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를 잘 활용한 여자(선덕여왕)/ 안희환
대단한 여자들(12)
여자들 중에 남자들 이상으로 용기가 있고 리더십도 갖추고 있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리적인 힘으로야 남자를 이길 수 없을지 몰라도 다른 분야에서 더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남자들 위에서 그들을 리드하는 여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남녀평등이 보편화되고 있는 오늘날에는 그런 현상이 비일비재하지만 남성중심의 과거 세계에서도 그처럼 대단한 여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선덕여왕은 그처럼 대단한 역량을 갖춘 여성입니다. 선덕 여왕의 성은 김(金), 이름은 덕만(德曼), 호는 성조황고(聖祖皇姑)입니다. 아버지는 신라의 진평왕이고 어머니는 마야부인(摩耶夫人) 김씨입니다. 진평왕의 사망 후 신라의 왕위 승계에 문제가 발생하였는데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성골의 남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왕위 계승자를 결정하는 화백회의는 두 사람의 왕위 계승 후보자를 놓고 고심을 하게 됩니다. 한 사람은 성골 다음의 계급인 진골에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김용춘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진평왕의 딸 덕만입니다. 김용춘의 경우 성골이 아니기에 제약을 가지고 있었고 덕만의 경우 여성이기 때문에 제약을 가지고 있었는데 결국 화백회의는 덕만을 선덕여왕으로 추대하게 됩니다.
선덕여왕은 왕위를 계승한 후 탁월한 외교정책을 펼치고 신라의 문화 발전에도 큰 공헌을 합니다. 백제, 고구려, 신라라는 삼국구도 속에서 가장 약한 세력을 가지고 있던 신라는 선덕여왕의 통치로 인해 안정을 찾게 됩니다. 고구려의 남하정책과 백제의 팽창으로 궁지에 몰리게 될 상황에서 당나라와 동맹관계를 결성함으로써 신라를 쉽게 공격하지 못하도록 한 선덕여왕의 정책은 세계 흐름을 보는 안목이 있었음을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주목할 것이 있는데 선덕여왕이 뛰어난 역량을 가진 남성들을 적절하게 활용함으로써 나라를 힘 있게 통치하였다는 점입니다. 남성들을 여성 왕인 자신의 경쟁자로 보고 멀리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중용하고 조정함으로써 오히려 왕위가 견고해지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워진 대표적인 남성이 둘인데 하나는 김춘추이고 다른 하나는 김유신입니다.
사실 김춘추는 상식적인 의미에서 중직에 등용해서는 안 되는 인물입니다. 김춘추가 선덕여왕과 왕위 계승 경쟁을 벌였던 진골 김용춘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대개 왕위 경쟁을 벌이던 상대방과 그 후손들의 경우 죽임을 당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입니다. 역적이라는 꼬리표가 붙으면 그 누구도 도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고요. 그런데 선덕여왕은 그런 것에 얽매이기는커녕 역적의 아들을 발탁하여 중용하였으니 보통 배포가 아닙니다.
선덕여왕은 김춘추를 견제하기 위해 곁에 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김춘추가 마음껏 역량을 발휘하도록 기회를 제공하였습니다. 김춘추는 외교에 있어 전권을 발휘할 수 있었고 그의 뛰어난 능력은 신라를 견고하게 세우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김춘추는 다른 마음을 품지 않고 선덕여왕의 충실한 신하가 됨으로써 선더여왕의 든든한 지지 세력이 되었습니다.
김춘추 못지않게 김유신의 등용 역시 파격적인 인사입니다. 김유신은 신라에게 멸망한 금관가야의 왕족이었다가 신라의 진골에 편입해 들어온 인물입니다. 그러나 신라의 진골에 속한 사람들은 그런 김유신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김유신이 명목상으로는 진골일지 모르지만 실질적으로는 진골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김유신에게 있어 정치의 중심에 들어간다고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선덕여왕은 그런 김유신을 발탁하여 중직에 기용한 것입니다. 더구나 나라의 핵심요소라 할 수 있는 군사권을 맡겼습니다. 신라에 망한 금관가야의 왕족 출신에게 나라의 군사권을 맡긴다는 것은 위험할 수 있는데도 선덕여왕은 기꺼이 그런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출신이나 배경이 아닌 역량을 보고 실행한 인사였는데 결국 김유신은 뛰어난 역량을 발휘할 뿐 아니라 김춘추와 마찬가지로 선덕여왕의 든든한 지지 세력으로 자라 잡게 됩니다.
선정을 베풀어 민생을 안정되게 만든 선덕여왕,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구제 정책을 펼친 선덕여왕, 당나라의 문화를 수입한 선덕여왕, 첨성대와 황룡사 구층탑을 건립하는 등 과학과 예술 발전에 공헌한 선덕 여왕, 고구려와 백제의 틈바구니에서 신라를 고개 들게 한 선덕여왕, 탁월한 외교술을 갖춘 선덕여왕. 이런 근사한 묘사들 외에 두 남자를 잘 활용한 선덕여왕이라는 묘사를 붙여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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