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의 칼럼

오만하고 못된 시인들에게/ 안희환

안희환2 2012. 4. 3. 18:07

오만하고 못된 시인들에게/ 안희환

 

시를 어렵게 써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깊은 번뇌 속에서 시어를 찾아 멀고 먼 여행을 떠나지 않은 채 시를 써서는 결코 안 된다는 사람들이 있다. 시인도 아니면서 시인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며 눈에 핏발을 드러낸 채 열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 요즘은 시의 수준이 떨어졌다며 개나 소나 다 시를 써서 생긴 현상이라고 흥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 이제 갓 시를 쓰기 시작한 사람들은 주눅이 들고 만다. 공연히 쓸데없는 짓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의 늪에 빠져 슬그머니 글쓰기를 내려놓게 된다. 시를 쓰지 않던 사람들은 처음부터 시 쓰기를 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마음과 함께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황송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안타까운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생각이 있다. 주체하지 못할 만큼 감정이 격동되어 그것을 어딘가에 풀어놓지 않으면 터져버릴 것 같을 때가 있다. 너무 큰 슬픔 혹은 너무 큰 기쁨이 용암처럼 들끓어 화산으로 분출되지 않으면 심장이 흩어질 것 같을 때 글을 통해 평온을 되찾는다면 그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렇게 해서 나온 용암의 좋고 나쁘고를 너무 따질 필요가 있을까?

물론 시 가운데 질적 차이가 천차만별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누가 봐도 수준 높은 작품들이 있다. 세월이 가도 풍화되지 않을 만큼 견고한 예술성을 지닌 수작이 있는 것이다. 반면 이것도 시라고 쓴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조악한 글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기초적인 문법조차 따로 노는 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좋은 시를 쓰는 사람들은 글을 써도 되고 실력이 안 되는 사람은 글 쓸 생각 말고 타인의 글을 감상이나 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시작을 해보기도 전에, 노력하는 시간들을 쌓아 조금 더 나아지는 글쓰기를 하기도 전에 미리 싹을 뽑아버리는 데서 자신의 시인됨을 자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문제다. 자신이 인정하건 인정하지 않건 교만의 탑 안에 갇혀 우쭐대는 눈으로 다른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그것도 모자라 그런 마음을 글로 써서 일부러 마음 약한 초보 시인들에게 읽게 하는 것은 참 못된 일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시를 쓰라고 요청한다. 때로는 민망한 글도 보게 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시를 쓰라고 한다. 처음에는 하나의 글 안에서조차 통일성을 갖추지 못한 채 따로 노는 대목들이 즐비하기도 하지만 격려를 받으며 계속해서 시를 써나갔을 때 이전과 전혀 다른 물건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을 본다. 유명한(?) 시인들이 보기엔 허접해보일 수 있겠지만 그래도 대단한 일이 아닌가?

자기들끼리의 성 안에 갇혀 고상한 척 하는 사람들, 남들은 이해하지 못할 글들을 배설해놓고는 자신들이 구름 위를 거니는 사람들인 척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은 결국 독자들에게도 외면을 당하고 만다. 읽어주는 이 없이 혼자 자신의 시를 읽으며 미소를 짓는 모습은 수준 있어 보이는 게 아니라 처량해 보인다. 조금 더 낮은 자리에 내려와서 사람들과 소통도 하고 이제 막 시를 쓰기 시작한 사람들과 사귀면서 용기도 불어넣어주는 중견 시인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