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의 칼럼

유명무실한 장애인의 날이 되지 않기 위해/ 안희환

안희환2 2006. 4. 21. 11:14

유명무실한 장애인의 날이 되지 않기 위해/ 안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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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추세이며 이는 바람직한 현상일 것입니다. 선진국일수록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적으며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역량을 발휘하며 활동할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역시 이에 발맞추어 장애인들에 대해 점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니 참으로 고무적인 일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81년 처음으로 장애인의 날 행사를 개최하였습니다. 장애인들의 재활과 자립을 도우며 또한 국민들로 하여금 장애인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후로 장애인의 날 행사는 계속 진행되어왔고 정부 차원에서 장애인의 날 기념식과 축하 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올해도 예외가 아닙니다. 서울 올림픽 공원에서 기념식을 비롯한 다양한 행사가 진행됩니다. 11시에는 장애인의 날 기념식이 열리는데 그때에는 ‘올해의 장애 극복상’을 수여하기도 합니다. 이번 수상자는 실험실 폭발사고로 양쪽 다리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사회활동을 펼친 강지훈씨를 비롯한 5명이 수상자입니다.


참 훌륭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런 분들이 상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그와 같은 이들을 많이 찾아내어 격려하고 용기를 주는 일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과연 이런 행사를 통해 얼마만큼의 국민의식이 바뀔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만의 행사일 뿐 국민적인 기대와 관심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이 올림픽에 관심을 기울이고 월드컵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처럼 단 한번이라도 장애인의 날 행사에 전폭적인 관심과 지지를 보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답이 금방 나옵니다. 장애인 올림픽에 대한 관심조차 그렇게 미미할 수가 없는데 장애인의 날이라고 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최근에 장애인에 대한 정부의 의식이나 관심이 얼마나 빈약한지를 드러내주는 일이 있었습니다. 수원시가 4백 5십억 원이나 들여 지하 2층 지상 8층 규모의 청사를 새로 지었는데 1층에만 남녀 장애인 화장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을 뿐 2층에서 8층까지는 모두가 남녀 공용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용화장실에서 볼일 보기를 싫어하는 장애인의 경우 8층 있다가도 1층으로 내려가야만 합니다.


문제는 이런 것에 대해 지적은 받은 후에 보이는 수원시의 태도입니다. 수원시 건설사업소 계장에 의해 건물 면적이 500 평방미터 이상이면 장애인 화장실을 남녀 각각 설치하도록 돼 있지만 우리 건물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라는 대답에서 보이듯이 관련법규상 문제가 없기에 당당하다는 식입니다. 법적으로 문제없으니 장애인은 계속 불편하라는 말입니다.


이런 의식수준과 사고방식을 수정하지 않는 한 장애인의 날 행사를 수십 년 이어가봐야 별다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의무나 법에서 규정된 어떤 이유 때문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문제로 인식하고 내 이웃 중 한 사람을 위한다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 한 행사나 제도의 정비는 그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쯤에서 한 가지를 더 생각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변화를 위해서는 장애인들 스스로의 의식도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필요한 경우 당당하게 도움을 받되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사회에 공헌하는 장애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장애인들이 많이 생길 때 장애인에 대한 국민들의 태도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 큰 인기를 끌었던 하인즈 워드의 경우 그의 성공 사례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혼혈의 몸으로 설움을 겪었던 많은 이들의 지위를 올려주고 그들에 대한 관심확대로 이어졌습니다.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련을 딛고 일어난 한 사람의 생애가 그와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국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장애인들 가운데 꿈을 가지고 노력하여 사회에 공헌하는 이들이 많이 생길 때(강영우 박사처럼/ 소경이었으나 미국 차관급 인물이 됨) 그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장애인들의 지위가 올라갈 것이며 국민들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모두가 대단한 인물이 될 수는 없겠지만 저마다 자신이 속한 곳에서 최선 다해 역량을 발휘한다면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각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희망찬 이야기들이 들려오기를 기대하는 장애인의 날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