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합의를 믿을 수 없다/안희환
천안함 폭침 이후 연평도 포격으로 남한에 큰 피해를 입힌 북한은 점점 어려운 처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사정인데 국제 사회의 원조가 끊기게 되었고 남한으로부터의 지원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북한을 지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남한 내의 주장도 연평도 포격 이후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고요.
연평도 포격을 기해 미국의 항공모함인 워싱턴 호가 남한 영해에 들어왔고 중국이나 러시아의 반발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만일의 사태가 있을 경우 북한을 공격할 준비를 갖추어 놓고 있는 상황입니다. 연평도 해상 사격 훈련도 정상적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핵 참화 운운하는 북한의 강력한 반발이 있었지만 무력행사로 이어지지도 않았습니다. 북한이 마음을 바꿔먹었기 때문이라기보다 워싱턴 호의 위력에 대한 두려움이나 전쟁이 확장될 경우 지금의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김정일 집단의 판단에 그 요인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여러모로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북한이 북한을 방문 중인 리처드슨 주지사와 합의를 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북한이 핵 시설에 대한 유엔 조사단의 사찰을 허용하고, 핵연료봉의 해외 반출과 관련해 협상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밝힌 이는 빌 리처드슨 미국 뉴멕시코 주지사를 동행 취재하고 있는 CNN의 울프 블리처 앵커입니다. 앵커는 북한이 1만2000기의 사용 전 핵 연료봉(fresh fuel rod)을 외국에 판매하는 협상에도 동의했으며 핵연료봉의 판매 대상 국가는 아마도 남한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내용상으로만 보면 매우 반가운 소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동안 강경한 모습을 보이던 북한이 수그러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 이상의 고집이 북한의 체제 유지에 보탬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체제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하여 북한이 백기를 든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요.
그러나 두 가지 면에서 북한과 리처드슨 주지사와의 합의는 큰 가치를 지니지 못합니다. 첫째로 합의를 한 사람이 주지사라고 하는 점입니다. 주지사는 자신이 있는 주 안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뿐 미국 전체의 흐름을 좌지우지할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따라서 리처드슨 주지사와 북한의 합의하고 하는 것은 미국 정부와 북한의 합의라고 보기가 어렵습니다. 합의가 지니는 한계가 뚜렷해지는 것입니다.
둘째로 북한의 태도를 믿을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그 동안 북한은 자신이 한 약속을 끝없이 파기해왔습니다. 불리할 때는 고개를 숙이는 척 합의를 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실행한 적이 없으며 상황이 조금 나아지면 고개를 쳐들고 큰 소리를 치던 것이 북한이 보여준 유일한 일관성입니다. 따라서 워싱턴 호가 북한을 타격할 수 있는 곳에 있는 상황이며 북한의 협박이 남한에 먹혀들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은 다시 한 번 잔꾀를 부리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북한의 관심은 진정한 핵사찰 협의가 아니라 시간 끌기입니다. 당장의 국제 제재를 풀고 숨통을 조이고 있는 경제위기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고 살만한 상황이 되면 다시 야욕을 드러낼 북한이라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만약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사고 구조를 의심해 보아야할 것입니다.
북한의 화해 몸짓에 속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잠시라도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섣부른 지원 재개를 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북한이 구체적인 변화의 모습을 보인 후에야 다시 관계를 재정립하고 지원도 모색해야 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은 북한의 장난질에 끌려나지지 않아야 합니다. 궁지에 몰려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북한의 처지를 냉철하게 살피면서 진정 남과 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움직임을 보여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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