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믿은대로 될지어다 마8:5-13(2012. 11. 2 금요예배 설교)
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7.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믿음이라고 하는 것. 눈에 보이지는 않음. 그러나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흔들리고 그것을 통해 바람이 불고 있음을 알 수 있듯이 믿음이 있으면 역사가 나타나고 그 역사를 통해 믿음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임.
오래 전 평안북도 정주에 살던 가난한 농부가 열병을 앓았다. 이웃에 살던 크리스천이 이 사람에게 신앙을 가지라며 전도했다. “나 같은 사람이 예수를 믿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며 완강히 거부했던 농부는 나중에 외국인 선교사의 방문을 받고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날 이 농부의 열병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진짜 「유익한 일」이 후세에 나타났다. 이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 복음 안에서 성장, 1946년 지금의 연세대 초대 총장이 된 것이다. 백낙준 박사 이야기다.
이렇듯 역사를 나타내는 믿음, 그렇기에 바울 사도의 “믿음의 역사”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백부장도 그와 같은 믿음의 사람이고 믿음을 통한 역사를 경험한 사람이다. 주님은 우리가 믿는 만큼 되게 하시는데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눌 때 성령께서 나와 여러분을 새롭게 하시기를 원한다.
백부장. 로마의 장교. 백명의 군인을 거느린 사람. 힘이 있는 위치. 당시 로마는 세계 최대의 제국이고 수많은 나라들이 로마의 속국. 그런 제국의 장교이니 힘이 있을 수밖에 없음.
백부장에게 있는 종들 중 하나가 중풍병에 걸림. 중풍병은 오늘날도 큰 병.
지금도 큰 병인 중풍병이 의학이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한 2000년 전에는 얼마나 큰 병이겠는가?
놀라운 점. 백부장이 종의 아픔에 동참한다는 점. 가슴 아파한다는 점. 자신의 종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임. 멋진 점.
타인의 아픔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그 백부장은 예수님 앞에 자신의 믿음을 보임. 그 덕분에 종은 고침을 받음.
예수님이 백부장의 믿음을 인정하심.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어떤 것이 믿음의 모습인가? 그의 믿음의 모습을 배우기 원한다.
1. 예수님께 문제를 가지고 나옴.
첫째로 백부장은 자신의 문제를 예수님께 가지고 왔다.
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1) 문제가 없는 인생은 아무도 없음.
돈 때문에. 가난의 문제는 우리를 힘들게 함.
자녀 때문에. 이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음.
배우자 때문에. 행복할 줄 알고 결혼했는데 결혼생활 자체가 고달플 때가 얼마나 많은가?
질병 때문에. 나아만.
백부장의 경우는 조금 남다름. 자신의 고통은 아님. 종의 고통임. 그러나 그것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임. 그것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임.
목회자의 마음도 비슷함. 내게 문제가 있어서 힘든 것이 아니고 성도들의 삶 속에 어떤 문제가 있고 그 문제 때문에 흔들리는 성도들을 보니 마음이 아픈 것임. 어떤 때는 심장을 빼내어 보여주고 싶을 때가 있음.
2)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옴.
백부장이 정말 잘한 것.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왔다는 점.
1.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주
께 고함 없는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2. 시험 걱정 모든 괴름 없는 사람 누군가 부질 없이 낙심말고 기도 드려 아뢰세 이런 진
실하신 친구 찾아볼 수 있을까 우리 약함 아시오니 어찌 아니 아뢸까
3.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 진자 누군가 피난처는 우리 예수 주께 기도드리세 세상 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 받겠네 아멘
백부장이 예수님을 찾아가지 않고 무당을 찾아갔다면?
점쟁이를 찾아갔다면? 우상을 찾아갔다면?
감사하게도 예수님을 찾아간 것임.
3)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라.
a. 히스기야. 산헤립의 공격. 그가 한 일.
이사야에게 기도 부탁.
성전에 가서 기도함.
b. 모세. 백성들이 돈 던지려고 할 때.
하나님 앞에 엎드림. 엎드리면 돌 맞기가 더 쉬워지는데.
c. 에스더. 하나님 앞에 기도. 죽으면 죽으리이다.
내 평생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 일
고통 속에서 예수님께 나아갔던 것.
사랑하는 여러분. 두 종류의 사람. 힘들고 고통스러우면 떨어져나가는 사람. 신앙을 까먹음. 세월이 가도 자라지 않음. 그러다가 영영히 교회를 떠나기도 함.
또 한 종류는 힘들면 더 예수님께로 나아오는 사람.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 사단은 이런 사람을 무너뜨릴 수 없음.
2. 예수님 앞에서 겸손의 모습을 보임.
백부장은 어떤 면에서 믿음의 모습을 보였는가?
첫째로 백부장은 자신의 문제를 예수님께 가지고 왔다.
둘째로 예수님 앞에서 겸손의 모습을 보였다.
7.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1) 겸손은 쉽지 않음.
사람은 근원적으로 교만함. 자기중심적임. 대접받기 원하고 큰소리치기 원함. 그것이 안 되면 섭섭해 함. 교회에서도 그 교만 때문에 마음이 상하고 시험에 드는 성도들이 발생함. 자주 이야기하지만 겸손한 사람은 시험에 들 일이 별로 없음. “내가 부족하니까 그렇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음도 편해짐.
그런데 아주 교만한 사람도 상대방이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적어도 그 앞에서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음.
2) 백부장의 자기 낮춤
오늘 본문에서 백부장이 자기를 낮추는 겸손은 도에 지나칠 정도로 보임.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옵니다”
백부장의 집이 누추할까? 천만에. 권력을 가진 사람이다. 백부장이 소심하고 심약한 사람인가? 아니다. 그렇게 무른 사람이면 어떻게 군인 장교를 하는가?
백부장은 예수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분인지를 알아본 것이다.
믿음은 맹목이 아니다. 아는 만큼 믿음도 커진다.
믿으면 구원? 맞다.
그런데 요17:3에 보면 아는 것이 구원이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아는 것.
결국 예수님을 아는 것과 예수님을 믿는 것은 같은 의미.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것만큼 믿음이 생기는 것임.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믿음이 자라는 것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는 것임.
결국 백부장의 자기 낮춤은 예수님을 아는 것에서 나온 행동이고 그것은 곧 믿음의 행동인 것이다.
3) 믿음이 자랄수록 겸손해진다.
바울 사도. 점점 자라는 믿음. 점점 겸손해짐. 사도 중 작은 자, 성도 중 작은 자. 죄인 중에 괴수.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때로 사람 앞에서는 자랑할 수도 있고 잘난 척할 수도 있고 으스댈 수도 있을지 몰라도 주님 앞에서는 납작 엎드리는 나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란다.
일을 다 미친 후 말하기를 나는 무익한 종이라 마땅히 할 일을 한 것 뿐이다 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다윗. 이새의 아들 다윗을 보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실수도 있고 허물도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사람.
나는 누구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자신이 누리는 것을 자신이 잘나서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음.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에 가능했음을 잊지 않고 있음. 그러기에 겸손한 것임.
바울. 나의 나된 것은 내가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로다.
3.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을 인정함.
백부장은 어떤 면에서 믿음의 모습을 보였는가?
첫째로 백부장은 자신의 문제를 예수님께 가지고 왔다.
둘째로 예수님 앞에서 겸손의 모습을 보였다.
셋째로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을 인정하였다.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 말의 권위는 말하는 자에게 달림.
말의 권위는 말하는 자에게 달려있음.
같은 말이라고 해도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다름.
같은 가르침이라고 해도 누가 가르치느냐에 따라 다름.
예수님의 가르침, 권위가 있음. 성령충만한 예수님. 가르치신 대로 사시는 예수님. 그러니 서기관들의 가르침보다 권위가 있을 수밖에. 그러나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당연히 그 가르침에 권세가 있는 것임.
백부장은 이 원리를 잘 알고 있음.
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부하들이 자기의 말을 듣는 이유. 부하들의 상관인 자신의 말에 권위가 있기 때문인 것임.
또 백부장의 상관이 말하면 백부장도 그 말에 복종함.
이제 백부장은 예수님을 자신보다 높으신 분으로 인정하는 것임.
인간적으로 보면 납득이 안 가는 장면. 백부장은 제국의 장교. 예수님은 속국의 청년.
백부장이 부하들 시켜서 유대 청년을 두둘겨 패고 감옥에 가두어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할 수 없는 상황. 그런데 예수님을 마치 황제라도 되는 듯이 대하고 있는 것임.
2) 특별히 주목해야 할 내용.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능력이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임.
말씀만 하시면 됩니다. 말씀만 하시면 됩니다. 말씀만 하시면 됩니다.
백부장은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임.
a. 풍랑이는 바다. 파도야 잠잠하라. 그대로 됨.
b.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3) 주님이 말씀만 하시면 된다.
나는 기도 중에 하나님이 내게 주신 말씀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다.
주님이 모든 풍랑을 잠잠케 하진 않으셨다. 그러나 잠잠하라. 하시면 잠잠해졌다.
주님이 모든 병을 고치시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어나라 하시면 일어났다.
우리가 기도하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아야 한다. 아무튼 주님이 되라 하시면 된다.
신일수 목사님. 집회를 많이 나가심. 교단 초월하여.
꿈이나 말씀으로 보여주시는 것들이 많고 하나님이 주셨다고 생각하면 확실하게 선포함. 그대로 되는 것을 경험함.
한참 후배인데 얼마나 귀하게 대접해주시는지 모름. 장차 한국 교회의 대부가 될 것이라고 함. 감사했음. 웃음이 막 나오려고 하는데 참느라고 고생했음.
내가 믿는 것은 하나.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면 된다는 것임. 하나님의 말씀은 믿을 수 있기에.
기드온. 큰 용사여. 참 많이 묵상하는 말씀. 사실 큰 용사가 아닌데.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니 되는 것임. 해야할 일은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임. 믿음으로 받아들였으니 기드온이 움직인 것임.
여러분 모두 다 마찬가지이다. 기도 중에, 말씀 묵상 중에, 설교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라면 이루어진다. 믿음으로 받아들이라.
결론
백부장은 어떤 면에서 믿음의 모습을 보였는가?
첫째로 백부장은 자신의 문제를 예수님께 가지고 왔다.
둘째로 예수님 앞에서 겸손의 모습을 보였다.
셋째로 에수님의 말씀의 능력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따. 네 믿은대로 될지어다.
가라 네 믿은대로 될찌어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의 부모는 드와이트 무디목사님의 설교에 감명을 받고 아들의 이름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라고 지었다. 어렸을 때부터 가정예배를 드리며 자란 아이젠하워는 하나님께서 늘 함께하심을 믿었고 그 믿음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당시 가장 포악한 독재자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격파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때 그가 늘 묵상한 성경은 스가랴 4장6절이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안에 계신 예수님은 정말 크신 분이시다. 그 크신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서 역사하신다. 주눅 들지 말라. 포기하지 말라. 낙심하지 말라. 끝장이라고 말하지 말라. 주님이 역사하신다. 다만 믿음을 보이라. 주님이 선언하신다. “네 믿은대로 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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