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려다니는 탈북여성들 - 이신
안녕하세요?
저는 1998년 6월25일 북한을 탈북 하여 중국에서 약 5년간 살다가 2003년 1월에 한국에 온 탈북자 이신이라고 합니다. 저는 지금 엄마랑 언니랑 동생 그리고 딸과 함께 서울에서 살고 있습니다.
간단히 탈북동기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언니가 북한에서 공업대학을 졸업하고 광산에서 쇠돌을 캐는 했는데 일이 너무 어려운데다가 그렇게 일을 해도 돈 한푼 안주니 너무 싫다고 중국으로 탈북하였습니다.
저는 북한에서 선전부에서 가수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니가 중국에 간 사실이 알려지면 무대생활을 할 수 없고 우리 가족도 무사치 못할거라고 생각했기에 저는 탈북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족들도 언니를 찾아서 다 함께 중국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중국에 들어가니 언니는 이미 팔려가고 난 후였습니다. 며칠 후면 언니한테서 소식이 올거라는 말에 창고에서, 집 지붕 위로, 돼지우리로, 산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3일을 기다렸어요. 그러던 어느 밤 화룡이라는 시내에 들어가야 한다면서 저희들을 데리러 택시운전수와 웬 여자한명이 왔어요.
도착하니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여러 명의 중국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며 중국어로 무어라 자꾸 이야기 하였어요. 그러더니 저하고 동생은 한 차에 엄마는 다른 차에 타고 어디로 가야한다고 했어요. 우리는 언니하고도 생리별 하였는데 엄마하고도 혜여 질 것만 같아 안된다고 엄마랑 같은 차타야한다고 울었습니다. 그들은 5명이 앉으면 단속되다고 하며 엄마 차를 우리가 따라가면 된다고 하기에 할 수 없이 그들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드라마에서 본 듯한 일들이 벌어졌어요. 사거리에서 엄마탄 차는 직진하고 우리가 탄 차는 우회전하면서 가는거였어요. 우리가 차안에서 울고 난리를 쳐도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들이 없었어요. 이렇게 우리 자매는 언니를 잃고 엄마까지 잃고 울면서 팔려갈 수밖에 없었어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엄마는 나이가 있어서 안 팔리니 우리만 팔아먹느라고 갈라놓았던 것이였어요.
그때 저의 나이는 21살 동생은 18살이였어요. 저는 그래도 그나마 참을만 했는데 동생은 18살에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자기보다 10살이나 많은 사람에게 팔려가는 것을 보았을 때 그애한테 남은건 나밖에 없는데 언니로써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팔려가기 전에 둘이 부둥켜안고 한나절이나 울었어요. 저와 저 동생은 처녀시절이 어떤것인지도 모르고 한창 아빠 엄마 사랑을 받을 나이에 서로 다른 집에 팔려가 동생은 19살에 저는 22살에 아이엄마가 되어 힘든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래도 다행히 둘다 조선족 교포에게 가서 말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 다행스러웠어요. 제가 팔려간 집은 아빠 엄마는 장애2급을 가진 정신장애인의 집이였어요. 저는 그 집 맏아들과 같이 지내게 되었어요. 그래도 북한에 있을 때에는 집의 생활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고 6살 때부터 노래만 부르고 고생도 모르고 자랐던 저에게는 너무나 힘든 생활이였어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초가집, 낮에도 쥐하고 같이 생활해야 하고 밤이면 벽사이로 밖이 내다보일 정도인 그런 집에서 농사하면서 살아야 했어요. 그보다 더 힘든 것은 생사를 알 수 없는 엄마 때문에 한순간도 눈물을 흘리지 않은 날이 없었어요.
그러다 그 집에서 친척들이 그래도 혼례는 해야 한다고 돈을 조금씩 보내왔는데 같이 살던 사람에게 결혼식 않해도 잘 할테니 그 돈으로 엄마를 사오면 안되냐고 울면서 사정했어요. 그래서 엄마를 데리고 있던 사람과 연결해서 엄마를 사 올 수 있었어요. 그래도 감사한 것은 그렇게라도 했기에 우리는 다 같이 소식을 나누며 살수 있게 되었어요.
그런데 우리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들인 것 같았어요. 멀리 멀리 팔려가서 다시는 볼 수 없을거라 생각했던 언니가 엄마하고 같이 저희들이 있는 곳으로 왔어요. 중국한족에게 팔려가던 언니가 자신이 팔려가는 것을 알아차리고 가던 도중 죽기 살기로 도망쳤대요. 언니가 원래 있던 집으로 가보니 그 집 주인이 너희 엄마와 동생들이 모두 중국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어요.
그래서 언니가 엄마랑 동생들 있는 곳을 알려주지 않으면 공안국에 북한사람들 팔아먹는 집이라고 신고하겠다고 협박을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집주인이 엄마가 계시던 곳으로 언니를 안내해 주어 엄마와 언니는 극적으로 만났지만 먼 곳으로 팔려간 우리를 생각하면서 그냥 그냥 울면서 지냈대요. 그러다가 제가 6일만에 소식을 보내 엄마랑 언니랑 우리는 다시 만날 수가 있었어요.
그 넓은 땅에서 그래도 보름 남짓하게 다 만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운인지 여러분들을 잘 모를거예요. 저희만이 아닌 탈북자라면 누구나 다 이런 아픈 일들을 겪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제가 아는 한 아이는 18살에 아이를 낳다가 병원에서 그만 죽고 말았고, 어떤 애는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로 도적으로 몰려서 너무 너무 힘들어 하던도중 자기 스스로 자살을 한 아이도 있었어요.
속담에 나라없는 백성 상갓집 개만도 못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나라도 있는데 왜 남의 나라 땅에 가서 짐승만도 못한 대우를 받고 살아야 하나요. 한창 커야할 16살 17살 여자아이들이 남의 나라 남자들의 성 노리개로, 정신질환 환자들, 노총각들의 여자가 되어야 하나요. 발이 묶이고, 달아날까 옷도 못 걸치게 하고, 달아나다 붙잡혀서 오토바이에 손을 묶어놓고 개처럼 질질 끌고 온 동네를 끌려 다녀야 하는지요. 정말 지금도 중국에서 그렇게 살고있을 탈북자들을 생각하면 밤에도 소스라쳐 잠들 수가 없습니다.
현재 지금 북한에서 저의 사촌언니가 중국에 들어왔습니다. 그 언니가 얘기하는 것이 아빠가 중국에 우리를 찾아 들어왔다가 북한에 붙잡혀갔다고 합니다. 우리가 한국에 왔다는 사실 때문에 정치범수용소에 들어갔다고 했어요. 지금은 살았는지 돌아가셨는지 모른다고 했어요.
우리는 그래도 한국에 와서 따뜻한 방에서 배부르게 잘 살고 있는데 지금 살았는지 돌아가셨는지 모를 아빠 때문에 하루하루를 눈물 속에 살고 있습니다. 정말 하루빨리 북한의 인권문제가 해결 되어서 정치범수용소가 없어지고 해외에서 떠도는 불쌍한 북한사람들이 마음 놓고 살 수있는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두서없는 긴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들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구요. 여러분들이 불쌍한 우리 탈북자들과 북한형제들을 위해서 정말 많은 노력을 해 주시리라 믿으면서 저의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는 1998년 6월25일 북한을 탈북 하여 중국에서 약 5년간 살다가 2003년 1월에 한국에 온 탈북자 이신이라고 합니다. 저는 지금 엄마랑 언니랑 동생 그리고 딸과 함께 서울에서 살고 있습니다.
간단히 탈북동기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언니가 북한에서 공업대학을 졸업하고 광산에서 쇠돌을 캐는 했는데 일이 너무 어려운데다가 그렇게 일을 해도 돈 한푼 안주니 너무 싫다고 중국으로 탈북하였습니다.
저는 북한에서 선전부에서 가수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니가 중국에 간 사실이 알려지면 무대생활을 할 수 없고 우리 가족도 무사치 못할거라고 생각했기에 저는 탈북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족들도 언니를 찾아서 다 함께 중국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중국에 들어가니 언니는 이미 팔려가고 난 후였습니다. 며칠 후면 언니한테서 소식이 올거라는 말에 창고에서, 집 지붕 위로, 돼지우리로, 산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3일을 기다렸어요. 그러던 어느 밤 화룡이라는 시내에 들어가야 한다면서 저희들을 데리러 택시운전수와 웬 여자한명이 왔어요.
도착하니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여러 명의 중국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며 중국어로 무어라 자꾸 이야기 하였어요. 그러더니 저하고 동생은 한 차에 엄마는 다른 차에 타고 어디로 가야한다고 했어요. 우리는 언니하고도 생리별 하였는데 엄마하고도 혜여 질 것만 같아 안된다고 엄마랑 같은 차타야한다고 울었습니다. 그들은 5명이 앉으면 단속되다고 하며 엄마 차를 우리가 따라가면 된다고 하기에 할 수 없이 그들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드라마에서 본 듯한 일들이 벌어졌어요. 사거리에서 엄마탄 차는 직진하고 우리가 탄 차는 우회전하면서 가는거였어요. 우리가 차안에서 울고 난리를 쳐도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들이 없었어요. 이렇게 우리 자매는 언니를 잃고 엄마까지 잃고 울면서 팔려갈 수밖에 없었어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엄마는 나이가 있어서 안 팔리니 우리만 팔아먹느라고 갈라놓았던 것이였어요.
그때 저의 나이는 21살 동생은 18살이였어요. 저는 그래도 그나마 참을만 했는데 동생은 18살에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자기보다 10살이나 많은 사람에게 팔려가는 것을 보았을 때 그애한테 남은건 나밖에 없는데 언니로써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팔려가기 전에 둘이 부둥켜안고 한나절이나 울었어요. 저와 저 동생은 처녀시절이 어떤것인지도 모르고 한창 아빠 엄마 사랑을 받을 나이에 서로 다른 집에 팔려가 동생은 19살에 저는 22살에 아이엄마가 되어 힘든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래도 다행히 둘다 조선족 교포에게 가서 말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 다행스러웠어요. 제가 팔려간 집은 아빠 엄마는 장애2급을 가진 정신장애인의 집이였어요. 저는 그 집 맏아들과 같이 지내게 되었어요. 그래도 북한에 있을 때에는 집의 생활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고 6살 때부터 노래만 부르고 고생도 모르고 자랐던 저에게는 너무나 힘든 생활이였어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초가집, 낮에도 쥐하고 같이 생활해야 하고 밤이면 벽사이로 밖이 내다보일 정도인 그런 집에서 농사하면서 살아야 했어요. 그보다 더 힘든 것은 생사를 알 수 없는 엄마 때문에 한순간도 눈물을 흘리지 않은 날이 없었어요.
그러다 그 집에서 친척들이 그래도 혼례는 해야 한다고 돈을 조금씩 보내왔는데 같이 살던 사람에게 결혼식 않해도 잘 할테니 그 돈으로 엄마를 사오면 안되냐고 울면서 사정했어요. 그래서 엄마를 데리고 있던 사람과 연결해서 엄마를 사 올 수 있었어요. 그래도 감사한 것은 그렇게라도 했기에 우리는 다 같이 소식을 나누며 살수 있게 되었어요.
그런데 우리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들인 것 같았어요. 멀리 멀리 팔려가서 다시는 볼 수 없을거라 생각했던 언니가 엄마하고 같이 저희들이 있는 곳으로 왔어요. 중국한족에게 팔려가던 언니가 자신이 팔려가는 것을 알아차리고 가던 도중 죽기 살기로 도망쳤대요. 언니가 원래 있던 집으로 가보니 그 집 주인이 너희 엄마와 동생들이 모두 중국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어요.
그래서 언니가 엄마랑 동생들 있는 곳을 알려주지 않으면 공안국에 북한사람들 팔아먹는 집이라고 신고하겠다고 협박을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집주인이 엄마가 계시던 곳으로 언니를 안내해 주어 엄마와 언니는 극적으로 만났지만 먼 곳으로 팔려간 우리를 생각하면서 그냥 그냥 울면서 지냈대요. 그러다가 제가 6일만에 소식을 보내 엄마랑 언니랑 우리는 다시 만날 수가 있었어요.
그 넓은 땅에서 그래도 보름 남짓하게 다 만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운인지 여러분들을 잘 모를거예요. 저희만이 아닌 탈북자라면 누구나 다 이런 아픈 일들을 겪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제가 아는 한 아이는 18살에 아이를 낳다가 병원에서 그만 죽고 말았고, 어떤 애는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로 도적으로 몰려서 너무 너무 힘들어 하던도중 자기 스스로 자살을 한 아이도 있었어요.
속담에 나라없는 백성 상갓집 개만도 못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나라도 있는데 왜 남의 나라 땅에 가서 짐승만도 못한 대우를 받고 살아야 하나요. 한창 커야할 16살 17살 여자아이들이 남의 나라 남자들의 성 노리개로, 정신질환 환자들, 노총각들의 여자가 되어야 하나요. 발이 묶이고, 달아날까 옷도 못 걸치게 하고, 달아나다 붙잡혀서 오토바이에 손을 묶어놓고 개처럼 질질 끌고 온 동네를 끌려 다녀야 하는지요. 정말 지금도 중국에서 그렇게 살고있을 탈북자들을 생각하면 밤에도 소스라쳐 잠들 수가 없습니다.
현재 지금 북한에서 저의 사촌언니가 중국에 들어왔습니다. 그 언니가 얘기하는 것이 아빠가 중국에 우리를 찾아 들어왔다가 북한에 붙잡혀갔다고 합니다. 우리가 한국에 왔다는 사실 때문에 정치범수용소에 들어갔다고 했어요. 지금은 살았는지 돌아가셨는지 모른다고 했어요.
우리는 그래도 한국에 와서 따뜻한 방에서 배부르게 잘 살고 있는데 지금 살았는지 돌아가셨는지 모를 아빠 때문에 하루하루를 눈물 속에 살고 있습니다. 정말 하루빨리 북한의 인권문제가 해결 되어서 정치범수용소가 없어지고 해외에서 떠도는 불쌍한 북한사람들이 마음 놓고 살 수있는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두서없는 긴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들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구요. 여러분들이 불쌍한 우리 탈북자들과 북한형제들을 위해서 정말 많은 노력을 해 주시리라 믿으면서 저의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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