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판자촌생활

어린 시절 나(안희환)의 첫사랑 / 안희환

안희환2 2006. 5. 7. 01:26

어릴 적 겪은 판자촌 생활(41) 어린 시절 나(안희환)의 첫사랑 / 안희환

 

 

초등학교 시절 나는 첫사랑의 여인을 만났다. 아니 뭐 여인이라 말하기는 뭐하겠다. 키도 조그맣고 나올 데도 안나오고 들어갈 데도 안 들어가고 섹시한 매력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도 않은 때이니까. 그냥 첫사랑의 소녀라고 해야 할까? 요즘 초등학교 고학년들이야 몸이 많이 커졌지만 내 어릴 때만 해도 아이들의 몸이 지금보다 작은데다가 순진하기까지 했다. 뭐 장담할 수는 없지만.


내 첫사랑의 이름은 지선이였다. 성은 “채”인지 “최”인지 둘 중에 하나인데 어떤 것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지선이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으며 얌전한 성격에다가 착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남자 아이들이 집적거려도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는 적이 거의 없었고 활짝 웃을 때 드러나는 앙증맞은 보조개는 소년(나)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순진남인 나는 좋아한다는 표현을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복도에서 마주치거나 수돗가에서 마주치는 일이 있어도 직접 말을 걸어보지도 못한 채 집에 돌아가서는 그 좋은 기회를 놓쳐버린 나 자신을 사정없이 구박하였다. 처음으로 말을 건 것도 내가 아니라 지선이 쪽이었던 것 같다. 그 내용은 잊어버렸지만 말을 주고받았다는 것으로 엄청 흥분했던 기억이 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보통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를 보면 집적거리거나 괴롭히거나 아이스께끼를 한다. 놀고 있는 고무줄을 끊어버리기도 하고 말이다. 분명히 나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여자 아이들에게 그런 짓궂은 장난을 하기도 했었다. 비록 말은 잘 걸지 못할지라도. 그런데 지선이에게는 도무지 말도 못 걸 뿐 아니라 장난조차도 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내게 선물하기에 쓸 만한 물건들이 생겼다. 큰아버지댁 누나들 중에 둘째인 정애누나가 악세사리를 판매했었는데 그 장사를 접으면서 남은 물건을 가지고 온 것이다. 주로 반지들이었는데 반짝반짝 빛나는 반지들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반지들 틈에 멋진 목걸이가 하나있었는데 그게 워낙 예뻐서였는지 아니면 하나뿐이라 그랬는지 몰라도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다음 날 나는 반지 몇 개와 목걸이를 가방에 챙긴 후 학교를 향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선에게게 목걸이를 건네주리라 결심을 한 가슴은 콩닥콩닥 뛰었는데 속도조절이 안되었다. 수업 시간 사이사이 기회를 엿보았지만 다른 아이들 이목 때문에 전해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따로 불러낼 만큼 용기가 있지도 못했고. 마음은 초조해지고 수업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점점 짜증도 나기 시작했다.


아무튼 그날 나는 몸이 아파져서 조퇴를 하게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목걸이 전해주려는 틈을 찾느라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서 아팠던 것 같다. 시무룩하게 가방을 챙기고 집을 향하는데 창가에 몇 여학생들이 보인다. 그 애들에게는 말을 못 걸 이유가 없으니 반지들을 꺼내서 보여준 후 “이것 가질래?”라고 물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서로 손을 내밀었고 다른 여자 애들도 몰려들어서 손을 내밀었다.


그때였다. 그 틈바구니에서 지선이가 눈에 띈 것은.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전혀 우연인 것처럼 가장하면서 지선이의 손에 목걸이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얼른 뒤돌아서 집으로 왔으니 지선이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지금까지도 알 길이 없다. 그 일로 인해 고맙다는 인사를 받은 기억도 없고 그렇게 뭉그적거리며 초등학교를 졸업했으니 참 바보같은 내 모습이다.


내 첫사랑은 그렇게 싱거운 막을 내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