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겪은 판자촌 생활(43) 소 등에 올라탔다가 얻어맞다 / 안희환
어린 시절 학교(서면 초등학교) 다닌 길을 이야기하면서 논길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다. 왜냐하면 논길이야말로 학교로 다니는 가장 중심적인 길이었기 때문이다. 100번 학교를 간다고 하면 90번 이상은 바로 그 논길로 다녔으니까. 그런데 사실 그렇게 학교 가는 길 외에도 학교를 가는 3가지 방법이 더 있었다.
하나는 논길 옆에 있는 거대한 기아산업 공장 외곽으로 다니는 길이다. 기아산업 공장 안으로 가로지르면 아스팔트가 깔린 아주 좋은 길로 학교를 갈 수 있지만 그곳엔 무시무시한 지킴이 아저씨 때문에 엄두도 못 낼 일이었고 그 외곽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길은 논길에 비해 무척 넓은 길이지만 비포장 도로였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에 딱 좋은 길인데 아쉽게도 엄청 비싼 자전거를 살 돈은 없었다(초등학교 6학년 무렵에야 중고가 생김).
또 하나는 논길이긴 한데 빙 돌아서 학교를 가는 길이다. 사실 이 길은 내가 다니던 천막교회를 거쳐서 집에 올 때 사용하던 길이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이 길의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가 중학생이 되고나서야 기도해야할 절박한 일들이 많아서 그 길을 통해 교회에 들려 기도하고 집으로 오곤 하던 길이다.
또 하나는 뚝방으로 계속 간 다음에 도로를 만나면 그 도로를 통해서 학교에 가는 길이다. 사실 그 길은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사용하던 길이다. 그러나 버스비가 없었던 나는 버스로 그 길을 다니지 않고 걸어다닐 수밖에 없었는데, 드물지만 왜 그 길로 걸어가기도 했었는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는 기아산업 공장 외곽으로 다니는 길에 대한 것이다. 잊지 못할 기억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그날은 학교에서 운동회가 있던 날인데 나는 하얀색 운동복을 입고 두 명 가량의 아이들과 함께 그 길로 학교를 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내 눈에 멋진 소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이중섭님이 그린 소보처 더 근사하게 생긴.
무척이나 동물들을 좋아하는 나는 그 소를 보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가갔다. 기아산업 공장 옆으로 작은 냇가가 있고, 냇가 옆에 물은 없고 풀이 난 곳에 소를 매두었었는데 그리로 내려간 것이다. 혹시 사나운 소인지(엄청 사나운 놈이 있음. 막 들이받는) 확인을 해본 나는 안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소를 살살 달랜 후 소 등에 올라탔다.
그때였다. 하늘을 울리는 천둥같은 고함소리가 나면서 저쪽에서 골리앗 같은 아저씨가 오고 있었다. 친구들은 벌써 도망을 가고 있었고(치사한 놈들) 나는 부리나케 소에게 내린 후 냇가를 건넌 후 학교 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날이 운동회 날인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옷차림만이 아니라 가방자체가 없으니 달리기 좋았으니까.
겁이 나서 뒤도 못차져본 채 한참을 달리다가 이젠 되었으려니 생각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곧 이어 뒷통수에 가격되는 강한 손길과 그로 인한 통증을 느꼈다. 글쎄 골리앗 아저씨가 계속 쫓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서자마자 근접해오더니 다짜고짜 나를 때린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윗처럼 물매돌이 없었던지라 대항할 수가 없었다. 아저씨는 한참을 소리소리 지르며 혼을 내시더니 고개 숙인 내가 측은해 보였는지 한 마디를 했다.
“네가 다칠까봐 그런 거야?”
나는 지금도 그 말을 믿을 수가 없다. 어차피 다치지도 않은 상황에서 끝까지 쫓아와 때리는 건 뭔가? 그러나 말대꾸하면 더 맞겠다는 판단 하에 나는 최대한 겸손하게 “예”라고 대답을 했고 마음이 누그러진 아저씨는 자비를 베풀기라도 하듯 나를 보내주었다. 그날 나는 최악의 운동회를 보냈다. 달리기 시합을 하는 도중 넘어지는 바람에 꼴찌를 했으니까. 아마도 뒷통수를 맞은 후유증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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