희환 시인(시 전문잡지 시인마을 발행인. 대한시문학협회 회장)

안희환2 2019. 8. 23. 14:50

망각 덕분에 살다/ 안희환 시인(시 전문잡지 시인마을 발행인. 대한시문학협회 회장)

 

기억이 희미해져서 안타깝지만

기억이 희미해졌기에 살 수 있었죠.

어제 일처럼 생생한 그 일이

내일도 생생한 일이 된다면

정신은 무게에 짓눌려 망가지죠.

 

결국 상처 많은 이에게 망각이란

과부하로 부서져버리기 전에

나사를 살짝 풀어놓는 것과 같죠.

그렇게 풀어놓지 않은 채

모든 기억을 견딜 사람은 없죠.

 

세월이 약이란 말이 싫었지만

이젠 그 약을 꾸준히 먹고 있죠.

다 잊어버릴 수 없을 것이고

다 잊어서도 안 되는 것이지만

잊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