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적이란 말을 너무 좋아하지 말라/ 안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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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적이라는 말을 현대인들은 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열린 사람이라는 말은 오늘날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호중 하나라고 생각되고요. 반대로 폐쇄적이란 말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닫힌 사람이란 말은 꽉 막힌 사람 내지는 속이 좁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요.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개방적이란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다원주의의 바다 속에 푹 빠져버린 오늘 날 세상에서 어쩔 수 없이 드러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거스른다는 것은 비난을 초래할 수 있는 무모한 시도이며 독불장군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따라서 어떤 한 가지를 붙잡고 그것을 진리라고 고수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세상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입니다. 그리스도인들끼리만 뚝 떨어져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비그리스도인들과 섞여 살아가고 있기에 그런 세상의 문화와 흐름에 충돌할 수밖에 없고 그때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는 그런 세상에 동화되어 우리가 고수해야할 절대성을 저버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지켜야할 신앙의 절대성을 지키기 위해 조롱이나 고난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저는 지켜야할 절대성마저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음을 보면서 마음이 아픕니다. 하나는 성경의 권위에 대한 것입니다. 사회학적 성서해석이라고 하는 해석학의 한 방법이 있습니다. 사회적인 정황이나 공동체의 성격을 찾아내려 하는 것은 귀한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어떤 공동체의 부산물인듯 취급하는 이들도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럴 경우 성경은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역사적인 결과물이 될 뿐입니다.
사회학적 성서해석 뿐이 아닙니다. 진보적이라고 일컬어지는 학교에서 공부한 분들이 신학대학에서 가르치면서 성경에 대한 권위를 우회적으로 거부하는 경우도 종종 보았습니다. 교단 신학대학이기에 성경의 권위를 정면으로 부인하면 문제가 될 수 있기에 그 정도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보다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펼쳐나갔을 것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신학을 배우고 목회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동일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생각을 가진 채 성경을 본문으로 설교를 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될 것입니다.
또 하나는 구원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성에 대한 부분입니다. 예수님 말고 구원의 길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든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이나 부활을 부인한다든지 하는 현상들을 종종 봅니다. 문제는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예수님은 유일한 구원자가 아니라 여러 구원자 중 한 분으로 추락합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장). 이 말씀을 인정한다면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임을 고백해야 할 것이며 이 말씀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거짓말쟁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 말고 구원의 길이 있는데 당신만이 구원이라고 주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방이란 말 참 좋습니다. 저 역시 그 말을 좋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개방은 자신의 본질을 버리면서까지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그런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의 권위를 낮추면서까지 개방한다면 그것은 이미 그리스도인임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구원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버리면서까지 개방한다면 그것은 이미 교회를 파괴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닐 것입니다.
개혁은 다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개혁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그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벗어난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개혁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고백하면서 그 예수님을 모든 것으로 삼는 것입니다. 예수님보다 귀하게 여기는 돈, 명예, 인기, 쾌락 등을 우리의 삶 속에서 제거하는 것입니다. 개혁자는 개방만능주의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개혁자는 진리를 지키는 자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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