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 눅10:25-37(2012. 5. 4. 금요예배 설교)
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황병운에 대한 아내의 말. 정말 그리스도인. 나도 확실히 인정.
왜? 말씀대로 살아감. 계산하지 않고 따지지 않고 그냥 살아감.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다 감당함. 묵묵하게. 펑크내는 일이 없음. 교사, 주보, 청년회, 인터넷, 중보기도 기타 등등.
나이가 적어도 직분이 없어도 삶이 있는 사람에게는 존경이 감.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 최종 결론.
삶이 따르는 신앙인 것임.
오늘 설교의 제목이기도 하다.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
1. 율법사의 시험과 예수님의 대답
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1) 율법사의 시험
질문을 던지는데 배우려는 의도가 아님.
시험하는 것.
시험은 어떤 특징이 있나? 상대방을 믿지 못하는 것. 상대방을 망신주거나 넘어뜨리는 것.
2) 질문만 보면 가치가 있는데.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영생에 대한 관심. 이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
가장 중요한 것이 생명.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영생.
3) 예수님의 질문.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왜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는지 아느냐고 물으셨을까?
예수님 당시에는 율법이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
율법은 악한 게 아님. 율법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그러나 율법은 궁극적인 게 아님. 예수님이 궁극적인 분. 율법의 완성.
그것은 십자가의 죽음 이후에 분명히 드러남. 그것을 복음이라고 함.
율법과 복음은 적대적이지 않음. 율법주의와 복음이 적대적임.
율법을 성취하는 것이 복음.
율법도 영생 즉 구원에 대해 말씀함. 그것을 물으시는 것임.
4) 율법사의 대답.
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하나님 사랑. 가장 큰 계명.
이웃 사랑. 두 번 째로 큰 계명.
율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 틀린 대답이 아님. 모든 율법을 압축한 두 가지 계명을 제대로 말함.
5) 예수님의 말씀.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율법으로 구원받으려는 자에게 주어지는 답변은 하나 뿐임. 지켜 행하라는 것. 그래서 구원의 길이 주어짐.
우리는 알고 있음.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음.
5) 율법사의 질문
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역시 문제임. 아까는 시험하려고 질문.
이번에는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질문.
내 이웃이 누굽니까?라는 질문. 정말 이웃에 관심 있어서 하는 질문이 아님.
말만 앞서는 사람.
2. 예수님의 비유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1) 강도 만난 사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
강도를 만남. 강도의 목적은 해하는 것. 좋은 목적을 가진 강도는 없음.
옷을 벗김. 가져간 것임. 재산 가치가 있음.
때림. 그런데 너무 심하게 때림. 거반 죽었다. 그 상태로 내버려 두면 하루도 넘기지 못하고 죽을 상황.
2) 잘못된 반응들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보고라는 용어. 몰랐다고 할 수 없는 상황.
피하여. 자신이 불이익을 당할까봐 회피한 것임.
지나가되.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않고 버려둔 것임.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
성경을 그래도 안다는 사람.
다른 이들에게 신앙 좋다고 인정을 받음.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위치.
문제는 폼은 그럴듯한데 말씀대로 사는 삶은 없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이 하신 말씀.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마7장.
사실 사람은 속을 수 있음. 아는 대로 살지 않아도 일단 잘 아는 것만 가지고도 대단하다고 볼 수 있음. 그러니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존경을 받는 것임.
3) 올바른 반응.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1) 보고
제사장이나 레위인과 동일함.
2) 불쌍히 여겨
여기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남. 긍휼의 마음이 있었던 것임.
하나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심.
아픈 사람.
빚진 사람.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
상처 입은 사람.
울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함께 울어주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세임.
사마리아 사람. 천대받는 사람. 앗수르의 혼혈정책 때문임. 유대인들에게 개 취급을 받음.
겉모습은 초라함. 대접받지 못하는 존재.
그러나 그 중심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음.
3) 가까이 가서
가야 함. 멀리서만 보고 있으면 안 됨.
삭개오를 불쌍하게 생각하시는 예수님. 멀리서 돌무화과나무를 보고만 있지 않으심. 다가가심. 심지어 그 집에 들어가심.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
선물이 사랑.
사랑한다는 고백이 사랑.
도와주는 게 사랑.
스킨십이 사랑.
함께 있어주는 것이 사랑.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다 사용하시는 분. 나병 환자에게도 스킨십을 하심.
내 아내는 못할 것 같음. 아침 양치질 전에 날 보고 입냄새 난다고 함. 나병환자들은 입샘새 정도의 문제가 아님.
함께 있어주면 더불어 욕먹을 상황. 그래도 함께 하심.
4)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당장 필요한 것을 해줌. 응급처치.
그러는 중에 강도들이 다시 오면? 큰 일임. 그런 위험이 있기에 제사장과 레위인은 피한 것임.
사마리아 사람.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지만 위험하니 응급처지 없이 데려가면? 그 사이에 더 악화됨. 위험 감수하고 당장의 필요한 것을 해주는 것임.
어떻게 보면 사랑 실천엔 용기가 필요하기도 함.
왕따 당하는 학생들. 그 학생을 거들면 같이 공격당함. 용기가 필요.
아이들 보고 그런 이야기를 여러 차례 함. 상관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올바른 가르침이 아님.
고등학교 때 기억. 덩치 큰 학생이 다른 학생을 문짝에 밀어붙임. 그리고 때리려는 찰나에 일어나 처음으로 욕을 함. 어차피 이렇게 된 것 갈 때까지 가자는 심정으로 주먹 좀 쓴다는 학생들 전체를 싸잡아서 뭐라 함. 막상 싸움이 붙어도 할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
내 편이 나옴. 태권도 4단이라고 하던가?
결국 싸움은 벌어지지 않음. 맞을 것 같은 학생을 위해 나선 것? 용기라고 생각.
나를 위해 나선 태권도 4단? 역시 용기.
재미있는 현상. 나에게 시비 거는 사람이 아무도 없음.
지금 하라고 하면? 자신 없음. 불량배들에게 맞는 사람을 보았을 때 뛰어들어 말릴 수 있을까? 자신 없음. 칼에 찔리면 아플까봐.
벤허라는 책. 영화도 있음. 누명 쓰고 묶여서 끌려다는 벤허. 목이 마른데 마실 수가 없음. 예수님이 물을 먹게 함. 로마 군인이 해를 끼치면 어쩌려고? 불량배보다 무서운 군인.
물론 소설. 그러나 예수님은 실제로 사랑을 위해 목숨 걸고 움직이신 분. 용기 있는 분.
5)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그 동안 자신은 걸아감.
상대를 위해 자신이 불편을 감수하는 것임.
사랑의 수고. 헌신.
교회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을 봄. 시간 들이고, 물질 들이고, 에너지 쏟아서.
이웃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 방관할 수 없어서 헌신하는 사람들.
희생은 그 다음 대목도 마찬가지임. 돌보아 주니라
시간을 지연함. 여행 중인데...
6) 물질을 내놓음.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
휴대폰 비만큼은 선교헌금 하라는 말. 공연히 하는 말이 아님.
사랑에는 물질이 따라감.
아리마대 요셉. 무덤을 내놓음. 보통 액수가 아님. 부활한 후 자신이 사용한다는 생각을 못함. 그냥 내놓은 것임.
3. 우리에게 강도만난 사람은?
1) 주변의 고통당하는 사람.
아픈 사람. 그들 위한 기도.
간절히 기도함. 아픈 것은 참 힘든 것.
2) 마귀에게 끌려다니는 사람.
강도만난 자임. 영적으로 만신창이.
그들을 건져내야 함.
3) 북한 동포들.
강도 만나 죽어가고 있음. 김일성이라는 강도. 김정일. 이젠 김정은까지.
조금 길지만 인용하려 함.
나는 악몽 속에서 살아나왔다/ 김옥금.
“야, 옥금아 니 뭐했니?”하는 친구의 고함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손에 꼭 움켜쥐고 있던 배낭끈만 달랑 남아있고 배낭은 없다. 내 전 재산, 아니 우리집식구 명줄인 장사배낭이 없어졌다.
정신이 들면서 “이게 어떻게 된거지?”하고 친구한데 되물었다.
“배낭 어디 갔냐구?” 명옥이가 소리를 질러댄다. 할 말이 없다.
... 친구가 기차 언제 들어오는지 알아보러간다며 나가고 대합실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있던 나는 잠이 들어버리고 그사이 도둑맞은 것이다.
며칠을 기차 기다린다고 역에서 지내면서 잘 자지도 못하고 하다가 나도 모르게 깜박 잠이 들었다. 어느 구석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지 전문 배낭털이 도둑들이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일을 벌인 것이다.
말로만 듣던 배낭털이를 내가 진짜 당할 줄이야. 배낭끈을 손에 칭칭 감고 손에 꽉 쥐고 있었는데…….
“어떻게 하지?”
그 순간 내 머리 속에는 “제발 이거 날려먹으면 안 된다. 손이 발이 되게 빌어서 꾼 돈이다. 알았지?” 라고 신신당부 하시던 엄마 얼굴이며 돈 내놓으라고 집을 난장판 만들 사채꾼들의 모습이 휙휙 지나간다. 인정사정없는 사채꾼들의 횡포를 우리식구들도 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다.
“아~~악” 미칠 것 같다. 멀고먼 함경북도에서 자강도까지 우리고장에 없는 고구마 장사 한번 해보자는 친구의 말을 듣고 큰마음 먹고 빌린 돈인데 이제 어쩐단 말인가?
친구가 뭐라고 계속 고함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하지만 귀에 안 들린다.
사채꾼들 앞에서 쩔쩔 매며 사정사정 해야 될 걸 생각하니 죽고 싶다. 어디 돈 나올 데라도 있으면 돈 갚을 날짜를 미뤄달라고 부탁이라도 하겠지만 하늘이 두 조각이 나지 않는 이상 돈은 먹고 죽으려고 해도 나올 데가 없다.
그보다 이거 하나 믿고 내가 장사 갔다 오면 갚아준다고 지금 외상으로 식량을 해결하고 있을 집식구들 생각하니 기가 막힌다. 우리 엄마는 졸지에 사기꾼이 되는 것이다.
미친 듯이 대합실 안을 휘저으며 “내 배낭 못 봤습니까?” 물었지만 사람들은 “이거 미친년 아냐?” 하는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고는 휙 돌아앉는다. 모두 자기 입에 거미줄이라도 안 쓸게 하는데만 전념하다보니 나 같은 애가 배낭을 잃어버리던 말든 옆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거들떠도 안 볼 사람들 같다.
대합실 안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누구 한 명이라도 봤으련만 말해주는 사람은 더구나 없다. 만약에 말해줬다가 도둑들 한데 보복이라도 당할까봐 두려운 것이다.
나도 그런 것을 본적이 있었다. 자강도로 갈 때 기차 안에서 있은 일이다.
기차가 터널을 통과하느라고 캄캄해졌을 때 누군가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악”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보이지 않았다.
터널을 통과하고 훤해지자 얼굴에 피가 줄줄 흐르는 한 아주머니가 울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양쪽 눈썹 위에서부터 턱 아래까지 서너 갈래로 찢어진 얼굴에 피가 낭자하게 흐르고 있었다.
끄덕끄덕 졸던 사람, 뭔가 심각하게 고민하며 생각에 빠져있던 사람, 배고프다고 우는 애를 무작정 업고 둥둥하며 달래던 여자, 열차 방통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목을 빼들고 여자를 보고 있었다.
모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서로서로가 영문을 모르며 두리번거렸다. “뭐지? 무슨 일이지?”하며 나도 친구의 손을 꼭 잡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콩나물처럼 빽빽이 서있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30대로 보이는 한 사내가 지나가며 “그러길래 주둥아리 건사 잘 해야지.”하고 말했다. 그것도 아주 뻔뻔하고 당당하게…….
그제야 사람들이 웅성이며 사건의 전말을 수군대기 시작했다.
전날 화성역에서 기차가 멈춰있을 때 한 아낙이 돈을 잃어버렸다고 고함을 지르며 찾아다닐 때 소매치기 장면을 목격한 지금 피 흘리는 아주머니가 자기가 본 것을 얘기해주었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아주머니는 지금 보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면도칼 날을 네 손가락 짬에 하나씩 끼우고 그 손으로 사람의 얼굴을 한번 쓱 쓸어주면 저렇게 가혹한 참상이 벌어진다.
이것이 북한사람들의 생활상이다.
너무나도 비인간적이고 상상을 초월하는 강도들이 득실거리고 양심과 도덕을 어느 쓰레기통에 팔아먹고서야 살 수 있는 곳이 지금의 북한이다. 인민을 위한 나라, 인민이 주인 된 나라를 만든다는 김정일의 정책이 지금의 북한을 만든 것이다.
숨이 콱 막힌다.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엉엉 울며 “내 배낭 좀 주시오”하고 애원을 하지만 들어주는 이도 없고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온갖 후회가 밀려온다. 친구가 처음 장사 제안을 했을 때 듣지 말았으면, 그냥 열심히 농장일이나 나갔으면 가을에 쥐꼬리만 한 분배라도 탈걸, 아니면 누구 남자라도 하나 같이 왔으면 짐이라도 지켜주지 않았을까? 별의별 후회가 다 온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불고 요동치고 나니 온몸이 다 땅으로 잦아드는 것 같다.
돈 아낀다고 전날 저녁에 두부밥 하나씩 사먹고 하루 종일 굶은 데다 울기까지 하고나니 그야말로 녹초가 된다.
그러다가 또 잠이 들었다. 꿈이다. 시장에 갔더니 “오늘만 공짜”라는 팻말이 붙여져 있고 떡장수, 사탕장수, 꽈배기장수, 암튼 모든 먹을거리장수들이 웃으며 천사 같은 얼굴로 사람들한테 공짜로 음식을 주고 있었다. 이게 웬 횡재인가 싶어 나도 정신없이 들어가 먹어댔다. 한참 먹다가 아차 엄마도 데려와야지 하고 돌아서 나오다가 누군가의 발에 탁 걸려 넘어지며 눈을 떠보니 현실은 공짜 떡은 커녕 공짜 물도 없는 세상이다.
눈물이 나온다. 또 다시 울기 시작했다. 울어도 울어도 끝없는 눈물.
그때 어떤 배가 불룩하게 나오고 얼굴에 기름이 번지르한 사내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딱 보니 간부다. 옆에 간부가방 하나 들고 거들먹거리며 역사무실로 들어간다. 들어가서 차 시간을 알아보는지 역장인 듯 한 사람과 몇 마디 하더니 다시 나와 대합실을 빠져나간다. “저런 간부들은 얼마나 좋을까?” 부러운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나도 여기 장사 오기 전까지 하루 11시간이상씩 농장 일에 충실했고 정말 내가 우리나라의 쌀 창고를 책임졌다는 자부심으로 열심히 일을 했다. 봄에는 허리 부러지게 논에 모를 냈고 여름엔 처녀손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손바닥 전체가 굳은살이 박히도록 호미질을 했고 가을에는 한 알의 낟알이라도 흘릴세라 정성들여 벼를 베고 겨울에는 또 더 좋은 퇴비를 생산하려고 남의 집 변소 똥까지 도둑질해가며 열성분자 명단까지 올랐다.
하지만 사회주의 분배원칙에 따른다는 명목 하에 내 앞에 차례진 분배량은 실로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우리 네 식구가 한 달 정도 먹을 수 있을 만큼 너무 적은 양이였다.
현금으로 나온 분배돈은 바로 통장에 들어간다며 빈껍데기 통장만 준다. 5년 동안 빈 통장만 받고 나라사정이 어렵다는 구실로 돈은 일전도 받아보지 못했다. 결국 그 돈은 농장 관리일군들이 드셨겠지? 아니면 김정일이 먹었을까?
나는 하루 두 끼 겨우 죽을 먹으며 한 끼에 5개의 삶은 감자 먹고 한 시간 뒤에 화장실 한번 가면 속이 텅 비는 그런 생활을 하며 피땀 흘려 번 돈이건만.
“왜 이런 거지? 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가난해지고 하루하루 먹을 식량걱정을 해야 되고 저런 간부들은 왜 저렇게 기름이 번지르르하게 잘 사는 거지?”
하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왜 그래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원래가 그런 법 인줄알고 살아야만 했다.
이틀 후 드디어 기차가 들어온다는 소문이 대합실에 쫙 퍼지고 사람들은 술렁이며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다 잃어버리고 빈 몸이 되었지만 그래도 집에는 가야하기에 나도 친구도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출입구를 빠져나왔다.
얼마 뒤 기차가 들어왔다. 수백 명 사람들의 기차 탑승전쟁이 시작되었다. 입구부터 시작하여 어디라 할 것 없이 사람 천지다.
힘 센 남자들은 입구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마구 짓밟으며 올라가고 애를 업은 아줌마는 앞에 올라가는 남자들의 뒤꽁무니를 꽉 움켜쥐고 악을 쓰며 앞사람들처럼 앉아있는 사람들을 마구 짓밟고 올라간다. 그렇게라도 올라가면 다행이지만 힘이 없어 그렇게도 못하는 사람들은 길 내라고 고함만 질러대다. 완전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
입구에는 사람들이 꽉 막혀있어 아예 탈 엄두도 못 내고 유리가 다 깨져 비닐박막으로 막아놓은 창문 쪽으로 가서 돈 받고 태워주는 사람에게 우리 밥까지 굶어가며 아껴두었던 돈을 주고 창문을 통해 열차에 올랐다. 하지만 발을 옮겨 디딜 수도 없다. 콩나물시루도 이것보단 빽빽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겨우 창문턱에 손을 짚고 발은 의자에 한발만 걸치고 한 발은 공중에 뜬 채로 기차가 출발했다.
그런 채로 한 여덟 시간이 지난 후에 겨우 바닥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되었고 그나마 바로 서서라도 갈수 있게 되었다. 두 발을 바닥에 붙이자 이제 살 것 같다. 그동안 깜박하고 있던 잃어버린 배낭 생각에 또 가슴이 답답해진다.
어느덧 캄캄한 밤이 되었다. 전등 하나 없는 열차는 오로지 달빛으로만 자기가 태우고 가는 춥고 배고프고 화장실 가고 싶어도 발을 옮길 수 없어 이 악물고 참으며가는 모든 사람들을 기억시키며 힘겹게 달렸다.
한참을 달리던 기차가 갑자기 “삐이익~~~~~~~”하고 급정거를 하는 것이다. 간신히 서있던 사람들이 기차가 달리던 방향으로 약속이나 한 듯 쓰러졌다. 또다시 고래고래 욕설이 터지고 저저마다 목청껏 “뭐야?” 하고 질러댄다.
그런데 심상치 않다. 열차승무 안전원들이 손전등을 들고 열차 앞쪽으로 뛰어간다. 창문 옆에 앉아있던 남자가 한참을 목을 빼들고 내다보더니 “또 하나 죽었구만.”하고 아무 일도 아닌 듯이 말한다. 기차 빵통 위에 앉아서 가던 사람이 잘못 움직여서 전기에 감전되어 죽었단다.
처음 이런 일을 겪은 나와 친구는 너무 놀라서 입이 딱 벌어졌지만 전문 장사로 기차에서 살다시피 하는 사람들은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닌 듯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태연할 수가 잇지?”
나는 내가 잘못 들었나싶어 조용히 옆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다.
분명 사람이 죽었단다. “에이그. 잘 죽었지. 이렇게 맨날 고생하느니 죽는 게 몸도 마음도 편한 거지.” 하고 말하는 아주머니는 오히려 그 사람이 부럽기까지 한 표정이다.
참 이렇게 슬픈 이야기를 이렇게 태연하게 하는 그 사람들의 속은 또 어떤 아픈 상처들로 채워져 있을지 누구도 알 수가 없다.
“칙칙폭폭 칙칙 폭폭. 치~익 칙”
숨 가쁘게 한걸음 한걸음 전진하던 증기기관차가 드디어 ‘온성’이라고 쓴 기차역에 도착했다.
자강도 강계역에서 배낭을 잃고 출발한지 열흘만이다. 그나마 전기기관차로 왔으면 좀 더 빨리 왔을지 모르겠지만 회령역에서 고물통 증기기관차로 바뀌고서는 한정거장을 가고 한 시간씩 서서 기력보충을 하느라고 기차로 4시간 거리를 5일 만에 온 것이다.
냄새나고 춥고 거기다 배고픈 것은 기본이다. 콩나물시루 같은 빵통에서 내렸다.
집이 있는 땅에 내리긴 했지만 장사 한답시고 간신히 꾼 돈을 홀랑 다 털어먹고 빈손으로 집에 들어가면 아빠한데 혼날 생각을 하니 집 쪽이 아닌 친구집으로 발길이 돌려진다.
그런데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 기다린다.
“금아 니네 아버지 상새 났단다.” 친구 언니가 신을 벗으려는 나한테 말했다.
“무슨 소리야?” 하고 되물으면서 내 머릿속엔 중풍으로 누워계시던 아빠모습이 스쳐지나간다.
“설마?”
“한 며칠 됐다. 소문이 자자하던데.”하고 친구 언니가 말하는 걸 들으며 뛰쳐나와 20리 밖에 있는 집으로 정신없이 달렸다.
“아닐 거야.”하고 혼잣말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쩜 장사 망한 거 혼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다가 기가 막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니…….
20리길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정신없이 달리다 집 앞에 도착했다. 가슴이 정신없이 널뛰기를 한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지만 안 보인다. 아랫목에 누워계시던 아버지가…….
1년 전 저녁을 드시다가 갑자기 머리를 부여잡고 쓰러진 아버지. 동네에 사는 병원 의사에게 달려가 아버지가 쓰러진 얘기를 하고 불러다가 진찰을 해보니 풍이란다.
“가볍게 지나간 것이라서 이제부터 식사 잘 대접하고 영양보충 좀 하고 약 잘 쓰면 나을 수도 있는데…….” 하고 의사가 차마 우리한텐 말 못하고 혼자 말처럼 중얼 거린다. 하지만 한 끼 식사꺼리도 겨우겨우 마련해나가는 우리 집에 영양보충이라니? 약이라니?
엄마와 동생이 매일 석탄 달구지를 끌고 15리 밖에 있는 곳에 가서 손발을 다 얼려가며 겨우 팔아 하루 식량을 해결하는 우리 신세에 어디서 그런 돈을 마련한단 말인가?
그 다음날부터 아버지는 왼손과 왼쪽다리를 못쓰셨다. 마비가 온 것이다.
지금 여기 남한 같아서는 그 정도 풍은 아무렇지 않게 고쳐 드릴 텐데. 병이라고 감히 말도 못 붙이게 고칠 텐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과연 무엇이 나를 그렇게 무능력하게 묶어놓은 것인지? 무엇 때문에 나는 아버지를 그렇게 쉽게 보내드려야 했는지?
“엄마, 아버지는?”
“상새났다.”
엄마가 울먹이시며 자초지종을 얘기 해주셨다. 돌아가시기 직전 아버지가 나를 찾으셨단다. 혹시라도 장사 나간 큰 딸이 돈이라도 벌어서 금의환향이라도 하길 바라신건지…….
아버지는 “금아 금아” 그리고 조용히 잠드셨다.
그것이 마지막 이였다. 순간 정말 TV에서만 듣던 그 단어. 가슴이 터질 것 같고 목이 메이면서 귀에서 윙~하는 소리가 났다.
4) 해외의 가련한 사람들
그들에게 가야만 함. 이 나라에 들어왔듯이.
우리 교회가 할 일. 선교. 열방 가운데 있는 강도 만난 자들을 도와야 함.
교회 부흥을 위한 이유는 분명함. 선교하려고.
결론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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