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 자작시

폼 나지만 달리지 못하는 자동차가 의미 없는 것처럼/안희환목사(기독교싱크탱크 대표)

안희환2 2014. 12. 8. 18:25

폼 나지만 달리지 못하는 자동차가 의미 없는 것처럼/안희환목사(기독교싱크탱크 대표)

 

월간 플러스인생 특집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신 예수님(사53:4-6)은 성경대로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고전15:4). 천사들은 구름 가운데서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님이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신다고 하였습니다(행1:11). 이제 예수님이 하시던 일들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예수님의 몸 된 교회에 맡겨져 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으로서의 교회는 공동체로서 주님이 하시던 일들을 이 세상에 펼쳐나가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사실 저마다 존재의 목적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전도사로 사역할 때 중고 자동차를 구입했었습니다. 중고매매 회사에서 샀는데 새롭게 칠을 했기 때문에 새 차 못지않게 자동차 상태가 말끔했습니다. 그 차를 타고 목포까지 가서 일을 마친 후 몇 사람을 태우고 서울로 올라오는 중이었습니다. 에어컨을 튼 상태로 서울로 가는 중이었는데 자동차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자동차는 도로 위에서 서버렸고 렉카를 불러 근처의 수리 공장으로 가야했습니다.

 

 

자동차가 아무리 폼이 나도 달리지 못하니 자동차로서는 아무 가치가 없었습니다. 자동차는 존재 목적이 도로 위를 달리는 것인데 달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목적을 가진 것은 자동차뿐이 아닙니다. 배는 물 위에 떠야 합니다. 아무리 첨단의 장비를 다 갖추어도 물 위에 뜨지 못하고 가라앉는다면 배로서 가치가 없을 것입니다. 만약 잠수함이 물 위에 잘 뜨지만 물속에 가라앉지 않는다면 문제가 될 것이고, 비행기가 날지 못한다면 그 역시도 문재가 될 것입니다. 자신의 존재 이유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는데 그에 맞지 않은 모습이라면 교회의 존재 가치가 추락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가 공동체로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예수님이 하셨던 일들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 전체가 주님의 몸이기에 그 몸의 구성원들인 그리스도인들이 연합하여 예수님이 하셨던 일들을 이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1. 모든 이들에게 열린 교회 공동체.

 

첫째로 교회 공동체는 모든 사람에게 열린 공동체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이셨습니다(마11:19). 당시에 천대받던 아이들이 예수님께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막10:14). 죄 많은 여인이 다가와 접촉하는 것을 용납하셨습니다(눅7:36-38). 마찬가지로 공동체로서 교회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존재여야 합니다. 정죄 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공동체로 서야 하는 것입니다.

 

무디 목사님이 스코틀랜드에서 전도집회를 하고 있을 때였다. 무디 목사님은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에 대해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한 소녀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강단으로 뛰어나와 외쳤습니다. “내 모습 이대로, 부족한 모습 이대로 하나님은 저를 받아주시나요?.” 정말 절박한 외침이었습니다. 그 소녀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없지만 무디 목사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돌아온 탕자를 아버지께서 기쁘게 받아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자매님을 받아주십니다.” 소녀는 기쁨에 찬 얼굴로 찬양과 감격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감동받은 성가대의 해밀턴과 생키 목사님이 가사와 곡을 붙여 만든 곡이 있습니다. 나 주의 도움 받고자 / 주 예수님께 빕니다 / 그 구원 허락하시사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큰 죄에 빠져 영 죽을 / 날 위해 피 흘렸으니 / 주 형상대로 빚으사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사실 모든 사람을 향해 열린 모습은 목사님이나 특정 중직자들에게만 나타나야할 모습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을 가리지 않고 누구든지 주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을 영접하셨듯이 예수님의 몸인 교회 공동체 역시 동일한 태도로 모든 사람들을 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누구든지 와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요1:12).

 

 

2. 돌봄과 성장이 있는 교회 공동체.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능력과 권세를 가지셨기에 얼마든지 생명을 내어주지 않으실 수 있으셨지만 양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시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셨습니다(요10:11,15,18).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더 풍성히 얻게 하려고 오셨습니다(요10:10). 예수님은 양들을 아십니다(요10:14). 사랑과 돌봄으로 맡겨진 영혼들을 돌보셨고 자라게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사람들을 돌보고 세워서 성장하게 하는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은 목회자 혼자서 할 일이 아닙니다. 목회자는 여러 지체들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팔 하나만 움직이는 몸이거나 다리 하나만 움직이는 몸이라면 그것은 병든 상태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목회자 혼자서만 사람들을 돌보고 세우는 역할을 한다면 그것은 병든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힘들고 지친 양이 스스로의 힘으로 언덕을 오르지 못할 때 목자가 건강한 양떼들이 지친 양을 둘러싸게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혼자서 오를 수 없었던 언덕을 둘러싸인 양떼들 덕분에 같이 묻어서 올라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교회가 바로 그런 공동체이어야 합니다. 서로가 약함 가운데 있는 사람을 둘러싸고 더불어 언덕을 올라가는 공동체로 서야하는 것입니다.

 

 

시험이 들어서 무척 힘들어 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그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들은 찾아가서 격려하고 위로하였습니다. 막상 목회자인 제가 심방을 갔을 때에는 그 마음이 녹아지고 열려있는 상태였기에 편안하게 심방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만약 목회자인 저 혼자 기도하고, 혼자 찾아가고, 혼자 심방했다면 많이 어려웠을 텐데 말입니다. 다친 곳이 있으면 다리로 가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약을 집어서 치료를 하듯이 유기체요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연약한 지체를 향해 함께 역할을 감당해나가야 합니다.

 

 

3.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는 교회 공동체.

 

예수님의 최고 관심사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처음 설교가 하나님 나라였습니다(막1:15). 예수님의 가장 많은 가르침은 하나님 나라였고 심지어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과 함께 머무는 시간에도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행1:3). 예수님은 아주 분명하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할 것을 말씀하셨고(마6:33),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마6:10).

 

 

따라서 주님의 몸 된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위해 기도할뿐더러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일해야 합니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나라는 영토와 국민만이 아닌 주권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가까워도 왕의 통치가 미치지 않으면 왕의 나라가 아닙니다. 아무리 멀어도 왕의 통치가 미치면 왕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이 하나님 나라라고 할 때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각 영역 속에 하나님의 통치가 드러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이루는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당 안에서만이 아닌 세상의 각 분야에 파고들어가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도록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제가 정기적으로 설교를 가는 금천구청이나 법무법인 로고스에는 공무원들과 법조인들이 자신들의 들어가 있는 곳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헌신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제가 목회자이기는 하지만 구청이나 법무법인 안에 들어가 구체적으로 일하기는 어렵습니다. 반대로 그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 각자가 사명을 감당할 때 다양한 영역속에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될 것입니다.

 

그 동안 교회는 너무 교회 안에 매여 있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잘 모이고 봉사 잘 하고 헌금 많이 하면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다하는 것인 양 인식된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지 교회의 빛과 소금이 아닙니다. 교회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저마다 있는 곳에서 역할을 감당할 때 비로소 세상의 빛과 소금이란 소리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이 될 것입니다.

 

결론

 

 

승천하신 예수님을 대신해서 이 땅에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나가야 하는 교회라면 그것은 몇몇 개인이 감당할 일이 아닌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함께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가 하는 것보다 둘이 할 때 배 이상의 시너지 효과가 있다면 공동체로서 함께 해나갈 때 둘이 하는 것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모여서 우리끼리 울고 웃다 흩어지는 공동체가 아니라 연합하여 예수님이 하시던 일들을 이 땅에 이어가는 공동체로 우뚝 설 때 하나님께로 교회 공동체를 통해 큰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