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의 칼럼

정주영의 어린 시절 가출이야기 / 안희환

안희환2 2006. 4. 14. 08:39

정주영의 어린 시절 가출이야기 / 안희환 

IMGP6224.JPG

 

현대의 창업자인 정주영을 모르는 대한민국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 속에서 공만 있는 사람도 없고 과만 있는 사람도 없듯이 정주영의 일생 속에서도 공과 과가 동시에 존재하겠지만 그래도 맨 땅에서 거대한 기업을 일으키고 가난한 자리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만으로도 인물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정주영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흥미있기에 나눠보려고 합니다. 정주영은 1915년 11월 25일 강원도 통천군에서 태어납니다. 아버지 정봉식은 약 4,000평의 논과 밭을 소유한 중농이었는데 먹고 살기가 빠듯했습니다. 그런 가정에서 정주영은 서당과 송전소학교를 다닌 것으로 최종 학력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그런 정주영은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하다가 가출을 결심하게 됩니다. 아무리 봐도 전망이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17살에 척 가출을 하게 되는데 함경남도 고원이라는 곳으로 가서 철도공사판의 노동자가 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수소문 끝에 찾아와 장손이 빠져나가면 안된다고 간곡하게 사정하여 아버지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두 번째 가출은 그 다음해 4월에 있었는데 소학교 동창 둘과 함께 가출하였습니다. 그 한 친구의 친척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친구의 형이 들이닥쳐서 친구를 데리고 갔고 정주영과 다른 한 친구는 다시 길을 떠납니다. 그러나 중간에 사기를 당해 빈털터리가 되고 정주영의 작은 할아버지 집으로 가게 되었는데 아버지의 부탁을 받은 작은 할아버지에 의해 정주영은 집으로 돌아갑니다.


세 번째 가출은 서울에 가서 부기학원을 다닐 목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소 판 돈 70원을 가져갑니다. 부기학원에서 6개월 속성으로 공부하면 회계원이나 경리원으로 취직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학원 안에서 숙식하며 부기 공부를 했는데고, 수업 후 기숙사에 가면 죽어라고 책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2개월 뒤 아버지가 불쑥 자신의 기숙사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정주영이 챙겨 나오지 못했던 서울의 부기학원 입학안내서를 발견하고 거기까지 찾아왔던 것입니다.


고향에 다시 돌아온 후 농사일에 매달리지만 흉년으로 어려워지자 서울에 갈 생각만 하던 정주영은 다시 서울로 갑니다. 당장 먹기 살 길이 없기에 인천부둣가에 일이 많다는 소식을 듣고 인천으로 갑니다. 힘겹게 일하면서 겨우 먹고 살게 된 정주영은 다양한 일을 하게 되는데 나중에는 복흥상회라는 쌀 도매상에 배달원으로 취직합니다.


정주영의 성실성은 그곳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정주영은 매일 일찍 일어나 가게를 청소했습니다. 배달이 없을 때면 쌀 창고를 정리정돈 했습니다. 또 부기학원에서 배운 부기 지식을 이용하여 복식부기로 장부 정리도 하였습니다. 누가 시켜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그런 일들을 감당했습니다. 그렇게 4년간을 최선 다해 일하는 정주영을 눈여겨 본 복흥상회의 주인은 결국 상회를 정주영에게 넘기기로 결심합니다.


주인에게 아들이 있었지만 복흥상회를 운영할 역량이 안되는 난봉꾼인지라 평소에 성실했던 정주영에게 넘기기로 작정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 정주영의 나이는 24살이었고 경일상회라고 간판을 내걸고 시작한 그 사업은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그 후로 다양한 일들을 겪으며 실패도 하고 성공도 하지만 결국 현대라는 대 기업을 일으키게 되는 데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이런 정주영의 어린 시절 일화를 접하면서 역시 한 사람의 성공 뒤에는 많은 땀과 눈물이 있으며 성실함과 노력이 감추어져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면서 술로 인생을 때웠다면 현대 그룹은 없었을 것입니다. 일개 종업원이라는 것에도 개의치 않고 마치 자신이 주인이라도 되는 듯이 성실하게,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한 과정이 없었다면 복흥상회의 주인이 정주영에게 기회를 주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인생의 기회라고 하는 것은 주저앉아 한숨 쉬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부단히 자신을 갈고 닦으며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사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물론 그렇게 사는 사람이 모두 다 대기업가가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성실하게 땀과 눈물을 뿌리는 자가 멍하니 있는 사람보다 성공적인 인생을 누리게 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도 그렇게 나이가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요즘 학생들을 보면 인내와 도전의식이 참 빈약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자신의 삶을 던져 보이는 학생들이 눈에 띄지 않는 것입니다. 너무 쉽게 자포자기하고 주눅이 들어버리며 애초에 어떤 목표도 열정도 없이 하루하루를 버티는 이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2차 세계 대전의 폐허 속에서 처칠 수상은 그 상황에서 꼭 필요한 것이 “피와 땀과 눈물”이라고 역설을 하였는데 “피와 땀과 눈물”은 전후 복구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인생 복구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가난하지만 가난에 굴하지 않고, 병든 몸이지만 병 따위에 포기하지 않고, 열악한 환경이지만 그 환경에 도전하는 사람이라면 피어나는 무지개를 볼 가능성을 많이 가지게 될 것입니다.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편 126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