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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처에게만 재산 몰아줬더니…

안희환2 2011. 7. 9. 13:37

후처에게만 재산 몰아줬더니…

조선일보 | 강호순·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 입력 2011.07.09 03:08 | 수정 2011.07.09 11:35

 




어느 대학병원의 중환자실. 75세 남자 A씨가 보호자도 없이 인공호흡기를 매단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한때 중견 건설업체를 운영하면서 큰 재산을 모았고 아내와 두 자녀의 가장이었던 A씨의 말년은 쓸쓸하기 짝이 없다.

A씨는 건설회사 직원이던 1970년 중매로 만난 아내와 연애할 겨를도 없이 결혼했다. A씨 부부는 1남1녀를 낳았으나 별다른 연애 감정 없이 결혼한 데다 성격 차이도 심해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 또 회사 업무 때문에 주말도 없이 출장과 야근을 수시로 반복하면서 가족들과 대화는커녕 오붓한 시간조차 보낼 수 없었다.

80년대에 이르러 A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규모 건설회사를 설립했다. 때마침 불어닥친 강남 개발 붐 덕에 큰돈을 벌게 됐다. 회사는 급성장했고 A씨는 중견 건설업체의 대표이사가 되었다.

이런 A씨에게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회사가 시공하는 아파트 건설현장의 간이식당에 찾아갔다가 주방일을 돕고 있던 여자 B씨에게 호감을 갖게 된 것이다. A씨는 처음 15살이나 어린 B씨를 동생처럼 대했으나 점차 그녀의 순수하고 착한 마음씨에 끌려 연인의 감정을 느꼈다. B씨 또한 처음엔 A씨가 유부남인 이유로 망설이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진솔한 감정을 깨닫고 그의 사랑을 받아주게 되었다.

그로부터 1년 후 B씨는 사내아이를 낳았고, A씨는 그녀와 결혼하려고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그러나 아내는 이혼을 완강히 거부했다. 자녀들이 성장해 결혼할 때까지 이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A씨가 이혼소송을 제기할 수도 없었다. 우리 법원은 이혼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A씨는 어쩔 수 없이 아내와 법률상으로만 부부관계를 유지한 채 왕래를 끊었다. 그리고 B씨와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살았고, 어느덧 10여년이 흘렀다. A씨의 아내는 자녀들이 모두 결혼하자 마침내 A씨를 상대로 이혼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혼인관계 파탄의 책임이 중한 A씨에게 거액의 재산 분할과 위자료 지급 책임을 인정했다.

A씨는 비로소 B씨와 혼인 신고를 했고, 오래전 연을 끊은 본처의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 주지 않으려고 남은 재산을 B씨와 그 아들에게 모두 증여했다. 그런데 그 아들이 대학 졸업 후 친환경사업을 한다며 회사를 설립하고 거액을 투자했다가 경험 부족으로 큰 손실을 입었다. 그는 손실을 만회하려고 어머니 B씨의 재산은 물론 거액의 사채까지 빌려 재투자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A씨의 집엔 매일 빚 독촉을 하는 사채업자들이 드나들었다. B씨와 그 아들은 이들을 피해 지방의 먼 친척집으로 도피하게 됐다.

A씨가 중환자실에 입원한 건 그 충격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병실에 찾아올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본처와 그 자식들은 이미 A씨의 가족이 아니며, B씨와 그 아들은 사채업자들 때문에 가장의 병상 곁을 지킬 수가 없다. 결국 A씨는 보호자 한 명 없이 중환자실에서 불행한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누가 A씨의 자업자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참으로 기구한 '운명의 장난'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