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관련 자료

장춘아지매의 탈북일기(2( - 리수희

안희환2 2009. 10. 16. 13:08

장춘아지매의 탈북일기(2) - 리수희

 

어린 아이를 홀로 집에 두고

며칠 후에 무슨 냄새를 맡았는지 절룩발이 작업반장이 현장에서 큰소리로 야단 법석을 떨었습니다. “누가 아이를 데리고 작업현장에서 일하는가? 그러다 사고 나면 아이도 아이려니와 내 목도 날아간다. 내 입장도 좀 생각해 줘야 하지 않는가?”하고 추궁했습니다. 말도 변변히 못하는 이 어린 철부지도 눈치를 차리고 할머니 곁에 와서 내 손을 꼭 붙들고는 할머니 얼굴을 올려보고 고개를 떨굽니다.

하는 수 없이 손자를 업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살아갈 일은 걱정스러워도 손자를 데리고 생활하는 하루하루는 참 즐거웠습니다. 목욕을 시키고 방안에 앉혀 놓으면 이 할머니를 쳐다보며 뱀욱뱀욱 웃습니다. 도끼 대가리에 쭉 째진 눈, 큼직한 입, 내 손자만큼 잘난 아이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이튿날 하는 수 없이 잠든 손자의 머리맡에 밥 한릇, 소변기, 물그릇을 놓고 집을 나서려고 하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몇 발자국 가다 되돌아 와서 창문을 들여다보면 손자는 그냥 자고 있었습니다. 몇 걸음을 가다 또 깨지 않았나 해서 와보니 그래도 자고 있었습니다. 세 번 만에 크게 마음먹고 공장으로 갔습니다. 지각이었습니다. 저녘 총화에는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지각을 하거나 저녘 총화에 참가하지 않는 것이 세 번이면 하루치 배급이 깍입니다. 그래도 정신 없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집까지 달려오니 동네사람들이 무슨 사고가 났는가 하고 나를 쳐다 보았습니다. 집마당에 들어오자 손자 이름을 부르며 문을 열고 뛰어 들어가니 신발 한 짝은 미쳐 벗겨지지도 않아 방안까지 따라 들어왔습니다. 손자가 혼자 조용히 앉아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을 확인하니 눈물이 왈칵 솟았습니다.

공장 혁명 소조에 들통나

다음날 공장에 나서는 길에는 손자가 떨어지지 않으려고 매달렸습니다. 하는 수 없이 업고 출근했습니다. 그래도 할미 마음은 빈집에 혼자 놔두고 온 것보다 한결 가벼웠습니다. 공장 울타리 나무 아래다 몰래 숨겨 놓고 주섬주섬 돌과 놀이감을 주워다 주니 신이 나서 잘 놀았습니다. 그래도 멀리서 손자를 바라보며 일을 하니 안심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3일 동안 누구도 모르게 그 장소에 갖다 놓으니 제법 제 놀이터라고 웃으면서 할머니는 어서 가라고 말도 못하는 것이 손짓을 했습니다. 절대 밖으로는 나오지 않아 그 안에 아이가 있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일이 안되려고 했는지 공장 혁명 소조가 공장 구내를 문화적으로 꾸린답시고 울타리 주변을 둘러보다 아이를 발견하곤 큰일이 난 것처럼 “누구네 아이인가?”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야단법석을 떨었습니다. 나는 손자를 등에 업고 당비서에게 불려갔습니다. 당비서는 “어떻게 할 작정인가? 내 목이 날아가는 것을 보고야 정신을 차리겠는가?”하고 따져 물었습니다.

‘혹시나 어린 것이 사고나 나면 내 가슴이나 터지고 우리 아들 며느리가 원통할 노릇이지, 저야 성분 좋은 당일꾼인데 무슨 큰일이 있겠는가? 제 형이 중앙당 간부라며 무슨 일이 있다고 큰소리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집에 손주를 떼어 놓고 공장에 나가는 가슴 졸이는 생활이 했습니다. 다행이도 반년이 넘도록 손자는 아무 사고 없이 쑥쑥 잘 컸고, 며느리가 간신히 몸을 추스리자 다시 되돌려 보냈습니다. 제 애비의 손을 잡고 제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할미에게 손을 흔들며 강아지 마냥 깡총깡총 뛰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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