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 금요설교

감사하며 사는 비결 사무엘하 7:18-21

안희환2 2012. 5. 18. 20:13

감사하며 사는 비결 사무엘하 7:18-21

 

18.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19.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있을 먼 장래의 일까지도 말씀하셨나이다 주 여호와여 이것이 사람의 법이니이다

20. 주 여호와는 주의 종을 아시오니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21. 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셨나이다

 

186098일 승객들로 가득찬 증기선인 레이디 엘진(Lady Elgin)호가 미시간호 해변에서 침몰하였다. 해변가로 모여든 학생들 중 E.W.스펜서(E.W. Spencer)는 카레트 성서 대학(Garrett Biblical Institute)에 다니는 학생인데 그는 한 잔해에 매달려 있던 여인을 보다.

 

그는 곧 그의 코트를 벗어 던지고 험한 파도에 뛰어들어 수영을 하여 그녀를 안전하게 구조하였다. 젊은 스펜서는 그날 16번이나 그 사나운 파도에 용감히 맞서 17명의 사람을 구조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지칠 대로 지쳐 헛소리를 하며 쓰러지고 말았다. 스펜서는 얼마 후 어느 정도 회복했지만 그날의 지나친 과로를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였다. 결국 그는 건강을 해쳐 희망했던 성직자가 되지 못하였다. 그는 자신의 생활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보여 준 것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참 놀라운 일이 있다. 스펜서가 노인이 되었을 때 어떤 사람이 물었다. "선생님은 해상사고에서 17명을 건졌다지요, 선생님에게 몇 사람이 찾아와 감사하다고 했는지요?". 그때 스펜서는 침통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어쩜 그럴 수가 있느냐고 물을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원받았음에도 주님께 감사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우리도 별로 나을 것이 없다.

 

여러분 어떠한가? 정말 감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투덜거리며 원망 속에 살아가고 있는가?

 

예수님의 안타까운 찾으심. “아홉은 어디 있느냐?

 

지금도 우리를 보시며 찾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가?

정말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다면 주님께 예배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길 것인데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것이 실상 아닌가? 수요예배나 금요예배는?

정말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다면 주님께 정성을 다해 예물을 드려야 할 것인데 사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 실상 아닌가? 쓰다 남는 것으로 드릴 정도로 주님이 초라한 분인가? 가장 귀한 것을 가장 먼저 드려야 하지 않을까?

정말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다면 자신의 몸과 재능으로 교회를 섬겨야 하는데 실상은 자신이 일과 가족에 대해서만 분주하지 않은가?

정말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다면 주님의 지상명령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 실상 아닌가?

 

여러분이여. 하나님의 뜻이 명확한 본문이 살전5:16-18이다. 그중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있다. 묻는다. 여러분은 순종하는가? 좀 더 질문을 쉽게 하자. 여러분은 순종하려고 노력하는가?

 

추수감사절 유래에 대해선 많이 들었을 것이다.

 

청교도들이 메이 플라워 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중 반 이상이 굶어 죽고 병들어 죽었다. 게다가 남아 있는 사람들마저 해마다 겹치는 흉년으로 고통을 당했다. 도무지 밝은 전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금식 기도를 선포하고 경건한 이 신앙인들이 하나님께 매달렸다. "하나님, 이 상황을 돌보아 주십시오.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이렇게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를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땐가 또 한 번 대단히 어려운 형편에 놓이게 되자 그들은 다시 금식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금식 기도를 놓고 의논하는 자리에서 어떤 농부 한 사람이 이렇게 제의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금식하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달리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비록 농사가 흉년이 들고 형제자매들이 병으로 쓰러지는 어려움을 겪지만 이 가운데서도 우리가 감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식량이 풍족치 않고 여건이 유럽보다 편안하지는 않지만 신앙의 자유가 있고 정치적인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광대한 대지가 열려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금식 대신에 감사 기간을 정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농부의 그 말은 참석한 사람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다. 그래서 금식 기도 주간을 선포하는 대신 감사 주간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것이 감사주일의 기본 동기였던 것이다.

 

우리가 그와 같은 감사의 마음을 회복하는 축복이 임하기를 바란다.

 

특별히 우리는 오늘의 주인공인 다윗에게 집중하고자 한다. 그는 정말로 감사를 잘하는 인물이었다.

“17 내가 여호와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7)

“1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사를 전하리이다 2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3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의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9)

“49 여호와여 이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이다”(18)

“4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찌어다 5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6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라 하였도다”(30)

이런 식으로 하면 하루 종일 갈 것이다. 정말로 감사가 충만한 다윗이었다. 그것은 어렵고 고달은 시절에도 마찬가지였고 하나님은 감사할 줄 아는 다윗을 놀랍게 축복하셨고 위대하게 사용하셨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가 감사를 잘할 수 있었던 비결이 담겨져 있다. “감사하며 사는 비결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눌 때 우리 모두에게 귀한 도전이 되는 말씀이 되기를 원한다.

 

감사를 잘하는 다윗. 그 비결은

 

1. 자신에게 주신 은혜를 잊지 않음

 

18.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1) 다윗의 과거

 

일개 양치기.

 

아버지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함.

“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 2 사무엘이 가로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3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찌니라 4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가로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5 가로되 평강을 위함이니라 내가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케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하고 이새와 그 아들들을 성결케 하고 제사에 청하니라 6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8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의 앞을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9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이새가 그 아들 일곱으로 다 사무엘 앞을 지나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11 또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가로되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삼상 16)

 

“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27)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

 

2) 하나님이 다윗을 선택하심.

 

사무엘을 통해 다윗을 선택하심.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심.

모든 위기와 곤란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다시 일어남.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하였다.

 

3) 다윗은 그 모든 것을 잊지 않음

 

원래 좋은 환경과 위치가 되면 과거를 잊어버리는 것이 사람들의 못된 습성중 하나임.

 

어떤 사람이 한 달 동안 아주 특이한 실험을 하였다. 그 실험이란 어떤 마을의 일정한 구역에 있는 각 집에 매일 100달러씩 아무런 조건 없이 나누어 준 다음 그 결과를 관찰해 보는 것이었다.

 

첫째 날 집집마다 들러서 현관에 100달러를 놓고 나오는 그를 사람들은 제정신으로 하는 행동인지 의아해 하면서도 멈칫멈칫 나와서 그 돈을 집어 갔다. 둘째 날에도 거의 마찬가지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셋째 날, 넷째 날이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돈을 직접 사용해 본 결과 진짜 돈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 동네는 날마다 100달러씩 선물로 주고 가는 사람의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두 번 째 주쯤 되었을 때는 동네 사람들은 현관입구에까지 직접 나와 돈을 나눠주는 사람이 언제쯤 올 것인가 하고 평소에 그가 오던 쪽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또 이웃마을에까지 소문을 퍼뜨렸다. 그리고 그처럼 돈이 주어지는 것을 무척이나 기뻐했다.

 

그런데 세 번 째 주쯤 되자 이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이상한 사람이 와서 돈을 주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지 않게 되었다. 넷째 주가 되었을 때쯤은 매일 100달러씩 돈을 받는 것이 마치 세끼 밥 먹고 세수하고 출근하는 것 같은 일상사가 되어 버렸다. 그것이 혜택이라는 것도 잊어버린 것이다.

 

드디어 실험기한이 끝나는 한 달의 맨 마지막 날에 그 실험을 계획했던 사람은 평소와는 달리 그 마을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주지 않고 그냥 그 골목을 지나갔다. 그러자 이상한 반응들이 터져 나왔다. 마을 사람들은 문을 거칠게 열고 현관까지 나와서 성난 목소리로 "우리 돈은 어디 있습니까" "당신에게 어떤 사정이 있는지 모르지만, 왜 오늘은 내 돈 100달러를 안 주는 겁니까?"라고 따져 묻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울이 이런 꼴이다. 처음 왕이 될 때 그는 너무도 겸손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그런데 왕으로 지낸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것을 당연시 하는 것이다. 100달러를 당연시하듯 말이다.

-제사 불순종

-아말렉 진멸 불순종. 결국 버림 받음.

 

그러나 다윗은 그러지 않음. 내가 무엇인데 왕이 되었나이까? 왕이 된지 한참 되었는데도 과거 자신의 초라하던 모습을 잊지 않음.

 

부흥한 교회의 목사님이 개척교회 시절을 잊지 않는다면

부자 된 성도가 가난하던 시절을 잊지 않는다면

치료받은 사람이 병으로 고생하던 시절을 잊지 않는다면

김익두 목사님의 예화.

반대로 다른 많은 사람들.

 

특별히 구원받은 성도가 그 감격과 감사를 잊지 않는다면, 구원의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한다면,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감사가 가능함.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이미 주신 은혜는 헤아릴 수 없다. 그것만 가지고도 우리는 영원히 감사할 수 있다. 잊지 말라.

 

 

2. 주님이 장래 이루실 것을 기대함

 

20. 주 여호와는 주의 종을 아시오니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21. 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셨나이다

 

1) 하나님이 주신 약속

 

-아들이 성전 짓게 하겠다

-왕권을 이어가게 하겠다.

-존귀하게 해주겠다.

-대적을 이기도록 해주겠다.

 

2) 이 모든 것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음.

 

그러나 다윗은 모든 것을 기종 사실화함. 그것이 바로 믿음 히11:1-2

기정 사실화 한 것을 가지고 감사.

 

3) 우리에게 주어진 약속

 

내게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믿고 감사하는 것

-수많은 대중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 나는 믿고 있음. 그리고 감사함.

-수많은 선교사 파송.

-영 혹 육의 병든 자 치유

내가 이것을 믿는 이유.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에. 내게 주신.

 

성경에 나타난 수많은 약속. 믿고 미리 소망 중에 감사해보시라. 그것이 내 것이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성경의 약속은 참 많다. 그것을 믿고 기대하면서 미리 감사해보시라.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의 약속

“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3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4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5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7 네 대적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8 여호와께서 명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9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면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10 너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세계 만민이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11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육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으로 많게 하시며 12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찌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13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14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28)

 

이 말씀을 믿고 미리 감사.

 

-능력과 표적을 주신다는 약속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16)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믿고 미리 감사하라.

 

-믿는 자에게 문제를 해결해주신다는 약속

 

하나님의 약속. 문제를 해결해주신다고 하심. 단 믿는 자에게.

 

“14 저희가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가로되 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 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때부터 나으니라 19 이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17)

자신의 문제 해결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문제 해결까지. 내가 가진 감사. 해결의 범위가 점차로 넓어짐.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기대하라. 그때 감사가 가능. 단 그 기대는 약속에 근거한 것. 그 중심엔 성경.

 

 

3. 나쁜 것보다 좋은 것을 생각함

 

19.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있을 먼 장래의 일까지도 말씀하셨나이다 주 여호와여 이것이 사람의 법이니이다

 

1) 성전을 지으려는 다윗

 

이것은 정말 중요한 일.

 

2) 나단을 통한 하나님의 응답

 

“1 여호와께서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거하게 하신 때에 2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찌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3 나단이 왕께 고하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무릇 마음에 있는 바를 행하소서 4 그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5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나를 위하여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겠느냐 6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날까지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장막과 회막에 거하며 행하였나니 7 무릇 이스라엘 자손으로 더불어 행하는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8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처럼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데서 취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고 9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 10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저희로 자기 곳에 거하여 다시 옮기지 않게 하며 악한 유로 전과 같이 저희를 해하지 못하게 하여 11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13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14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것 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17 나단이 이 모든 말씀과 이 모든 묵시대로 다윗에게 고하니라”(삼하 7)

 

3) 좋은 쪽으로만 받아들인 다윗

 

사실 여기에는 하나님의 거절이 있음.

 

“6 다윗이 그 아들 솔로몬을 불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전을 건축하기를 부탁하여 7 이르되 내 아들아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으나 8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대상 1)

 

그러나 다윗은 그것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에 집중함.

 

미국 남부 도시의 큰 정신병원의 구급차 운전수로 일해 온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여전한 일과로 정신병 환자를 병원에 내려놓고 차를 돌리려고 하는데 병원의 윗층 창문을 통하여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 좀 보시요!" 운전수는 병실 위를 바라보며 "나를 부르는 겁니까?" 라고 했다. 그러자 병실의 창문에다 상체를 내어 놓은 어느 사람이 대답하기를, "그렇소. 그런데 내가 당신에게 한 가지 물어 보아도 되겠소?"했다. 운전수가 "무슨 질문인데요?"라고 하자, "당신은 건강한 정신을 가진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해 본 일이 있소?" 라는 것이었다. 그 운전수는 나중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15년 동안 이 병원에서 일하며 매일 정신병 환자를 운반하면서도 나의 건강한 정신에 대하여 한 번도 감사해 본 일이 없었음을 크게 깨달았습니다."

 

뭐든지 좋은 쪽으로 해석.

 

결론

 

자신에게 주신 은혜를 잊지 않음.

여러분에게 구원을 주셨다. 아들 딸.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백성. 믿음. 기도 응답.

 

주님이 장래 이루실 것을 기대함.

소망은 믿음을 가진 자의 몫이고 믿음이 있기에 소망을 가진 자만이 고난 중에도 감사할 수 있음. 하나님을 믿는가? 그러면 그분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감사.

 

나쁜 것보다 좋은 것을 생각함.

 

김준호씨는 인하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과에 진학하여 공부하다가 군에 입대했다. 군복무 19개월이 되던 10월 어느 날 부대에서 관물대 위에 올라가 물건을 정리하다가 실수로 땅바닥에 떨어져 크게 다쳤다. 척추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경추를 크게 다쳐 전신마비 환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절망적인 신체장애를 탓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받은 바 은혜를 감사하며 생활한다.

첫째는 내가 전신마비 환자가 되었기 때문에 주님을 영접하게 된 것이 무엇보다 감사하다.

둘째는, 군대에서 다쳤기 때문에 치료비를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셋째는 원호병원에 입원하는 중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된 것을 감사한다. 아내는 그때 병원의 실습생이었다.

넷째는 남들이 하지 못하는 구필화가 (입으로 그리는 화가)가 된 것이 감사하다.

1981년도에는 세종문화회관 전시를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었다. 그는 말한다.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여 감사하게 하소서

성례전

 

세례의 필요성/ 28:16~20

세례식은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특별한 예식으로서 이 시간 세례의 종류와 의미 등을 살펴보며 귀한 교훈들을 얻고자 합니다.

 

1. 세례의 종류

 

세례에는 물세례와 불세례가 있는데, 물세례는 물을 머리와 이마에 뿌리면서 세례를 베푸는 것이며, 불세례는 성령세례를 의미하는 것으로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할 때 혹은 고백한 후에 받는 세례입니다.

 

2. 세례받는 방법

 

세례의 방법에는 침례, 관수법, 살수법이 있는데 침례는 말 그대로 '물에 잠근다'는 뜻이며, 관수법은 '전신을 충만 시킨다'는 의미로 온 몸에 물을 뿌리는 것이며 살수법은 이마나 머리에 물을 뿌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꼭 알아두어야 하는 것은 세례(물세례)가 구원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구원받은 자에게 주님의 명령에 따라 베푸는 것이 세례입니다.

3. 세례의 참 의미

 

중생과 죄 사함의 표시입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의로 인간이 되셨기에 인간이 지키는 모든 것을 준행하셨습니다. 또한 그러한 본을 보이기 위해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신앙을 고백하며,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자기가 죄인임을 고백함의 표시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는 표식입니다.

신앙 생활은 한마디로 내가 죽는 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의 본질은 내가 얼마나 죽었느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순수한 신앙의 인격자는 잘 참고 인내하는 자요, 그 사람은 곧 자기의 혈기, 옛 사람, 감정 등이 죽은 사람입니다. 기독교는 나를 죽이는 종교요, 나를 십자가에 못 박는 종교입니다.

오늘 우리의 놀라운 구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그 복종을 통해서 우리의 십자가의 구원이 이루어진 것을 믿습니다. 내가 죽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며, 내가 죽을 때 신앙인격은 성숙해지고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져야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배하게 되고, 내 생각 속에 하나님의 생각이 나타나며, 내 뜻이 죽어져야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죽을 때 모든 것이 해결되고, 그곳에 행복이 있고, 평화와 기적이 나타나게 됩니다. 내가 죽을 때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도우심이 나타나고 하나님이 역사 합니다.

내가 죽어질 때 모든 것은 변하고, 모든 것이 해결되고 행복해 지고, 평화가 있습니다. 내가 죽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내가 죽어서 온전히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을 바라보며 전적으로 의지할 때 하나님은 앞서서 처리해 주십니다. 기독교는 죽는 종교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 지내는 것, 그것이 세례입니다. 죽은 사람은 몸 된 교회의 보배이고, 복을 받는 사람이며 성숙한 인격자가 됩니다. 내가 죽을 때 하나님이 한없는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그리스도를 옷 입는다(3:27)는 의미입니다.

세례 받았다는 것은 그리스도인 이라는 외적인 표시입니다. 왜 세례 받아야 합니까? 참 교인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예수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의 표시며, 예수그리스도와 한 몸이요, 새로운 신분이 된 표입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표시해 주는 것이므로 세례 받은 우리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에 감격하여 어떠하든지 나를 죽이는 작업을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 삶에 중요한 본질은 내가 얼마만큼 죽었느냐, 이것이 세례의 참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결론

 

세례는 은혜의 징표이지, 구원의 방편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세례 받는 일을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외적인 표시이기에 그리스도인으로의 객관적인 인정을 받지 못함과 아울러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세례는 내가 그리스도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외적인 표요, 주 위해 살고 주 위해 죽겠다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례 받기를 거부하면 그의 신앙에 기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세례 받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마지막 부탁이요, 명령입니다. 우리 모두 이 귀한 일에 동참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모범적인 헌신과 충성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만찬의 중요성/ 14:22-25

성만찬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가지신 유월절 만찬의 식탁을 통하여 제정된 성례전(聖禮典)입니다. 개혁 교회의 성례전은 두 가지인데, 세례와 성만찬 입니다. 두 가지 성례전 가운데 하나가 식탁에 둘러앉아 떡과 포도주를 나누는 예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사건이 성만찬을 통하여 우리에게 구체화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식탁에 둘러앉아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실 때, 우리는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대속(代贖)되어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는 놀라운 구원의 은총이 밥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만찬의 식탁은 구약 성경에 나타난 유월절 식사와 그리고 시내산에서 하나님 앞에서 함께 나눈 계약 식사와 관계가 있고,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많은 무리들을 먹이신 일이나 부활 후에 제자들과 나눈 식탁이나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어린양의 잔치에까지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중요한 사건들이 밥상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밥상에 둘러앉아 같이 먹음을 통해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해 온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 나타난 밥상 공동체

 

예수님께서 오셔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밥상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천국 비유는 대체로 잔치나 먹는 것과 관련된 비유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신 사건 같은 것도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떡을 거기에 모인 배고픈 사람들이 함께 나누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새로운 공동체 의식을 경험하는 자리였습니다. 마태의 집에서 함께 나눈 식사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 자리였습니다. 죄인들과 함께 밥상을 나누므로 모든 사람의 죄가 사해지고 거기에 새로운 공동체가 이루어졌음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제자들과의 유월절 만찬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양'(고전 5:7)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유월절 화목제에 사용된 양을 뜻하는 것으로 일부를 불에 태워 하나님께 드리듯이 예수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인간의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남은 제물을 나누므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새로운 공동체를 갈망하고 나아갔듯이,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을 제자들에게 주심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지향할 것을 명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 후 엠마오의 제자들과 함께 떼신 떡을 통하여 그들로 새로운 부활의 주님을 보게 하였고,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과 함께 떡을 나누시므로 저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일군으로 나갈 것을 명하셨던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식탁은 사죄와 용서 공동체 상호간의 섬김 새로운 공동체의 건설로 특징 지워집니다.

 

신약 성경에 나타나는 이런 모든 식탁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구약 성경에 나타난 여러 식탁들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질 때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성만찬은 이런 모든 식탁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것은 새로운 공동체를 지향하는 중요한 자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의 만찬은 교회와 교회가 이루어야 할 새로운 공동체의 요약일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요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리마 문서에 나타난 성만찬의 의미

 

이상의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성만찬의 배경을 바탕으로 하면서 세계교회협의회 가 채택한 문서에 나타난 성만찬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성만찬은 "교회가 모든 피조물을 대신하여 드리는 찬양의 대제사"(4)입 니다. "성만찬은 창조와 구원과 성화를 통해 이루어진 모든 것에 대하여, 인간들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세계 속에서 하나님이 이루신 모든 일들에 대하여, 또 하나님께서 하늘나라를 완성하심으로써 이루실 모든 것에 대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커다란 감사를 드리는 것"(3)입니다. 우리가 행하는 성만찬은 우리가 베푼 잔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푼 잔치에 우리가 초대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잔치의 주인 되신 하나님이 친히 임재하여 계시고 초대된 우리는 우리를 은혜의 잔치에 초대하 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예를 올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만찬을 행할 때 마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창조와 구원의 역사에 대하여 힘껏 감사의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이 성만찬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영접되어 하나 님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 다. 하나님의 식탁에 우리가 초대되었다는 사실은 특권이며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 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성만찬에 참여할 때 정장을 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참여하 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성만찬을 그리스도의 고난만을 기념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무겁게 행하여 왔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신 구원의 은총 에 대하여 감사하는 식탁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만찬은 감사 와 기쁨의 식탁이며, 아름다운 찬양과 정성으로 준비된 우리의 예물을 아울러 드림 으로 맞는 축제의 자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국 개신교가 성만찬을 소홀히 하므로 하나님이 하신 모든 창조와 구속의 역사 에 대한 감사의 제사를 올바로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예배를 하나님 의 현존에 대한 체험보다는 인간 중심의 예배가 되게 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한 국 교회가 기복적인 신앙 형태를 띄게 된 것도 창조와 구원에 대한 감사보다는 이 기적 욕구를 앞세웠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성만찬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그리스도에 대한 기념 (anamnesis)"(5)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념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과거 구원의 사건을 오늘에 재현하는 것을 뜻합니다. 성만찬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그의 살과 피를 나누어주심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와 모든 피조물을 위하여 그가 이루신 모든 일들과 함께 이 기념 속에 임재하며 우 리와 친히 교제를 나누신다"(6)고 하므로 '기념''임재'를 분리할 수 없음을 분 명히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만찬을 통하여 우리 가운데 임재하셔서 친히 그 와의 교제(communion)를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만찬은 우리와 그리스도와의 코 이노니아의 식탁임을 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은 2천년 전에 일어났지만, 그 효력은 시간 과 공간을 넘어서서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미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차려 지는 성만찬 식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준비하신 것이며, 이 식탁의 주 인으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그의 구속받은 자녀가 되게 하시는 것입 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에도 성만찬 식탁은 고난을 기념하기보다는 주님께서 이 루신 승리를 축하하며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은총을 감사하는 축제의 자리입니다.

 

셋째로, 이 성만찬을 성만찬 되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심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 다. "성령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성만찬 때 우리에게 실 제로 임재 하도록 하시며, 성만찬 제정 때 하신 말씀에 담긴 약속을 성취"하십니 다. "성령은 성만찬을 가능케 하시며, 성찬식이 계속해서 유효하도록 만드시는 무 한한 사랑의 힘"(14)이 되십니다. 성만찬의 기념이 단순한 회상이 아닌 현재적 경 험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오직 성령이 가능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만찬 사건의 근원이 되시며 궁극적으로 성취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와 성만찬의 중심인 하 나님의 성육신 하신 아들과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우리로 체험케 하시는 성령의 힘, 결국 성만찬 안에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코이노니아를 동시에 체험하게 되는 것이며, 아울러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코이노니아를 우리가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 다.

 

한국 개신교에서는 특히 성령의 은사에 깊은 관심과 체험을 가지고 있으나 성령 의 역사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므로 성령 운동이 대체로 잘못 전개되어 많은 부작 용을 낳게 만들었습니다. 성자와 불가분리적인 연합을 이룬 성령이라면, 그의 역사 또한 성자가 이루신 구속의 사건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령 운동은 은사 중심이 아닌 구속사 중심의 하나님 나라 운동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입 니다.

 

넷째로, 성만찬은 성도가 서로 교제하는 자리입니다. "교회의 삶을 양육하시는 그리스도와의 성만찬적 사귐은 동시에 교회 되시는 그리스도의 몸 가운데서 교제하 는 것을 말합니다.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가 충분히 드러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성만찬을 통해서입니다"(19). 성만찬을 통해서 교회 공동체가 확실하게 세워지 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것은 교회 안에서의 공동체 확립만이 아닌 세계 공동체 확 립에까지 확장되어야 함을 뜻합니다. "성만찬 의식은 하나님의 한가족 안에서 형제 자매로 간주되는 모든 사람들 간의 화해와 동참을 요구하며, 사회, 경제, 정치적 삶 속에서 합당한 관계를 추구하도록 촉구하는 끊임없는 도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동참할 때 모든 종류의 부정의, 인종차별, 인종분리 주의, 자유의 결핍이 근본적으로 도전 받게 됩니다"(20). 성만찬에 참여한 우리가 이 세계 속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그리고 불의와 분열과 교파주의 같은 것들을 계속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만찬을 통한 성도의 교제는, 이 세계 속에 깃들인 모든 악과 투쟁하여 마침내 모든 세계민이 코이노니아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성만찬은 하나님 나라를 미리 맛보는 것이며, 이 땅에 나타난 그 나라 의 징표들에 대해 감사를 드리며, "그리스도 안에서 임해 오는 하나님 나라를 기쁜 마음으로 기념하고 또 고대하는 축제"입니다(22).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마 지막 하나님 나라를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성만찬은 미래의 이상적인 새로운 공동 체를 미리 맛봄이요, 동시에 그것을 지향해 가는 밥상임을 뜻합니다. 성만찬은 완 전한 코이노니아가 회복된 미래의 공동체를 미리 체험하는 자리입니다. 따라서 우 리는 이 자리에서 우리 사이에 있는 모든 차별이 극복되어야 하며, 우리의 가난한 이웃들을 돌아보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할 것을 다짐하여야 할 것입니 다. "성만찬을 거행하는 자체가 이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한다는 증거" 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다시 성만찬 자리에 둘러앉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면서 그에게 감사의 제사를 드림과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이 루신 모든 구속의 은총을 체험하면서 그 안에서 거듭난 자임을 확인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좇아 하나님 나라의 일군으로 모든 불의와 대적하며 세계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여야 하겠습니다. 성만찬은 단순한 회상의 자리가 아닙니 다. 새로운 공동체를 지향하는 자리이며, 그것을 미리 맛보는 자리입니다. 성만찬 의 이 깊은 뜻을 이해할 때 우리는 보다 확실한 신앙으로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역사를 이 땅 위에 실현하게 될 것입니다.

 

성만찬의 이 모든 은총이 여러분 가운데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