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의 칼럼

박지성 선수에게 반했다 / 안희환

안희환2 2006. 5. 25. 00:00

박지성 선수에게 반했다 / 안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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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게 물 위를 떠다니는 백조의 모습이지만 물속에서는 발이 쉼 없이 움직인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한 사람의 찬란함 역시 그와 같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화려한 조명을 받는 모습 이면에 남들이 알지 못하는 땀과 눈물, 고독과 탄식, 끝없는 자포자기와의 싸움이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그런 처절한 과정들을 간과한 채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만 보고 부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꿈을 꾸고 꿈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몽상가와 꿈을 꾸고 그 꿈을 위해 대가를 지불하는 비전가의 차이점을 구분하지도 못한 채 그저 화려한 스타가 되고 싶다는 욕망만을 표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월드컵을 앞두고 또 다시 축구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2002년 내성적이며 그다지 활동적이지도 못한 내가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길거리로 뛰쳐나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올해 있을 월드컵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것이 아니기에 그때만큼 흥분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평생 처음 해본 길거리 응원의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월드컵은 여러 스타들을 탄생시켰습니다. 태극전사들의 말 한 마디, 표정 하나, 그들의 행동 하나가 국민들의 관심 대상이었고 그들은 이 나라의 영웅처럼 떠받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런 열광의 도가니 속에서 뜨거운 숨소리를 내는 국민들을 향한 비난의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2002년 월드컵은 대한민국 사람들의 축제처럼 여겨졌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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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는 혹시 그렇게 멋지고 근사한 선수들의 이면서 남모르는 눈물과 고통이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것을 잊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 인터넷을 통해 본 박지성 선수의 발 사진은 내 마음을 뒤흔들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게 만들었는데 역시 화려함 속에는 처절함이 있다는 것을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아래의 글은 히딩크 감독이 박지성 선수에게 보냈던 글입니다.


지성에게


내가 처음 자네를 만났을 때는 아직 어린 선수였지. 대단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어. 하지만 자신이 얼마나 우수한 자질을 지녔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더군.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눈부시게 성장했고 날이 갈수록 자신에 찬 모습을 보여주었지.


월드컵이 끝나고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에 합류한 자네는 한동안 어려운 시기를 보냈지. 당연한 일이었어. 모든 면에서 완전히 새로운 환경이었으니까. 낯선 나라에 알지 못하는 언어, 생소한 문화, 몸에 배지 않은 훈련방식..


무엇보다 3년 이상 쉬지 않고 경기를 해온 탓에 몸에 무리가 간 것이 자네를 더욱 힘들게 했지. 오른쪽무릎 부상으로 고통당하면서도 기술진이나 의료진에게 아프다는 말도 하지 않았어. 역시 박지성다운 행동이었다고나 할까. 묵묵히 , 아무런 불평 없이 최선을 다해 뛰고 또 뛰는 것 말이야.


클럽 안팎에서 들려오는 자네에 대한 불만의 소리들도 적지 않았어. 하지만 자네는 해냈어. 시련의 시기를 견뎌내고 마침내 PSV에서 가장 특별한 선수, 가장 사랑받는 선수 가운데 하나로 우뚝 섰어. PSV서포터들과 에인트호번 시민들도 열광했지.


자네가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가 되어 PSV를 떠날 때..팀의 동료들과 팬들은 그 동안 온몸을 던져 보여준 투혼과 헌신에 뜨거운 신뢰와 박수를 아끼지 않았네. 앞으로도 묵묵히 아무런 불평없이 최선을 다해 뛰는 그 박지성을 기대하겠네


From Guus Hiddink


이제 앞에 둔 월드컵을 맞아 선수들의 화려한 플레이에 못지않게 그들이 묵묵히 참아낸 과정에 대해서도 박수를 쳐주었으면 합니다. 때로 힘들어하고 지친 모습을 보일 때, 제대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실수하는 듯이 보일 때, 그런 순간조차도 질책보다는 격려와 지지로 용기를 주는 대한민국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덤으로(?) 멋진 승리의 소식들이 계속 들리기를 소망합니다.


화이팅. ^0^

여러 선수들. 특히 박지성 선수에게 반한 내 자신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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