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의 칼럼

강간당한 여성을 성추행한 경찰 / 안희환

안희환2 2006. 7. 27. 22:27

강간당한 여성을 성추행한 경찰 / 안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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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법원에 다녀왔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재판받는 것을 방청할 수 있었는데 역시 많은 것들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한 사건들이 있었고 그들 각자에 대해 선고가 내려질 때마다 희비가 엇갈리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집행 유예나 무죄 선언으로 풀려나오는 사람들은 기뻐하는 모습을, 징역을 선고받는 사람들은 좌절 혹은 분노의 표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재판 과정을 지켜보면서 한 가지 민망하게 여겨지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남성 피고의 경우 수갑을 찬 것만으로도 모자라 팔을 꽁꽁 동여맨 모습으로 서 있게 한 후 재판 결과를 듣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라보는 내 자신의 얼굴이 뜨뜻해졌는데 당사자들의 마음에는 얼마나 많은 수치감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측은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죄를 지은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동정의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판결의 내용들 중에 조금은 자극적이라고 할까 아니면 충격적이라고 할까 하는 재판 내용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피고는 경찰이었습니다. 그의 죄목은 성추행이었는데 경찰이라는 직위를 이용하여 성추행을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처음에 경찰인줄 모르고 재판 과정을 지켜보다가 피고가 경찰이라는 것을 안 순간 기분이 묘했습니다. 여러 죄인들을 재판정에 세운 장본인이기도 할 텐데 이제 본인이 피고인석에 서 있으니 말입니다.


사건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 여성 피해자는 어떤 남성에게 강간을 당했습니다. 문제의 경찰은 그 여성에게 유리한 상황이 되기 위해서 사건 전말에 대한 시범을 보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진술이 불리할 수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여성 피해자와 함께 그 여성의 집으로 가서 성추행을 한 것입니다.


판사는 유죄를 선언하면서 그 이유를 몇 가지에 걸쳐 이야기 했습니다. 첫째로 왜 사건 재현을 위해 혼자 사는 여성의 집에까지 가서 했느냐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런 사건 재현을 하면서 꼭 옷을 벗긴 채 속옷 차림으로 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강간에 대한 사건 재현을 하면서 왜 여성 경찰을 대동하고 여성 경찰이 하게 하지 본인 스스로가 그 역할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넷째로 경찰이 사건 재현을 하면서 무슨 이유로 자신의 바지를 내렸느냐는 것입니다.


결국 경찰이 성추행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으며 몸에 손이 닿은 것은 사건을 재현하면서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판사는 그 모든 것을 줄줄이 나열한 후에 강간당한 여성 피해자를 또 성추행한 경찰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였습니다. 경찰은 불만에 찬 표정을 지었는데 눈매가 무척이나 매섭게 느껴졌습니다(그가 뒤돌아보았을 때 봄).


이 사건을 곱씹어 보면서 마음 한 구석이 어두워졌습니다. 이미 강간 사건으로 상처를 깊이 받은 여성에게 경찰이 권한을 남용하여 또 다시 상처를 입힌 것입니다. 여성 피해자가 반발을 하지 않았다면 성추행이 아닌 성폭행이 되었을 것이고 강간당한 여성이 또 다시 경찰에게 강간당한 사건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약자를 보호해주고 사회의 악으로부터 지켜주어야 할 경찰이 오히려 그처럼 사악한 죄를 저질렀다고 하는 것이 씁쓸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드러난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경찰 이외에 다른 힘 있는 어떤 사람들을 대입하여도 동일한 패턴의 약자 짓밟기가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동물의 세계가 아님에도 약육강식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되곤 하는 인간 세계의 모습을 접해본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인데 그들 속에서 생기는 사회에 대한 깊은 불신은 그들이 이 사회의 피해자임을 보여주는 증거일 수 있을 것입니다.


약하기에 짓밟히는 것이 아니라 약하기에 오히려 보호를 받는 사회가 되지 못하는 현실이 아쉽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사용하고 나누어주는 사람들이 많다면 이 사회는 보다 따듯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이 흥미진진한(?) 사건에 대한 재판, 사회의 부조리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어 준 셈입니다.


먼 거리를 많이 시간을 들여 오고가느라 피곤하기는 하지만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으니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네 번째 법원 출입으로 인해 조금 익숙해졌다고 해도 여전히 낯선 법원과 그 안의 재판 과정. 동일한 사람들이 진행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잠시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듯 한 느낌이 드는 곳은 일상적인 이야기가 아닌 법원 내에서만 가능한 특수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어서 그런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