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사랑이야기

녹색성장위원회, 녹색문법 평론 ... 안희환의 '놓아야 잡을 수 있다'

안희환2 2009. 2. 9. 14:26
녹색성장위원회, 녹색문법 평론 ... 안희환의 '놓아야 잡을 수 있다'
[뉴시스와이어] 2009년 02월 09일(월) 오후 12:03   가| 이메일| 프린트
【뉴시스와이어】-(마이너스) 차원의 그리움이 +(플러스, 구원의 서정)의 생명으로 표출되는 시

창조문학신문사는 안희환 목사의 시 ‘놓아야 잡을 수 있다’의 작품을 ‘이달의 문학상’으로 선정하면서 녹색문법으로 생태평론을 발표했다. 박인과 녹색평론가는 자신이 낮아져야 높아질 수 있다는 불변의 진리가 이 시에 있다고 밝히며 우리는 비워지는 겸손함으로 사물을 바라볼 때 진정한 녹색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밝혔다.

안희환 목사의 창작시에 대한 박인과 녹색평론가의 녹색문법은 다음과 같다.


♣ 박인과의 녹색문법 평론 / 박인과 녹색평론가
-(마이너스) 차원의 그리움이 +(플러스, 구원의 서정)의 생명으로 표출되는 시

안희환 목사의 창작시 ‘놓아야 잡을 수 있다’는 낮아져야 높아진다는 평범하고도 깊은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기독교적 진실을 성경에서 캐내지 않더라도 이것은 불변의 진리에 속한다.


♣ 놓아야 잡을 수 있다 / 안희환(시인, 녹색성장위원회 부위원장)

굽히지 않으면
높이 뛸 수 없다.
당장 낮아짐을 피한다면
후에 높아짐도 피할 터.

벗어버리지 않으면
새로 입을 수 없다.
잠깐 추위에 떨기 싫다면
낡은 이미지를 씻지 못할 터.

쥔 것을 풀지 않으면
앞의 것을 잡을 수 없다.
놓는 아쉬움을 이기지 못하면
더 이상 얻을 것이 없을 터.

싫은 것과 좋은 것
잃는 것과 얻는 것
다른 것 같지만 함께 한다.
전자를 받아들이는 이가
후자도 받아들일 수 있다.

- 안희환 시인의 ‘놓아야 잡을 수 있다’ 전문


흐르는 물은 스스로 낮아진다. 그러나 나중에 결국 높아지게 된다. 아무리 높은 산일지라도 그 속에 흐르는 물은 낮게 흐른다. 낮게낮게 수맥을 따라 흘러서 낮은 곳에서 초목의 뿌리에 닿아 몇 백 년 묵은 나무의 뿌리에도 닿아 그 나무의 물관으로 모세관 현상에 의해 솟구쳐 오른다. 솟구쳐 올라 나뭇잎에서 광합성에 관여하게 되고 또한 나뭇잎의 호흡을 통하여 하늘로 오르게 된다.

결국 나무의 생명의 광합성에 참여하게 되는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야 될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 물은 꽃의 아름다운 빛깔의 체온이 되고 열매의 산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아름다운 꽃이, 달콤한 열매가, 물의 정서인 것이다. 스스로 높아질 수 없는 우리의 영혼도 절대자의 힘에 의지한 생명의 모세관 현상에 의해 들어 올려져야만 한다.

낮아지는 물은 연약한 것 같지만 깊이깊이 흘러 창조에 관여하고 생명의 물관으로 흘러 만물에 생기를 돋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창조에 관여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역사가 새롭게 발전되어 가려하는 것이라면 이런 물의 습성을 닮아야 한다. 물처럼 부드럽고 거부감 없이 낮은 곳으로 흘러 삶의 메마른 언저리를 흠씬 적셔주어야 하는 것이다.

따뜻한 눈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이 눈물이란 것은 그래서 많은 창조적인 사랑의 결실을 낳을 수 있다. 안희환 목사의 이 낮아짐의 창조적 시는 그래서 낮아지는 눈물로서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영양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낮아지는 피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하염없이 낮아지지 않고는 상대방과 화합할 수 없다. 상대방의 뿌리도 낮은 곳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뿌리가 허공을 향하면 뿌리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나가 살아가는 이 땅에 뿌리를 박고 하늘을 향하여 소망의 꽃잎을 펼치는 것이다.

사계절이 겨울에 몸을 굽히고 봄에 스프링처럼 녹색잎들을 튕겨내듯이 굽히지 않으면 뛸 수가 없게 될 것이고, 가을에 퇴색된 나뭇잎들을 벗어버리지 않으면 새봄에 새로운 옷을 입지 못하게 될 것이고, 추위에 움츠릴 때 우리의 낡은 것들은 신축작용에 의해 밖으로 배출되는 것이다. 이것이 신이 내려준 자연 생태계의 진실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풀어 흘러가게 내놓지 못하면 우린 죽음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을 흘러가게 하는 것이고 자연스럽게 미래가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안희환 목사의 녹색언어처럼 싫은 것이 좋은 것이다. 싫은 것이 없으면 좋은 것을 느끼지 못하는 신체구조를 가진 우리는 항상 그렇게 마이너스(어둠의 차원)의 향과 플러스(빛의 차원)의 향으로 우리의 삶을 음미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고통이 있다면 그 고통의 크기보다 더한 환희와 기쁨의 향을 우리는 음미할 수 있으리라.

이러한 생명의 틀 속에서 안희환 목사의 창작시는 -(마이너스) 차원의 그리움을 +(플러스)의 생명(플러스의 구원의 서정)으로 인식한 언어를 표출하는 것이다.

우리의 꿈은 하늘에 있지만 이 땅과 결별해서는 안 된다. 땅이 -(마이너스)의 차원이라면 하늘은 +(플러스)의 차원이다. 흐르는 물이 -(마이너스)의 행위로 자꾸만 땅 밑으로 낮아지지만 +(플러스)의 차원으로 높아지듯이 자꾸만 우리의 마음이 굴지성의 나무뿌리처럼 이 땅의 존재들에 뿌리를 박아내리고 굴광성의 나뭇가지처럼 하늘을 향해 영혼의 팔을 벌리게 될 때, 생명의 모세관 현상에 의해 들어 올려져 다른 존재들과 함께 하는 끈끈한 생명의 군락을 경험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출처:녹색성장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