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추를 싫어하는 이유/ 안희환
어릴 적 역사를 배울 때 통일 신라에 대해 가르치시던 선생님은 침을 튀겨 가시며 통일 신라의 위대함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때 신라와 싸움을 벌였던 고구려와 백제의 멸망은 당연한 일이며 두 나라는 신라에 비해 나쁜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신라, 고구려, 백제가 사실은 다 우리나라였으며 고구려나 백제가 신라에 비해 더 나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의 일이었습니다.
아무튼 통일 신라가 가장 훌륭한 나라라고 생각했던 저에게 통일신라를 이룬 주역인 김춘추는 영웅 중의 영웅이었습니다. 나라가 분열되어 어려운 상황에서 지혜와 용기를 모두 갖춘 감춘수라는 인물이 있었기에 통일 왕국을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당연히 김춘수를 도왔던 김유신 역시 위대한 인물이라 생각했고요. 김춘수 전기를 읽으며 몸을 부르르 떨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세월이 많이 지난 후 어릴 때 배웠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습니다. 신라가 아닌 고구려에 의해 삼국이 통일되었다면 우리나라의 영토가 지금보다 더 크게 확장되었을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광개토대왕 시절의 광대한 영토가 다 우리 땅이었는데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통일을 한 덕분에 우리나라가 지금처럼 조그만 땅덩어리를 소유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지금에 와서 신라가 아닌 고구려에 의한 통일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을 한다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역사에서 가정이라고 하는 것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요. 그러나 신라에 의한 통일이 우리나라에 있어 멋진 일이었다는 생각은 접어버렸습니다. 통일 신라의 주역이었던 김춘추라는 인물에 대한 존경도 확실히 사라져버렸고요. 아니 김춘추라는 인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강해졌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김춘수는 야망이 큰 사람이었고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는 것이 대표적인 이유일 것입니다. 그는 고구려와 백제를 견제하거나 제압하기 위해서는 당나라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고 당태종의 마음을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다 한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김춘수는 신라가 중국의 관복제를 따를 것을 당태종에게 약속했습니다. 자신이 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결정을 내려버린 것입니다. 김춘추는 자신의 자식까지도 활용하였습니다. 당태종의 신뢰를 얻기 위해 셋째 아들 문왕을 당나라에 남겨놓은 것입니다.
김춘추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김춘추에게 호의를 가졌던 당태종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김춘수는 이제 당고종의 신임을 얻기 위해 다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당나라의 의례를 본 따서 신하가 왕 앞에 나갈 때 중국식 복장을 착용하게 하였습니다. 당의 연호 영휘를 사용하였으며 매년 정월에 신하들이 왕에게 하례하는 “백관정하(百官正賀)”를 하게 하였습니다. 나라의 중심부를 당나라처럼 바꾸어놓은 것입니다.
제가 가장 언짢게 생각하는 김춘추의 행태는 진덕왕과 관련된 것입니다. 당나라에 목을 맨 김춘추는 자신이 섬겨야할 주군조차 마음대로 이용하였는데 진덕왕은 그 희생물이 되었습니다. 당 고종의 환심을 사기 위해 당나라를 찬양하는 태평송을 보내면서 진덕왕이 그것을 짜도록 한 것입니다. 진덕왕은 1백자에 이르는 글자를 비단 위에 짜 넣고 학과 용의 그림을 장식해 넣었는데 눈물을 흘리며 그 일을 행했다고 하니 김춘추가 누구의 신하였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권력욕에 사로잡혔던 김춘추는 고령의 진덕왕이 세상을 떠난 후 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왕이 된 후 먼저 한 일은 민생을 돌보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가족을 높이는 일이었습니다. 아버지 용춘을 문흥대왕이라 하였고 어머니 김씨를 문정태후라 하였습니다. 큰 아들 법민에게 군사 통솔권을 주었고 나머지 아들들에게도 고위직을 하사하였습니다. 아무리 왕이 통치하는 시대라고는 하나 철저하게 자기 밥그릇을 챙기는 모습에 마음이 불편하기만 합니다.
김춘추는 자기 가족들을 한없이 높이는 반면에 자신이 왕이 되는데 있어 일등 공신이었던 김유신에게는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서운함을 느낀 김유신은 고령을 핑계로 혹은 병을 구실삼아 김춘추를 떠났고 김춘추는 그런 김유신을 방치하였습니다. 후에 고구려와 백제, 말갈이 연합하여 신라를 공격하자 김춘추는 김유신을 끌어들이기 위해 자신의 어린 딸 지소를 60이 넘은 김유신에게 시집을 보냈습니다. 자신이 아쉬울 때만 상대에게 잘 해주는 모습이 아닌지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딸 까지도 이용하는 김춘추가 아닌지요?
김춘추는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 위인이라는 칭호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누군가가 김춘추처럼 정치를 한다면 정치 9단 소리는 들을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대접을 받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의리도 자존심도 없는 사람, 끝없이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비판해도 달리 변명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김춘추처럼 항상 자기중심으로 이기심에 똘똘 뭉쳐 매사를 처리해나가는 정치인들이 오늘날도 많이 있다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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