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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효막심한 놈의 이야기/ 안희환

안희환2 2009. 1. 23. 11:44

불효막심한 놈의 이야기/ 안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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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어머니들이 그렇지만 저의 어머니 역시 많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워낙 가난한 집이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쉴 틈이 없이 일하셔야만 했습니다. 저는 학교를 오가면서 여름철 뜨거운 태양빛 아래서 밭일을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아버지께서 직장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였기에 어머니는 더 고생을 하셔야 했습니다.

 

제가 살던 집은 판잣집이었습니다. 사는 지역 자체가 판자촌이었으니 자연스러운 결과였지요. 하나 뿐인 방 안에서 여섯 식구가 살려니 보통 불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개인의 사생활이란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지요. 후에 판자로 두들겨 만든 방 하나가 더 생긴 후에 조금 나아졌지만 말입니다. 그처럼 비좁은 공간에서 살림을 해야 했던 어머니는 그만큼 힘드셨을 것입니다.

 

판자촌을 벗어났을 때는 제가 30살이 되었을 때입니다. 수십 년간 아버지와 어머니는 열심히 일하셨고 마침내 아파트를 장만하시면서 판자촌을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작은 가게를 하나 얻어서 시작한 슈퍼마켓은 수입이 많진 않았어도 부모님이 집을 마련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동생들 역시 열심히 일하면서 집을 사는데 도움을 주었고요.

 

이제 부모님은 가난하지 않습니다. 아파트에 이어 작은 가게 하나도 부모님의 이름으로 소유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문제는 연세가 많으신 지금도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슈퍼마켓에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쉬라고 권해드리지만 듣지를 않으십니다. 동생들은 그런 부모님을 위해 틈이 날 때마다 물건을 정리해드리기도 하고 가게를 봐 드리기도 합니다.

 

최근에 저는 어머니를 모시고 보라매 병원에 갔습니다. 다리를 절뚝거리시고 한쪽 팔을 잘 못쓰셨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동네의 작은 병원에 가시거나 침을 맞으시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그것으로 안 될 것 같아 어머니를 모시고 큰 병원에 간 것입니다.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면서 마음 한 구석이 시큰거렸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어머니와 나란히 차를 탔기 때문입니다.

 

의사는 어머니를 진찰하더니 파킨슨병이라고 하였습니다. 8년 정도 진행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죄의식이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아픈 것을 잘 드러내지 않는 어머니인데 그 동안 너무 무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저는 불효자식이었던 겁니다. 의사는 어머니의 혈압도 정상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상당히 높다는 것입니다. 눈도 검사를 해보라고 하였습니다.

 

다음 번 진료를 예약한 후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가는데 뭐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몸이 그렇게 된 것에 담담하게 받아들이셨는데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더 아팠습니다. 어머니는 잠간 젊은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몸에 기운이 없어서 숟가락도 잡기 힘들어 떨어뜨리곤 했었다는 것입니다. 영양이 모자랐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몸으로 일을 다니셨으니 몸이 망가지는 것도 당연 것 것이겠지요.

 

안과가 예약된 날 어머니를 모시고 보라매 병원으로 갔더니 예약자 명단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실수를 했던지, 병원이 잘못을 했던지 둘 중 하나인데 따지는 것이 무의미할 것 같아 다른 날로 다시 예약을 했습니다. 예약된 날이 되어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는데 병원에서는 여러 기계로 눈을 살피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하였습니다. 의사는 황반변성이라는 병인데 초기에서 중기로 진행하는 중이며 그냥 두었다면 실명했을 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진료를 마치고 어머니를 모셔드리는 동안 저는 운전대를 꼭 잡았습니다. 마치 제 심장을 움켜쥐듯이 말입니다. 어머니는 더 심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만 하십니다. 고생만 하며 지나온 세월이 원망스럽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하긴 아버지가 술을 끊으시기 전 집안의 기물을 파손하시면서 어머니를 힘들게 할 때조차 불평 한 마디 안 하시던 분이니까요.

 

요즘 어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셔야 하는 어머니를 제가 모시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동생들 역시 차가 있지만 제가 하고 싶었습니다. 조금이나마 죗값을 치른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손을 잡고 병원 복도로 오고 가는데 어머니의 손을 잡아본 것이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여겨집니다. 어머니의 손엔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이 또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어머니에게 평생 받기만 했지 드린 것이 없습니다. 이제라도 드리며 살고 싶은데 드릴 것이 별로 않습니다. 이러다가 뭔가 해드릴 수 있을 때까지 어머니가 기다려주지 않고 가시면 어쩌나 하는 안타까움도 있습니다. 자녀들은 모두 부모 앞에서 불효자식이라고 하지만 저는 특히나 더한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조금 더 건강해지시고 오해 사셨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는 불효막심한 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