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 오후설교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마28:19-20(2011. 12. 25 주일오후예배 설교)

안희환2 2011. 12. 25. 14:10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마28:19-20(2011. 12. 25 주일오후예배 설교)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아주 좋은 통찰력을 보여줌. 외로움이라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

 

사실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함. 세상에 외롭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외로움을 경험하지 않고 한 평생 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런 사람은 없다고 생각함.

 

혼자이면 외롭고 둘이면 외로울 것 같아서 친구도 사귀고 연인도 만들고 마침내 결혼도 하지만 둘이 함께 있어도 느끼는 외로움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면 또 다시 외로움을 달래줄 새로운 사람을 찾아 나서기도 하지만 살다보면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구나 하는 것도 경험하게 된다. 근원적으로 외로움을 해결해 줄 사람은 세상에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내게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과도 같은 분이다. 아니 내 생명보다 더 소중한 분이시다. 세상 사람이 다 나를 떠나도 나를 떠나지 않는 분이 예수님이시며 온 천지에 나 혼자인 것 같은 절박한 처지에 놓여있어도 그 한복판에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신약에서 첫 번째 놓여있는 마태복음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이심을 분명히 드러내주고 있다.

 

a. 앞 부분.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1).

 

b. 중간 부분.

“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18).

 

c. 뒷 부분은 오늘 본문.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8).

 

오늘은 예수님의 함께 하심이 가지는 특징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1. 예수님의 함께 하심은 생명이다.

 

예수님의 함께 하심은 어떤 특징을 가지는가?

첫째로 예수님의 함께 하심은 생명이다.

 

1)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

 

10:10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

3:16.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 생명. 온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2) 그러면 우리에게 생명이 없단 말인가?

 

다를 좀비인가?

2:1-2.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에베소 교회 교인들이 다 좀비들인가?

 

아님. 여기에서 생명이 없다는 것은 영적인 생명을 말하는 것임. 그렇기 때문에 몸의 죽음도 다가오는 것임.

 

왜 이런 현상이 생겼는가? 죄 때문임.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 놓는 역할을 함.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만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심. 따라서 죄를 심판하셔야만 함.

재판장이 인정에 끌려 모든 죄인을 무죄석방 한다면 나라 꼴이 엉망이 될 것임. 하물며 모든 만물의 재판장되신 하나님이 죄를 슬적 넘어가실리는 없는 것임.

 

성경에서 말하는 죄의 특징.

a. 행동만이 아닌 동기, 즉 마음. 사람은 마음을 알 수가 없기에 마음을 다루지 못함.

b.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 불효 중 가장 큰 불효는 아버지의 존재 부임.

c. 하나님의 기준에서 따져야 함. 각 나라나 개인의 기준은 다 다름. 말씀.

 

문제는 우리가 이 죄의 문제를 우리가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3) 죄를 해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십자가, 즉 죽음이었음을 기억해야 함.

힘없어서 죽으셨거나 죄가 많아서 죽으신 것이 아님.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것임.

 

그래서 이사야라는 하나님의 선지자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오래 전에 예수님의 죽으심을 이렇게 예언하고 있음.

 

그가 찔림의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하나님은 약속하심. 예수님이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았으니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마다 죄를 용서해주시고 생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 예수님을 만나시길 바란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컵 안에 든 물.

 

 

2. 예수님의 함께 하심은 차별 없다.

 

예수님의 함께 하심은 어떤 특징을 가지는가?

첫째로 예수님의 함께 하심은 생명이다.

둘째로 예수님의 함께 하심은 차별이 없다.

 

1) 세상엔 엄연한 차별이 존재한다.

 

사람이 사람을 학대하기도 한다. 최근에 네이버에서 보았던 동영상. 난리가 났었음. 여중생들이 자기 학교 학생을 계속 구타하는 것임. 여럿이서. 그 여학생은 정신적인 충격을 받고 병원에 입원. 경찰이 수사하고 있는 상황. 세상에 이럴 수가.

 

그런데 사실상의 세상 구조가 그런 구조임.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고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차별하는 구조.

 

인종의 차별도 있다. 백인들의 유색인종 차별. 지금도 실재함.

독일인의 유대인 학살.

 

만약 교회 안에서도 차별이 있다면 그것은 큰 죄악임. 야고보서에서 그것을 죄로 규정함.

 

2) 예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심.

 

a. 사람들이 상종하지 않는 세리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심. 그것 때문에 비난을 받으시지만 개의치 않으심.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것은 별로 신경 쓰지 않으심.

 

b. 유대인들이 개 취급하는 사마리아 사람을 이야기 속에서 좋은 쪽으로 등장시키심.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 실제로 천대하지 않으시고 존귀하게 대하심. 그런 이야기하면 욕 먹을텐데.

 

c. 사마리아 사람들에게조차 사람 취급 못 받는 수가성의 여인을 구원하심. 피곤에 지친 몸인데도 정성을 다해 그 여인과 대화를 나누심.

 

d. 문둥병자들을 차별하지 않으심. 아무도 근처에 접근조차 안 하시는데 주님은 그 몸에 손을 대시고 고쳐주심. 나 자신을 돌아 봄. 혹시 나는 손대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가?

 

3) 예수님은 우리를 차별하지 않으신다

 

함께 하시는데 힘 있고 돈 많고 많이 배운 사람과만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찾는 모든 이들과 함께 하시는 것이다.

 

게르만 우월주의. 유대인의 우수성 때문에 시기를 해서 학살 했다는 말도 있음.

아무튼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차별을 받던 사람들. 그들과 함께 하면 불이익을 당하기에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멀리 함. 그런 상황 속에서 있었던 이야기 하나.

 

2차 대전 당시, 독일 점령 하의 폴란드 어느 조그만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독일군이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하루하루 불안하게 지내고 있는 유태인 앞에 독일군이 나타났다.

 

독일군의 일부는 마을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학교로 와서 학생 중에 드문드문 섞여 있는 유태인 어린이들을 끌어내려고 했다. 독일군의 모습을 본 유태인 어린이들은 무서워서 선생님에게 달려가 매달렸다.

 

코르자크란 이름을 가진 선생님은 자기 앞으로 몰려온 유태인 어린이들을 두 팔로 꼭 안아 주었다. 선생님은 아무 죄도 없는 어린 아이들을 왜 잡아가느냐고 호통이라도 치고 싶었지만 짐승만도 못한 그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트럭 한 대가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오자 아이들은 선생님의 팔에 더욱 안타깝게 매달린다.

"무서워할 것 없단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면 마음이 좀 편해질 거야."

독일군은 코르자크 선생님 곁에서 유태인 어린이들을 떼어놓으려고 했다. 그러자 코르자크 선생님은 군인을 막아서며, "가만 두시오. 나도 함께 가겠소!" 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하기로 결심을 한 것이다.

 

", 우리 함께 가자. 선생님이 같이 가면 무섭지 않지?"

", 선생님.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코르자크 선생님은 아이들을 따라 트럭에 올랐다. 그 광경을 지켜본 독일군이 선생님을 끌어내리려 하자, "어떻게 내가 가르치던 사랑하는 이 어린이들만 죽음으로 보낼 수 있단 말이오"라고 하며 선생님도 아이들과 함께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 마침내 트레물렌카의 가스실 앞에 도착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손을 꼬옥 잡고 앞장서서 가스실 안으로 들어갔다.

 

자신은 유태인이 아닌데도 사랑하는 제자들의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해 목숨을 버린 것이다. 히틀러에게 학살된 동포들을 기념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세워진 기념관 뜰에는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사랑하는 제자들을 두 팔로 꼭 껴안고 있는 코르자크 선생님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그 이상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한 죽으심이다. 어느 누구라도 주님 앞에 나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예수님은 그 죄를 사해주시고 그와 함께 해 주시는 것이다.

 

 

3. 예수님의 함께 하심은 끝이 없다.

 

예수님의 함께 하심은 어떤 특징을 가지는가?

첫째로 예수님의 함께 하심은 생명이다.

둘째로 예수님의 함께 하심은 차별이 없다.

셋째로 예수님의 함께 하심은 끝이 없다.

 

1) 끝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뜨거운 사랑. 내가 영원히 네 곁에 있을게. 믿지 말라. 거짓말이다. ^0^

더 나은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 네가 필요한 그 동안만, 네 매력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기간만, 실망하지 않고 상대에 대한 기대감이 아직 남아 있는 순간만 함께 있겠다는 말이다.

 

상대가 어떻든간에 끝까지 함께 해주는 사람은 찾을 수 없다.

그러니까 죽자사자 해서 결혼 해 놓고서도 이혼을 하는 것이다.

같이 살기는 해도 몸만 한 집에 있지 마음은 함께 하지 않는 일이 많이 발생하는 것이다.

예전엔 50대만 지나면 그래도 정이 있어서 함께 산다고 했는데 이젠 그것도 아니다. 황혼 이혼이 늘어가고 있다. 60대가 넘어서도 이혼을 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말 큰일이다.

 

아무튼 끝까지 함께 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요지다.

 

100의 하나, 혹은 1000의 하나로 맘이 변하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하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자. 그들도 끝까지 함께 가지는 못한다. 죽음이 어느 순간에서 서로의 사이를 갈라놓는 것이다.

 

2) 예수님은 소심줄이시다.

 

한번 우리 안에 거하시면 어떤 상황 어떤 처지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한 말이다. 스스로가 예수님을 떠나버리지 않는 한 말이다. 아니 떠나간 사람에게도 찾아가셔서 함께 하시려고 하신다. 문을 두드리신다.

 

a. 베드로를 찾아가신 예수님.

b. 낙원에서도 함께 하시는 예수님. 우편 강도에게도.

 

오늘 본문에서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심.

 

3) 우리가 믿고 살아야할 약속

 

이것은 우리가 평생 믿고 살아야할 약속이다. 그 약속에 대한 믿음이 우리를 강하게 해준다.

 

예레미야. 함께 하시는 고로(20).

 

다윗.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23)

 

이사야의 말씀.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유라굴로라는 강풍을 만난 배 안에서 바울이 들은 음성. 함께 하신다는 것.

 

 

4. 예수님의 함께 하심은 능력이다.

 

예수님의 함께 하심은 어떤 특징을 가지는가?

첫째로 예수님의 함께 하심은 생명이다.

둘째로 예수님의 함께 하심은 차별이 없다.

셋째로 예수님의 함께 하심은 끝이 없다.

넷째로 예수님의 함께 하심은 능력이다.

 

1) 함께 함이 정말 소중하지만

 

함께 함이 정말 소중하지만 아무 힘도 되지 못할 때가 있다. 함께 하는 것에 한 가지가 덧붙여지면 정말 좋다. 그것은 능력이라고 하는 것이다.

 

폭력배들 만날 때. 함께하는 할머니. 혼자 보다는 낫지만 별 도움이 안됨. 그런데 함께 하는 유단자. 그렇다면 큰 도움이 될 것임.

 

2) 능력이 많으신 주님이 함께 하신다.

 

다니엘. 사자굴에서 사자가 물지 못함.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불 가운데서 타지 아니함.

 

야곱과 함께 하신 하나님. 라반이 해하려고 쫒아왔는데 건드리지 못함.

 

3) 내가 믿는 것.

 

누가 뭐라 해도, 아무리 상황이 어렵고 절망적이라고 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다는 것.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43).

 

내가 알고 있는 것. 불신앙은 죄라는 것.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라는 것.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채 광야에서 죽었던 것은 다른 죄악들 때문이 아니라 불신앙의 죄 때문이었다는 것.

 

하나님은 함께 하심. 불기둥과 구름 기둥은 그 상징.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 능히 도우실 수 있고 절망 속에서도 소망의 빛을 비추실 수 있음.

 

이 세상은 괴로운 세상

우리 모두 나그네니

하늘나라 영원한 내집

하루 속히 찾아가리

하늘나라 아버지집은

슬픔과롬 죽음 없네

나는 매일 요단강 건너

하늘나라 찾아가리.

 

승리는 내 것일세.

 

 

결론

 

예수님의 함께 하심은 어떤 특징을 가지는가?

 

첫째로 예수님의 함께 하심은 생명이다. 예수님을 통해 구원. 예수 믿는 것은 선택이 아니고 필수이다. 생명을 얻는 유일한 길이기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둘째로 예수님의 함께 하심은 차별이 없다. 자신이 한심하고 바보 같고 초라하고 비참해 보여도 낙심하지 말라. 주님은 여전히 함께 하시며 버리지 않으신다.

 

셋째로 예수님의 함께 하심은 끝이 없다. 예수님은 변덕맞지 않다. 예수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넷째로 예수님의 함께 하심은 능력이다. 절망하던 내게 소망을 주신 능력의 주님은 여러분 모두에게도 그 능력을 나타내시길 원하신다. 우리 함께 경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