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 오후설교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 요12:24-26(2012. 1. 1 주일오후예배 설교)

안희환2 2012. 1. 1. 13:38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 요12:24-26(2012. 1. 1 주일오후예배 설교)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는 무엇일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표시는 무엇일까?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증거는 무엇일까?

 

그것은 열매일 것임.

성령의 열매를 일단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임.

그러나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 전도의 열매. 영적 출산.

복음을 전해서 누군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영광 받으심. 전도된 사람은 영적 자녀가 되는 것임. 자라서 결혼한 후 자녀를 낳듯이, 그 자녀를 태의 열매라고 하듯이 전도된 사람을 열매라고 할 수 있는 것임.

 

예수님을 만난 후의 관심사.

천국에 대한 관심.

천국의 모형인 교회에 대한 관심. 한계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었기에 교회 역시 한계를 가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매우 중요한 존재.

형제자매의 성장에 대한 관심.

더 나아가 아직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관심. 예수님을 만나기 전엔 외형적인 것들이 보였는데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는 더 본질적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임.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

 

혹시 여러분 가운데 자신의 관심사가 세상적인 것 뿐이라면 자신이 정말 구원받은 사람인지 점검해 봐야 할 것이다. 진주의 비유처럼 천국을 발견한 사람이 천국을 위해 그 어떤 대가도 지불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원하기는 여러분의 관심이 하나님께 있기를 원하고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기를 원한다.

 

그러면 열매를 맺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가?

 

1. 죽어야 한다

 

죽어야 한다고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1) 씨앗의 일반적인 원리

 

자기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 아무런 싹도 나오지 않음.

싹이 나오지 않는데 가지가 생기고 입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지는 않을 것임.

 

썩어야만 싹을 틔울 수가 있음.

 

2)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씀.

 

한 알의 밀은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임.

요한복음 12. 복선이 많이 깔려 있음.

 

a. 마리아가 향유 부은 사건.

가롯 유다의 책망. 예수님의 변호.

장사를 예비한 것이라고.

 

b. 호산나 찬송하는 무리들.

스가랴 9:9의 성취. 메시야 예언. 그러나 그만큼 죽음이 임박한 것.

 

c. 인자가 영광 얻을 때가 왔도다.

 

십자가 사건을 가리키는 것임.

죽음인데 왜 영광.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온전한 순종이 이루어지는 시점.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는 시점.

 

d. 죽음에 대한 분명한 예고.

“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33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12).

 

들린다는 말씀. 3장의 내용과 연결. 모세가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예수님을 통해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짐.

 

e. 결국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은 수많은 열매들이 생김.

 

3) 이 말씀은 우리를 향한 도전이기도 함.

 

한 알의 썩어지는 밀알이 되라는 것임.

가만히 자기 자신의 고집과 주장 생각 가치관 경험을 유지하고 있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음. 자아가 썩어야 함. 죽어야 함. 자아가 죽어야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음. 영혼 구원하는 것. 자아가 생생한 사람에게는 관심도 없는 일. 자아가 추구하는 것은 정욕적이고 세상적이고 마귀적인 것들 뿐임. 세상의 부귀영화와 출세와 성공이 삶의 모든 것이지 잃어버린 영혼들이 보이지 않음.

 

그러나 기억하라. 그렇게 살다가 하나님 앞에 설 때는 부끄러움만 가득할 것임을.

자신을 내어줄 수 있어야 함. 하나님을 향한 철저한 헌신이 필요함.

 

중국의 놀라운 부흥. 하루에 삼만 명가량이 주님께 돌아오는 중.

중국에 여러 차례 가본 나 역시 많이 놀람. 도전을 주러가는 게 아니라 도전을 받으러 가는 것.

 

왜 이런 일들이 있을까? 한 알의 썩어진 밀알들이 많이 있었던 것임.

그 열매들을 거두는 것임.

 

아래는 백투 예루살렘에서 인용한 글

 

중국 저장성에 있는 원저우라는 도시 한 곳에서만도 49명의 목사들이 러시아와 국경 지대에 있는 강제노동수용소로 끌려갔다. 대부분 복음을 전파했다는 죄목으로 최장 20년까지 징역을 선고받았다. 이들 49명 중 살아 돌아온 사람은 단 한 명이었고 나머지는 전부 옥사했다. 우리 집이 있는 난양 현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끝까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회의 벽에 매달리는 십자가형을 당했다. 어떤 이들은 쇠사슬에 묶여 말이나 자동차에 끌려 다니다가 죽음을 맞기도 하였다.

 

어느 목사는 몸이 꽁꽁 묶인 채 긴 밧줄에 매여 있었다. 그가 끝까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하자 격분한 당국은 임시로 만든 기중기에 그를 달아 허공 높이 끌어올렸다. 박해자들은 반혁명 분자라고 거짓으로 고소한 수백 명의 증인들 앞에서 목사에게 신앙을 버릴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목사는 아니요! 난 나를 구원하신 주님을 결코 배반할 수 없소!”라고 외쳤다. 결국 그들은 밧줄을 놓았고 목사의 몸은 한참 아래에 있는 땅으로 곤두박칠쳤다. 고문하던 사람들은 고꾸라져 있는 목사의 몸을 살폈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한 그들은 목사를 다시 공중으로 올렸다가 떨어뜨려 결국 끝장을 내고 말았다.

 

그는 이 땅에서는 죽었지만 하늘에서는 끝까지 충성한 자의 상급을 받고 영원히 살아있다.

1953년이 되자 모든 외국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추방되었다. 어떤 선교사들은 강제로 떠나기를 거부했고 이로 인하여 수년 동안 옥고를 치러야 했다.

 

여러분 도전하고 싶다.

복음 전도를 위해 매를 맞아 보았는가? 감옥에 가본 적이 있는가? 혹시 재산을 몰수당해본 적이 있는가? 회사에서 불이익을 당해본적이 있는가?

 

어쩌면 전혀 관심이나 생각조차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며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지상명령이 영혼 구원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니 말이다.

 

 

2. 죽으면 유익이다

 

한 알의 썩어지는 밀알 이야기를 하시면서 주님은 자신의 생명을 미워할 때 오히려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하신다.

 

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1) 역설적인 진리들

 

성경에는 역설적인 진리들이 많다. 세상의 원리와 전혀 다른 것들.

속옷을 빼앗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주라. 빼앗기지 않도록 항거해야 하지 않는가?

오른편 뺨을 때리면 왼뺨을 내밀라. 왼뺨이라도 가려야 하는 것 아닌가?

원수를 사랑하라. 보복해야 용기 있는 것 아닌가?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동해하라.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한다. 종이 되면 밟히는데 종이 되라는 것인가?

생명을 사랑하면 잃는다. 생명을 미워하면 영생을 얻는다. 아니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는가?

 

2) 오해하지 말 것

 

생명 경시 사상을 말하는 것이 아님.

자살 사이트. 참으로 심각.

경제적인 이유로 자살.

학업 성적 때문에 자살. 이상한 건 아예 꼴찌하는 아이들은 학업 성적가지고 자살 안함.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기대하는 사람들. 그로 인한 중압감.

실연당했다고 자살. 군대에서 총 들고 나오기도 하고.

 

성경은 어느 곳에서도 생명 경시를 말하고 있지 않음.

오히려 생명을 소중히 여기라고 가르침.

 

가장 큰 계명. 하나님 사랑.

두 번째 큰 계명. 이웃 사랑. 그런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자기 몸 학대하면 둘째 계명도 못 지킴. 자신을 소중히 여길 수 있어야 그런 자세로 이웃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가능함.

 

3) 그러면 무엇을 의미하는가?

 

진정한 가치를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히 여기는 것.

생명보다 더 높은 가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생명도 내어놓는 것.

 

마가 마 목사는 허난성 사람이다. 그리스도인 부모의 외아들인 그는 오래된 도시 카이펑에서 공부했고 정부 소속 학교의 선생이 되었다. 그러나 주님께 마음을 열지 못했던 그는 1937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아들의 비참한 죽음 앞에서 찢어진 마음 상태로 갑자기 십자가 밑에 슬픔을 토로하며 주님께 무릎을 꿇었다. 그 후 마가 마 목사는 세상 일을 버리고 감리교 자유성경학교에 들어가 훈련을 받았다. 제임스 테일러 부부가 산시성을 떠날 때 마가 마 목사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그들을 따랐다. 그리고 그는 서북성경학원의 창립 멤버가 되었다.

 

1942년 초에 마가 마 목사는 주님과 함께 깊은 대화를 나누었으며 이 사건은 그의 인생을 영원히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고 아직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광활한 이슬람 국가를 향한 복음의 개척자가 되어야 한다는 동기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달 후 그에게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19241125일 저녁 기도하던 중 주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신장으로 가는 문이 이미 열렸다. 너는 가서 복음을 전하라이음성이 나에게 들렸을 때 나는 두렵고 떨렸다.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과거에 신장을 위해 기도해 본 일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곳은 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에 대하여 아내에게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으며 단지 기도만 하였다.

 

정확하게 5개월간 기도를 해 온 때인 1943425일 부활절 아침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웨이강 둑에서 기도를 가는데 나는 신장으로 가라는 소명에 관하여 말했고 두 명의 동료 가운데 한 사람은 자기도 이미 10년 전에 비슷한 소명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동역자를 이미 준비해 놓으신 것을 두고 감사드렸다. 그러고 나서 학교로 돌아왔는데 바로 그날 부활절 주일 새벽예배 때 여덟 명의 학생이 신장을 향한 선교의 부담을 갖게 된 것을 알았다.

 

그러자 주님이 말씀하셨다. “오순절 역사 이후로 복음의 통로는 대부분 서쪽 방향으로 퍼져 나갔다. 예루살렘에서 안디옥 그리고 유럽 전역으로 그리고 다시 유럽에서 미국 그리고 동양으로 중국 동남 지역에서 북서쪽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서쪽의 간쑤성에서부터는 견고하게 세워진 교회가 없었다. 너는 간쑤성에서 서쪽으로 계속 가서 예루살렘까지 복음을 전하여라 그리하여 복음의 빛이 어두운 이 세상을 완전히 한바퀴 돌게 하라

나는 오 주님 우리가 누구이기에 이 엄청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단 말입니까?”라고 물었다. 주님이 대답하셨다. “나는 연약한 자를 통하여 나의 능력을 드러내길 원하노라.”

 

나는 그곳은 이슬람의 지배 아래 있는 지역이고 이슬람 신도들은 전도하기에 가장 어려운 사람들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주님이 말씀하셨다. “가장 반역한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고 가장 힘들게 추수해야 할 곳은 바로 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다.”... 주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너를 포함한 중국인들도 너무나 완악했지만, 결국 복음으로 정복되지 않았느냐.”

 

나는 물었다. “오 주님. 만일 그들의 마음이 그렇게 완악하지 않다면 왜 유럽과 미국에서 온 선교사들이 중국에 그렇게 많은 교회를 세우고도 서부 아시아로의 문을 아직도 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특별히 완악해서가 아니라 중국교회가 받을 유업을 위해 남겨 둔 것이란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내가 다시 돌아올 때 너희가 얼마나 가난한 자들로 서 있겠느냐?”

 

주님이 우리에게 유업을 남겨 두셨다는 말씀을 듣고 나의 마음은 감사로 흘러 넘쳤고, 내입은 끊임없이 할렐루야를 외쳤다. 나는 더 이상 주님을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가면 죽을 가능성이 많음. 그러나 가는 것임. 자기 목숨보다 더 큰 가치를 발견하였기 때문임.

 

바울 사도. 나의 달려갈 길과...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여러분은 아무리 가도 죽일 일이 없다. 그러나 목숨보다 더 가치있는 복음증거의 일이 나와 여러분에게도 주어졌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목숨보다 더 큰 가치를 발견한 사람이 어찌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는가?

 

 

3.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

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오늘 본문의 마지막 부분이다.

 

1)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섬김.

 

우리의 섬김의 가장 중요한 대상은 예수님이심.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을 섬기지 않음.

돈을 섬기지 않음.

귀신을 섬기지 않음. 길한 날짜 잡고 하는 따위의 행동을 하지 않음. 모든 날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좋은 날들이기에.

 

우리는 예수님께 찬양함.

예배를 드림.

주님이 시키시는 일에 순종함.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이기에.

 

정몽주. 이 몸이 죽고 죽어...

고려의 충신. 비참하게 죽었지만 존경받는 이유. 한 주인을 섬겼기에.

우리 주님이 그 정도 대접을 못 받으면 될 일이겠는가?

 

2) 예수님을 섬기려면

 

예수님을 따라야 함. “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예수님을 섬기려면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임.

 

사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

두 가지를 요구하시기에. 하나는 자기 부인. 다른 하나는 십자가를 지는 것.

그렇기에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좁은 길인 것임. 많은 사람이 가지 않으려 함. 심지어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가만히 생각해보라. 정말 좁은 길 안 가지 않는가? 그저 자기 일에 온 정신을 빼앗기다가 겨우 일주일에 예배 한번 드리는 삶이 아닌가?

 

3) 예수님이 따라오라 하신 길은?

 

그러면 조금 더 자세하게 말해서 예수님이 따라오라 하신 곳은 어디인가? 예수님의 인생의 종착지는 어디였는가? 갈보리이다. 갈보리의 십자가이다. 결국 예수님을 섬기는 삶은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죽음 앞에까지도 나아가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우리 스스로도 한 알의 밀알이 되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하나님은 지금도 그와 같은 자세를 가지고 끝까지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찬양.

1.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리 저들 대답하였다

2. 너는 기억하고 있나 구원받은 강도를 저가 회개하였을 때 낙원 허락받았다

3. 주께 네 혼 맡기겠나 최후 승리 믿으며 걱정 근심 어둔 그늘 너를 둘러 덮을 때

4. 이런 일 다 할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용감한 자 옛날처럼 선뜻 대답하리라

 

[후렴]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당신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 따라 살아갈 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아멘

 

 

결론

 

구원의 열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

천군천사들 앞에 기쁨이 된다고 하심. 15장의 세 가지 비유의 공통점.

그러나 기억할 것. 자판기식으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돈 몇 푼 넣고 단추 누르면 열매가 주어지는 것이 아님.

 

한 알의 밀알이 되어야 함.

우리 주님을 위해 죽자. 세상 부귀영화, 인기와 안락, 보장된 삶에 대한 미련을 아낌없이 접자.

 

영혼 구원을 위해 오해도 당해보자. 미움도 받아보자. 금식도 해보자. 가진 돈을 다 써보자. 고생 좀 해보자. 작정기도도 해보자. 하나님이시여. 예수 비전교회가 정말 살아있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이시여. 사랑하는 성도들이 정말 살아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