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 금요설교

기뻐하는 사람들 행5:33-42(2012. 10. 19. 금요예배 설교)

안희환2 2012. 10. 19. 19:55

기뻐하는 사람들 행5:33-42(2012. 10. 19. 금요예배 설교)

 

33.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34.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35.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36.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37.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38.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39.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40.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글 하나 읽어드리면서 설교를 시작하고자 한다.

 

대학의 체육교수로 있다가 사고로 하반신 불구가 된 사람이 있다. 옛날에 건강할 때는 신앙이 없었는데 하반신 불수로 병원에 누워있게 되었을 때 예수님을 처음으로 자신의 구주로 영접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건강할 때는 그 눈이 수평이다. 그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한다. 그런데 누우면 위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위기를 당해서야 겨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그분은 [나를 하빈신 불수가 되게 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내가 오죽 완악했으면 나를 눕히셔서 하늘을 바라보게 하셨겠습니까? 병상에 누워서야 하나님을 깨닫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이제 나머지 인생을 주께 드립니다.]

 

그렇게 결단하고서 장애자 재활원 활동에 헌신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장애자들을 붙들고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하면서 그들을 격려해 준다고 한다. 만약 정상적인 신체를 가진 채로 그렇게 했다면 장애자들에게 큰 힘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분은 고통을 몸소 체험한 자로서 장애자들을 돌보는 일을 하느라 너무나도 바쁘게 산다고 한다.

 

몸은 불편해졌는데 그 덕분에 하나님을 만났기에, 신앙이 성장해 가기에,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기에 기뻐하는 체육교수는 정말 살아있는 신앙인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의 기쁨이라는 것. 조건에 의한 기쁨이어서는 안 됨.

건강하면 기뻐하고 아프면 원망하고

돈을 벌면 기뻐하고 돈이 사라지면 불편하고

성공하면 기뻐하고 실패하면 짜증내고

사람들이 잘해주면 기뻐하고 힘들게 하면 저주하고

그런 차원을 넘어서야 하는 것이다.

 

항상 기뻐하라... 하나님의 뜻이니라.

 

오늘 본문에서 매를 맞고 기뻐하는 사람들이 나옴. ‘기뻐하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눌 때 우리의 삶이 새로워지기를 원한다.

 

오늘 본분으로 돌아오자.

 

 

1. 분노가 가득한 권세자들

 

33.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1) 크게 노한 권세자들

 

저희가. 대제사장을 포함한 산헤드린 공의회원들.

이들이 왜 노했는가? 사도들의 반응 때문임.

 

이들은 종교지도자들. 힘과 영향력이 있음. 따라서 이들이 무엇인가 지시를 내리면 백성들은 그 말을 가볍게 생각하지 못하고 따랐음. 목회자의 권위와 말을 성도들이 무시할 수 없는 것처럼 산헤드린 공의회원들의 말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것임. 아니 목회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오늘 본문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임.

 

이들이 사도들에게 예수님을 증거하지 말라고 명했음.

 

그때 사도들은 권세자들의 힘 앞에 주눅 들지 않고 담대하게 자신들이 해야할 말을 함.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5)

a.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해야 한다.

b. 너희가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

c. 하나님이 예수님을 높이사 임금과 구주가 되게 하셨다.

d. 예수님을 통해 회개하고 죄사함을 얻을 수 있다.

e. 이 일에 우리들은 증인이다. 증인은 말해야 한다.

f. 예수님에 대해 하나님이 주신 성령도 증거하신다.

놀랍지 않은가? 이게 계집 종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던 그 베드로의 모습인가?

성령충만이 베드로와 사도들을 새롭게 한 것임.

 

아무튼 베드로와 사도들의 말을 듣고 크게 분노한 것임.

 

사실은 반박할 말이 없음. 구구절절 옳은 소리만 하고 있음.

 

그러면 자신이 수그리고 들어가야 함. 그러나 오히려 분을 내는 것임.

 

2)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함.

 

분노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음. 권세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힘으로 사도들을 없애려고 함.

 

한번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사도들의 죄가 죽일 만큼 심한 것인가? 천만에.

 

시기심에 눈이 멀어 예수님을 죽인 이들은 또 다시 자신들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체 사도들을 죽이려 하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마음이 강퍅할 수 있을까?

 

힘이라고 하는 것은 군림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을 섬기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야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적어도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힘을 가지고 지배하는데 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돕고 세우는데 써야 한다. 그런데 본문의 종교지도자들은 섬기기는커녕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사람들을 죽이려고까지 한다. 이들이 정말 하나님을 알고 있는 사람들일까?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가진 힘으로 악한 쪽에 사용한다.

 

a. 제사장과 그 일족을 죽인 사울

“11 왕이 보내어 아히둡의 아들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 아비의 온 집 곧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부르매 그들이 다 왕께 이른지라 12 사울이 가로되 너 아히둡의 아들아 들으라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13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새의 아들과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여 그에게 떡과 칼을 주고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서 그로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게 하려 하였느뇨 14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 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모신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 15 내가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은 것이 오늘이 처음이니이까 결단코 아니니이다 원컨대 왕은 종과 종의 아비의 온 집에 아무것도 돌리지 마옵소서 왕의 종은 이 모든 일의 대소간에 아는것이 없나이다 16 왕이 가로되 아히멜렉아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요 네 아비의 온 집도 그러하리라 하고 17 왕이 좌우의 시위자에게 이르되 돌이켜 가서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 그들도 다윗과 합력하였고 또 그들이 다윗의 도망한 것을 알고도 내게 고발치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한지라 18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이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이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자 팔십 오인을 죽였고

19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삼상 22).

 

b. 자신의 동생들을 죽인 여호람

“1 여호사밧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열조와 함께 다윗성에 장사되고 그 아들 여호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2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아우 아사랴와 여히엘과 스가랴와 아사랴와 미가엘과 스바댜는 다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이라 3 그 부친이 저희에게는 은금과 보물과 유다 견고한 성읍들을 선물로 후히 주었고 여호람은 장자인고로 왕위를 주었더니 4 여호람이 그 부친의 위에 올라 세력을 얻은 후에 그 모든 아우와 이스라엘 방백 중 몇 사람을 칼로 죽였더라”(대하 21).

 

그래봐야 결국엔 남는 게 없음.

 

사랑하는 여러분.

자신에게 있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으로 남을 해하는데 사용하지 말고 돕는데 사용하시기를 바란다. 군림하는데 쓰지 말고 섬기는데 쓰시기를 바란다.

 

사실 이 부분은 나 스스로에게 가장 강하게 말해야할 부분이다.

영향력이 커지고 힘이 생길수록 더 겸손해지고 더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니까 말이다.

 

 

2. 교법사 가멜리엘의 조언

 

34.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35.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36.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37.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38.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39.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1) 교법사 가멜리엘

 

정말 대단한 사람.

바리새인임.

유대인의 경전을 체계화해서 큰 존경을 받았던 대학자 힐렐의 손자.

율법 문제에 있어 전문가.

산헤드린 공의회의 의장을 맡기도 했던 인물.

사도 바울의 스승이기도 함.

 

그가 일어나 사도들을 나가게 하고 공의회원들에게 자신의 견해를 말함.

 

2) 죽이려는 사람들을 만류함

 

35.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냉철함을 갖춘 인물. 다 흥분한 상황에서도 차분하게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있음.

발끈해서 같이 소리 지르고 감정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님.

 

권위가 있는 인물이기에 조심하라는 말을 할 수 있음.

 

3) 두 가지 예를 듦

 

a. 드다

 

글라우디오가 다스릴 때의 반란 주동자.

많은 사람들을 요단강으로 데리고 가서 자신이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이며 요단강을 가를 수 있다고 선전하며 군중들을 선동함.

 

요단강 가른 인물.

 

-위대한 지도자 여호수아.

“14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행하니라 15 (요단이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16 곧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쌔 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3).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

“8 엘리야가 겉옷을 취하여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육지 위로 건너더라”(왕하 2).

 

-그를 이은 선지자 엘리사.

“12 엘리사가 보고 소리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에 찢고 13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가지고 돌아와서 요단 언덕에 서서 14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가로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저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왕하 2).

 

자신이 그만큼 대단한 인물이라고 선전한 것임.

 

드다를 내버려두어선 안 되겠다고 생각한 로마 총독 파도스. 소요를 진압하고 드다를 죽임.

그가 죽자 드다를 따르던 무리들은 다 흩어지고 맘.

 

b. 유다

 

호적할 때에 일어난 반란.

호적 명령은 아우구스티누스 때 시작되었고 그 후 14년을 주기로 실시됨.

그중 유다의 반란은 두 번째 호구 조사 때 일어났던 것으로 알려짐.

만일 유대인들이 계속 로마에 세금을 바친다면 그들은 겁쟁이들이다라고 말함.

 

정치적 메시아를 기다리던 유대인들은 유다를 추종함.

그러나 로마 통독 구레뇨에 의해 진압되고 따르던 무리들은 사형을 당하거나 흩어짐.

 

4) 가멜리엘의 제안

 

38.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39.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a. 내버려두라는 것임.

b.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무너질 것이기에. 드다와 유다를 따르던 무리들처럼.

c. 하나님께로서 나왔으면 무너뜨릴 수 없기에.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될 것이기에.

 

5) 가말리엘의 제안에 대한 평가

 

사도들에게는 도움이 됨.

더 깊이 들어가면 문제의 여지가 있음.

 

성들을 위해 분별하고 가르쳐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 것일 수도 있기에.

 

예를 들어 신천지라는 이단.

가멜리엘의 제안대로 해서는 안 됨.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스스로 무너질 것이고

하나님께로서 나왔으면 무너뜨릴 수 없고 하나님을 대적할 것이니 그냥 두자고 할 수는 없는 것임.

 

 

3. 매를 맞고도 기뻐하는 사도들

 

40.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1) 격앙된 분위기가 가라앉음

 

그들이 옳게 여겨

 

말이 조목조목 옳은 이야기.

게다가 그 말을 한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닌 백성의 존경을 받는 율법학자인 가말리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것임.

 

사실 웃기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도들의 말도 조목조목 옳은 말이기에 반박하지 못했던 귄세자들. 그러나 사도들의 말은 자기들의 주장과 다른 내용이고 게다가 자기들처럼 대단한 위치를 가진 존재들이 아님. 가말리엘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임.

 

자신들의 생각에 따라.

상대방의 지위나 배경 여부에 따라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 하는 것이 좌지우지되는 모습. 참 보기 민망한 모습임.

 

2) 사도들을 때리고 협박함.

 

게다가 더 치사한 것은 가말리엘의 말이 옳다고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말을 거역한 사도들을 그냥 풀어주는 것에 대해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임. 그래서 한 행동이 무엇인가?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죽이지 않았으니 사도들의 형편이 좋아진 것은 틀림없지만 그래도 큰 고통을 겪어야 했음.

공의회의 결정을 무시한 죄로 40에 하나 감한 매로 채찍질을 한 것임.

 

회초리로 10대만 맞아도 아픈데 채찍으로 39대를 맞는다고 생각해보라. 피투성이가 된다.

온 몸이 엉망이 되고 만다. 정말 되먹지 못한 권세자들이다.

 

3) 매를 맞은 사도들의 반응.

 

그러면 매를 맞은 사도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a. 원망함.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께 감히 못하면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b. 짜증냄. 온 몸이 아프면 사람이 짜증스럽지 않은가? 죄 없이 매 맞아 아프면 더욱 더.

c. 불평함. 불평이 한 아름 나와도 이해할 수 있는 상황.

d. 증오함. 때린 이들. 나를 고통스럽게 한 사람을 미워하고 용서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니.

 

그러나 사도들은 기뻐함.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주님을 위해 모욕당하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기뻐할까?

 

a. 주님이 나를 위해 모욕당하심. 정말 그랬음. 침 뱉음을 당했음. 뺨을 맞으심. 발가벗겨지심. 그보다 더 심할 수 있을까? 이제 내가 주님을 위하여 모욕당할 수 있다는 것에 감격하는 것임.

 

b. 주님을 위한 핍박엔 상급이 있음. 주님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있는 사도들. “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5).

 

주님을 위해서 아무 고생도 안 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지 주님을 위해 복음을 전하다가 망신당하거나 고통을 겪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님. 오히려 자랑스러워해야할 일임.

 

시몬 짜오. 평생을 감옥살이. 아내를 못 만남. 자식이 유산됨. 풀려났을 때는 이미 노인. 갈 곳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음. 감옥 옆에 오두막 짓고 그곳에서 살아감. 그리고 감사. 그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도록 지켜주신 것에 대해서.

우연히 그를 알게 된 신자들. 시몬 짜오의 삶을 알고 감동. 다른 곳에서 설교. 그 설교를 통해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남.

 

c. 자신의 믿음을 증거하는 기회.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떠나거나 도망쳤던 사도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삶으로 증명한 것이고 그것 때문에 기뻐하는 것임.

주님을 위한 고난 속에서도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믿음의 증거임.

 

d. 성령충만한 사도들

극심한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힘은 성령께서 주시는 것임.

시도들은 모두 성령이 충만함. 사도들만 그런가? 일곱 집사를 뽑을 때 기본 자격이 성령충만임. 집사들만 그런가?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함. 그러니 고난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것임.

 

1.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주의 팔이 나를 안보함이요 내가 주의 큰 복을 받는 참된 비결은 주의 영이 함께함이라

3. 나와 동행하시고 모든 염려 아시니 나는 숲의 새와 같이 기쁘다 내가 기쁜 맘으로 주의 뜻을 행함은 주의 영이 함께함이라

 

후렴: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하시네 좁은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결론

 

실컷 매를 맞고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나오면서 기뻐하는 사도들.

?

주님을 위해 고난당하는 것이기에.

주님이 주실 상급이 있음을 알기에.

자신들의 믿음을 증명하는 기회이기에.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이기에.

 

이들은 분명히 매를 맞은 후 협박을 또 들었다. 전도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전도하려면 이런 압력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사도들은 어떻게 했는가?

 

“42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사도들만 그랬는가? 아니다. 온 성도들이 그랬다. 집이든 밖이든, 그 어디든 간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러니 기독교를 박해하던 로마라는 대제국을 신앙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교회가 있는 금천구 정도는 문제도 아닌 것이다.

 

하나 더 이야기하고 마치려고 한다.

산헤드린 공의회를 진정시켰던 가말리엘에 대한 것이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후에 기독교인이 된다. 협박받으면서 복음을 전했던 사도들의 전도가 가멜리엘의 마음 속에서 씨앗으로 심겨졌고 그것이 자랐던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을 위해 고난당하자.

주님을 위해 살다가 고난당하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다가 고난당하면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당하면

열심히 충성하고 봉사하다가 고난당하면

우리도 기뻐하자. 마침내 하나님이 큰 역사를 보게 하실 것이다. [기뻐하는 사람들]. 오늘 설교의 제목이다. 주님을 위해 능욕받아도 기뻐하는 사람들. 예수비전교회 성도들에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