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겪은 판자촌 생활(44) 비오는 날 가장 먼 길을 택해야 했던 이유 / 안희환
오늘은 학교에 가는 길 중 가장 먼 도로 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 길은 차로 갈 경우엔 논길로 걷는 것보다 조금 더 빠르다. 일단 뚝방으로 해서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데는 10분가량이 걸리고 버스를 탄 후에는 학교까지 15분이면 도착을 하니 논길로 가는 것보다 15분가량이 빠른 것이다.
물론 내 경우 그렇게 빨리 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버스를 타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그럴 돈이 어디 있겠는가? 20원짜리 자야 하나를 사먹는 것도 거의 드문 일인 나에게 설혹 돈이 조금 있더라도 그 돈으로 버스를 타는데 과소비를 한다는 것은 죄악에 가까운 일이었으니까. 아니 그냥 솔직히 말하겠다. 차비가 없었다. ㅠㅠ
그러면 어떤 날에 그 길로 학교에 갔을까? 논길보다 한참 더 걸리는 먼 길을 걸어야 하는 날이 언제였을까? 바로 비가 내리는 날이다. 사실 비라고 하는 것이 구경하기엔 근사할 수 있지만 그 비 때문에 논길은 엉망진창이 된다. 사람이 도저히 지나다닐 수 없는 진흙탕이 되게 하는 것이다. 길 자체가 미끄럽기에 논 속으로 빠지기 쉬운데다가 떠내려간 흙더미로 인해 길이 사라지고 웅덩이가 생기는 일이 다반사인 것이다.
그렇다고 기아산업 공장의 외곽으로 다니는 것도 편하지는 않았다. 거기는 비록 걸어 다닐 수 있을만한 길이었지만 곳곳에 웅덩이가 파이고 그 속엔 물이 고이는데 지나가던 자동차가 그 웅덩이에 바퀴를 담그면 지나가던 사람은 그야말로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고 만다. 그렇다고 사과하는 운전자도 없을뿐더러 아직 의식이 없던 내게는 자동차 탄 사람이 그렇게 지나가는 것이 당연하게만 여겨졌었다. 지금이라면 세탁비를 달라고 할텐데. ^0^
이런 이유들로 인해 하는 수 없이 그 먼 도로 길을 우산을 든 채 걸어가면 같은 학교 학생들이 버스를 탄 채 내 옆을 지나쳐간다. 내가 학교에 도착하기까지 지나가는 버스는 열대도 넘었던 것 같다. 그 버스 안에는 내 친구들도 있었을 텐데 힘겹게 우산을 받쳐 들고 먼 길을 걸어가는 나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한번도 물어보지는 않았다.
사실 우산이라고 하는 것이 비를 다 막아내지 못한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고 그런 상태로 오랜 시간이 걸려 학교까지 가면, 더구나 바람까지 세게 불어서 우산이 꺾이고 그쪽으로 비가 쏟아져 들어온 날이면 나는 그야말로 흠뻑 비를 맞은 채 학교에 도착해야만 했다. 가을비가 내리는 날 그렇게 비를 맞고 학교에 가면 그렇게 추울 수가 없었다.
여분의 옷을 가장에 챙겨갈 일도 없는 것이고 난로라도 있어서 옷을 말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게다가 비까지 주룩주룩 내리니 습기가 많아서 옷이 마를 생각을 안하는 때이니 그런 날은 더 열심히 뛰어놀아서 자체적으로 열을 내는 것이 최고의 해결책이었다. 그런다고 옷이 마르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몸이 추위를 느끼지는 않게 되니까 말이다.
어린 시절 이런 경험을 한 탓인지 나는 지금도 비 맞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또 비를 맞고 다니는 사람을 보게 되면 불쌍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 얼른 뛰어가서 그 사람에게 우산을 같이 쓰자고 한다. 가끔은 방향이 좀 달라도 근처까지 우산을 씌워주고 내가 가야할 곳으로 가기도 한다. 물론 지금 사람들이야 버스를 탈 돈이 없어서 비를 맞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공연히 오지랖 넓게 참견을 해보는 것이다.
자가용을 타고 내가 가고 싶은 곳에 편안하게 다닐 수 있는 지금, 나는 어릴 때보다 수백 배 나은 형편이 된 것 같다. 그러나 행복감이나 감사는 수백 배가 못되는 것 같다. 아니 수십 배도 못 된다. 물론 차를 타고 다닐 때마다 기본적으로 가지는 감사의 마음은 있지만 말이다. 앞으로 감사의 그릇을 더 키워야할 것 같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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