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사랑이야기

무너지지 않을 탑을 쌓자 창11:1-9

안희환2 2011. 5. 25. 23:26

무너지지 않을 탑을 쌓자 창11:1-9

 

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7. ,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본문은 노아홍수 이후 하나님을 향한 또 한번의 도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바

벨탑이 주는 교훈을 통해 우리의 헌신과 신앙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려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위해 부름받은 일꾼들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바벨탑을 쌓고 어

떤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1. 4절을 보면 사람들이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흩어짐을 면하자"고 말합니다.

바벨은 혼란, 섞이다, 변질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의하면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변질되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하나님을 위한 삶이 아니라

'자기(우리)'를 위한 삶이 되었고 하나님께 대한 경배와 사랑은 사라지고 하나님을 향한 대립과 경쟁의 어

리석음이 마음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야웨신앙은 세상의 욕심과 자기숭배와 우상숭배와 혼합되고 변질되었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었

습니다. 고후 7:1에 보면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 7:1)고 권면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잊고 세상과 타협하였고 그 속에서 변질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않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좇는 사람에게서 사탄은 공략할 틈을 찾습니다. 그것은 사탄에게 내 영혼을 넘기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의 홍수를 기억하는 그들은 심판을 피할 수 있는 방편으로 높은 피난처를 구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참 믿음과 헌신의 삶을 살기로 결단하기보다는 제 마음대로 하나님을 떠나 살다가 또다시 심판의

날이 오더라도 능히 피할 수 있도록 높은 탑을 쌓아 올리자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을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아담은 선악과를 먹고 무화과

나무 숲 속에 숨었습니다. 하나님이 못 찾았습니까?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피할 곳은 없

습니다.

회개의 탑을 쌓아야 합니다. 불순종의 탑을 허물고, 불신앙의 탑을 허물고, 교만의 탑을 허물고 회개의

탑을 쌓으십시오. 하나님은 통회하는 심령을 찾으신다고 했습니다.

 

2. 사람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과 같아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열심이나, 지식이나 경험이나 재능으로 하나님 곁에 설 수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우리들

의 마음속에도 이런 교만이 차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결코 자기의 열심이나 지식, 경험, 재능, 물질로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성전 뜰에서 기도하는 바리새인을 보시고 그가 자기 의를 내세우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18:11-14)

과부의 엽전 두 개가 많은 재물을 바치는 부자의 헌금보다 크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녀의 생

활비의 전부 즉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린 것이었기 때문입니다.(12:44)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

은 우리가 쌓은 신앙적 연륜이나 봉사나 헌금의 분량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내 생명까지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탑을 쌓는다고 해도 하나님의 자리

에 이르지 못합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3:23)

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마음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헌신과 봉사의 동기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

그렇습니다. 내 마음이, 중심이 하나님께 인정받아야 합니다. 중심에 감사함도 없이, 구원의 감격도 없이

그저 겉만 뻔지르하게 다듬어 봐야 하나님 눈에 뵈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우리의 중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랑하는 마음, 사랑의 열매입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의 절절함, 충만함이 있어야 합니다.

 

 

3.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탑을 쌓으려면 기초가 튼튼해야 합니다. 그 기초는 깊을수록 안전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탑의 기초는 낮은 곳에 있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낮아집니다.

"그대 앞에만 서면 왜 나는 작아지는가?"

유행가의 가락이지만 사랑을 잘 노래했습니다. 사랑하는 이 앞에 서면 자신은 낮아지고 그 이가 높아집

니다. 한없이 커 보입니다.

예수님은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낮아져야 한다(18;14)고 하셨습니다. 말씀으로뿐 만 아니라 몸

으로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20:28)

우리의 신앙적 행위가 아무리 높고 세상을 덮을만큼 크다 할 지라도 주님께서 몸소 가르쳐주신 낮아짐

의 모습이 없다면 그것은 한낱 무너질 바벨탑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 어리석은 노력일 뿐입니

.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낮아짐의 기초를 든든히 다지시기 바랍니다.

주일학교 교사는 어린이의 키높이로, 직분자는 평신도의 눈높이로, 부자는 이웃의 삶 속으로, 많이 배운

사람은 겸손의 도장으로 낮아져야합니다.

 

성도 여러분!

바울사도는 고전 15:10에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주님의

구속의 은혜는 우리의 행함과 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선물로 값없이 주어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은 오직 주님의 구속의 은혜뿐입니다.

성경에는 바벨탑과는 질적으로 다른 탑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 강을 건넌 후에 쌓

은 탑이 그것입니다. 에벤에셀의 탑이 그것입니다. 자기의 의를 강물에 뭍고 오직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위대한 신앙의 고백을 쌓은 것입니다.

 

4.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은 그 탑을 통해 자기의 이름을 드러내려 했습니다. 4절에 보니까 "우리를 위하

....우리의 이름을 내자"고 했습니다. 고대의 역사학자인 필로에 의하면 그들이 바벨탑을 쌓을 때 하나

하나의 벽돌에 자기 이름을 새겨 넣었다고 전합니다. 명예와 허영심은 고대에나 오늘이나 우리를 유혹합

니다. 그것은 참으로 보암직하고 먹음직합니다. 그래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

름을 남긴다는 말까지 생겨났습니다.

명예란 좋은 것입니다. 누구나 다른 사람들에게서 인정받고 칭송받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옛날 사또들은

자기의 송덕비를 스스로 세우기도 했습니다. 사람에게서 가장 버리기 어려운 것이 바로 명예욕입니다.

 

교회에서의 헌신과 봉사, 봉헌과 직분도 명예를 얻는 방편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해, 인정을 받기 위해 일년에 한번 헌신예배를 드리고 십일조를 하고, 헌금을 하고,

봉사의 참 의미를 잃고 나서기 좋아합니다. 심지어 주보에 실린 헌금 명단에서 자기 이름이 누락되면 섭

섭한 마음을 감추지 못합니다.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면 그것이 더 큰 희생과 헌신의 짐을 지라는 주님의 뜻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대접을 받으려 합니다. 이전에 순종 잘 하던 사람이 직분을 맡고 교회와 목사님에게 거치는 돌이 되기도

합니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회의 때는 반드시 발언해야 직성이 풀리고, 자기 생각대로 일이 처리되지

않으면 울분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 뒤에서 파당을 짓고 온갖 말들을 지어냅니다. 결국 교회를 시끄럽게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명예욕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자기를 따르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나설 때에도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

하여야 하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오직 예수 그리스

 

성도 여러분!

죽음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충성의 탑을 쌓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위해 마음과 뜻과 정성을, 생명까

지도 드려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파숫군은 초소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에 징집된 그리스도의

병사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나라 건설현장에 부름 받은 일꾼들입니다. 이 전쟁터에서, 이 현장에서

자리를 지킵시다. 죽어도 충성합시다. 믿음직하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십니다.

성도여러분! 여기가 여러분의 일터입니다. 이 교회가 여러분의 영적 싸움을 위한 전초기지입니다.

여기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오직 믿음과 사랑과 겸손과 충성으로, 하나님

의 이름을 높이는 헌신,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는 헌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위대한

신앙의 탑을 쌓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