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끼 쌀밥은 '눈물밥'
장춘아지매의 탈북일기(3) - 리수희
나는 이곳에 와서 매끼니 거르지 않고 쌀밥을 마주합니다. 밥상을 볼 때 마다, 아들과 며느리와 손자와 손녀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목이 메여 밥이 너머 가지 않습니다. 북조선에서 처녀시절에 전쟁도 겪어보고, 남편 죽고 혼자 아들을 키우며 ‘월남자 딸’이라는 출신성분에 시달리며 모진 고생을 다 했습니다.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낙심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북조선에서는 배불리 쌀밥 먹는 것이 한평생 소원인 사람도 많인데 나는 쌀밥을 마주할 때마다 가슴에서 폭탄이 터지는 것 같습니다. 소리 내서 엉엉 울다가 그 이튿날 그 밥을 버릴 수가 없어서 물에 말아서 다시 먹고 있습니다.
6.25 전쟁과 김봉철 교무주임
다 늙은 꼬부랑 노인네가 되어서도 해마다 6월이 되면 꿈자리에 나타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김봉철 교무주임.
50년이 지나도록 그 사람과의 나의 악연(惡緣)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전쟁통에 먼저 죽어간 그이에 대해 속죄할 길도 원망할 길도 없기 때문입니다.
전사 통지서
압록강까지 후퇴했던 인민군대가 중국의 도움으로 다시 38선까지 내려가자 각급 교육기관에서는 대열을 정비하고 교원들에 대한 정치학습을 조직했습니다. 전쟁 직전부터 교원생활을 시작했던 나도 정치학습에 참가했습니다. 당시 전쟁중에는 여자 교원들이 몇 명이 안되어서 평양에서 여자 교원들이 양강도까지 파견됐습니다.
평양에서 문학선생님이 한 분 오셔서 나와 함께 숙소를 사용했었는데, 어느 날 무슨 사연인지 종이 쪽지를 한 손에 들고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문학선생님의 말이 “내 동생이 이곳 학교 교무주임으로 있을 때 어느 여선생님과의 관계로 정신이상 된 것을 적십자 병원에서 고쳤다”며 “그런데 동생이 강원도 전선에서 죽었다는 전사통지서를 받았다”며 서럽게 통곡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아, 전사했구나!’
지난날 그에게 빚졌던 사실들이 가지가지 떠올랐습니다. 한참이 지나도록 입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왜 그때 전선으로 나가는 김선생님에게 위로의 말도 하지 못했는지 후회가 되었습니다. 생각 할수록 그의 가슴에 상처 주고 못을 박은 내 자신이 괴로웠습니다.
문학선생님은 나에게 그 여선생이 누구냐고 물어왔습니다. 혹시 이번 정치학습에 그 여선생이 참석했는가 물어왔습니다. 나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설설 끓는 물을 내 머리에 콱 들어붓는 심정이었습니다.
나는 입을 열었습니다.
“제가 그 여선생입니다!”
눈치 빠른 문학선생님은 재빨리 사태를 파악했습니다. 내 동생이 잘못되었어도 부디 선생님은 행복해지기 바란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또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나도 문학선생님을 끌어 안고 함께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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