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하는 이가 다 적은 아니다/ 안희환
사람은 적응을 잘하는 존재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쉽게 면역력을 가지지 못하는 부분이 자신에 대한 공격 혹은 비난일 것입니다. 그것은 정면에서 일어난 일만이 아니라 인터넷 상에서 일어난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날카로운 언어는 가슴 속으로 파고들어와 아픔을 느끼게 하고 상처를 받게 하고 때로는 하루 종일, 심할 경우엔 일주일 내내 우울한 마음을 갖게 만들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왜 이런 일을 겪으면서까지 글을 써야하나 하는 회의를 느끼기도 하고 그만 펜을 꺾어버리고픈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글만 올리지 않으면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계속 글을 올리면서 반복적으로 경험할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일어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과 관심을 표시하고 지지를 해주기도 하지만 그것이 아픔을 상쇄시키지는 못하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인터넷상에서 많은 글을 주고받으면서 배우는 중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중 한 가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악풀을 달고 공격적인 글을 올리면서 맘 상하게 하는 사람들은 둘로 나뉘어집니다. 하나는 상식 이하이며, 기본적인 판단력을 상실한 상태로 무지한 악풀만을 반복하는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상대할 가치가 없는 사람입니다. 다른 하나는 생각이 다르고 사상이 다르고 정치적인 관점이 다르기에 때로 심할 만큼 공격을 하기도 하지만 그 와중에서 사려 깊고 판단력이 뛰어나며 자신의 논지를 제대로 전개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이야기를 하고 싶은 분야는 후자 쪽인데 그런 사람의 경우엔 원수를 맺고 막말로 맞붙어 싸우기보다 진지한 대화를 통해 좋은 관계로 나아가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일단 서로에 대해 신뢰를 갖게 되면 전혀 다른 이념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서로를 살찌게 하는 좋은 대화를 이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진정한 재산이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복이라면 인터넷 상에서 만난 사람들도 그만큼 소중하게 대해야 할 것이고 아름다운 관계의 열매를 맺도록 정성껏 그 관계를 가꾸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아래 올리고자 하는 글은 나에 대해 혹독한 비판을 가했던 어떤 분의 글과 그 글에 대한 나의 반응, 그리고 지금 그분과 나의 관계에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여줄 것입니다. 상대의 이름은 가명인데 내가 공격을 받는 순간에도 호감을 가지게 할 만큼 생각의 깊이가 있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도 큰 분입니다. 연세도 나보다 한참 위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
하우형님께
검은 색은 하우형님의 글
파란색은 저의 답글입니다.
그냥 댓글로 접으려다가 새로 글을 올립니다.
-제 불찰이 크겠지만 아무튼 많은 오해가 있으신듯 합니다.
표현의 자유를 교묘히 이용하여 자가 PR에 혈안인 안희환씨께!
-피알을 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다만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은 많고요.
님 있잖아요, 사람이 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사실을 가지고 논쟁의 불씨를 얼마든지 만들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아니 그대가 목사/천주님/석가모님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완전이라는 개념은 어디에도 없지 않나요? 그렇다면 그대가 목사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밝힌 것 까지는 좋은데요. 어째서 목사는 규칙을 지키지 않고 자기 멋대로 다수에게 접근을 하나요? 어째서 목사란 자가 겸손하지 못하고 또 point를 그렇게도 빨리 catch를 못하나요? 그래놓고 어떻게 그대는 신자들에게 바른 삶을 살라고 설교를 할 수가 있나요?
-글을 올리려다가 맞는 주제의 방을 찾았었는데 주제 방이 한계가 있더군요. 그래서 찾게 된 것이 표현의 자유라는 방입니다. “어떤 사실을 가지고 논쟁의 불씨를 얼마든지 만들수가 있다”는 말에는 충분히 동의합니다. 이미 겪고 있으니까요. 겸손치 못하다는 표현, 마음에 거슬리지만 역시 인정합니다. 이 일이 아니고서라도 난 내 자신에게 교만의 요소가 많다는 것을 늘 발견하니까요.
그대의 교회신자다수가 어떤 부류의 사람들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대가 이런 식의 위선으로 매사를 행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를 목사로 인정하고 그대의 말을 한 마디도 더 경청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야말로 그 사람들은 아둔의 집단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어쩌면 무척 슬픈 운명의 자아상실증에 걸린 환자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군요. 이러니까 외람된 말씀이지만 “한국이 사이비의 종교 천국” 이 될 수밖에 없지 않나요? 종교를 빙자하여 위선과 술수로 매사에 접근하는 자들이 많다는 말이오. 모르겠소. 그대가 이 정도 까지는 근접을 해있는 지는 아직은 더 두고 보아야겠소.
-우리 교회는 이제 시작한 교회나 마찬가지입니다. 개척교회의 상황은 지났기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는 상황이고 청년들이 장년수에 비해 많이 모이는 그런 교회입니다. 아무튼 저에 대한 비판은 들을 수 있지만 교회 성도들에 대한 비판은 삼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욕먹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우니까요.
사이비에 대한 반감은 저 역시 많습니다. 조금 모자라고 푼수같은 사람이지만 사이비는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하기사 어느 사이비가 자신을 사이비라고 하겠습니까마는...궁금하시면 확인하러 오셔도 좋습니다.
그대가 진정 학식과 덕망이 있는 사람이면 “대학교를 장학금으로 다녔다” 등의 title을 여기에 내어 놓지도 않을 뿐더러 또 대학원 어쩌고 하면서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란 part에 글을 올리지는 않는 단 말이오. 여기 과연 대학물 안 먹은 사람 누가 있고 대학원 안 다닌사람 그리 많나요? 나 솔직히 그대의 이런 말에 대단히 실망을 하였구려. 왜냐하면 “그대같은 자들때문에 교육의 혜택을 좀더 입은 사람들이 욕을 얻어 먹는단 말이오.” “건방지다고요! 시건방 지다고요!” 변형되고 마모된 지식으로 사회의 뿌리/근본들을 흔드는 일에 동참을 한다고요.
-하우형님. 글의 맥락을 더 자세히 살펴봐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장학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것은 글쓰기의 접촉점일 뿐이고 요점은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입니다. 그런 일이 얼마나 여러 사람에게 도움이 되며 큰 힘이 될 수 있는지를 강조한 글입니다. 이런 종류의 글은 e조은뉴스에 칼럼으로 게재되는 글이기도 하고요.
오해를 많이 하셨네요. 실력으로 따지면 박사들만도 못할 텐데 뭐 자랑할 게 있다고 그런 것을 가지고 떠들겠습니까? 마음이 좀 그렇네요.
근본이 뭐냐고요? “겸손과 보살핌” 이요. 왜냐고요? “겸손은 언제나 아름다운 것이며 노약자, 배우지 못해 불이익을 당하는 자등을 공존공영하는 사회라면 보살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말이오.”
-예. 옳으신 말씀입니다. 100% 공감하고요. 여기에 그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먼저 그대가 “나는 시인이며 소설가고 수필가이며 지금도 글의 청탁 (내 생각으로는 그대가 조금이라도 겸양의 미덕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청탁이 아니라 부탁이라는 표현이 덕목이 있어 보이군요)이 나에게 수시로 들어오고 있어 좀 피곤하지만 내가 대학원출신이고 목사며 또 대학을 장학생으로 공부했소” 하고 말하면서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다고 해보시오. 정말 생각이 조금이라도 깊은 사람 그 누가 그대를 “예, 목사님, 대단하십니다. 대학원까지 마치시고 더군다나 문학 방면에 상당히 조예가 깊으시군요” 하면서 선뜻 그대와 일치점을 이룰 자가 있는 것일까요? 자중하시오! 겸손하시오! 목사란 title이 누가 되지 않도록 위선을 배격하시오!
-청탁이라는 표현이 부탁이란 표현보다 더 높은 표현이란 생각은 해보지 않았습니다. “원고청탁”이라는 흔한 표현을 차용한 것 뿐입니다. 그런 표현으로 마음이 안 좋으셨다니 조금 놀랍습니다. 그리고요. 다른 사람들 만날 때 자랑하는 소리하면서 돕는 사람도 있는지 묻고 싶네요.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랍니다. ^0^
위선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십분 공감합니다. 가슴 아프지만요. 자꾸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쓰는 제 모습을 발견하니까요.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모든 것을 행해야 하는데 사람들의 칭찬을 들으면 참 좋거든요. 그게 주목적은 아니지만 그런 마음이 있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런 면을 위선이라 보신다면 할 말이 없고 저 스스로도 벗어나고 싶어하는 부분입니다. 차차 그런 부분에서 자유할 수 있겠지요. 그때에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겠지요.
좋은 권면의 말씀이라 여기고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나아갈 방향을 가르쳐주신 것이니까요.
그대가 생각해서 만약 그대보다 내가 학력 등 모든 것이 부족하기에 시기심의 발로로 이러한 글을 올린다고 생각을 하시면 즉각 조처하시오. 그야말로 perfect한 책임을 지겠소. 반론도 얼마든지 받아들이겠소. 단 나는 지는 게임은 익숙치않기에 그대가 자신이 있으면 그렇게 하시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가만히만 있으면 꼴찌가 아니라 2등은 되니 판단을 하시오. 선택된 강요는 난 하지 않소이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기심의 발로로 이런 글 썼다는 생각은 추호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 싸움은 잘 못합니다. 무조건 제가 케이오패 당한 것으로 하시면 됩니다.
왜냐하면 그대는 자칭 목사이고 수필가며 지성인이라 옳고 그름을 어느 정도는 분간을 할 수가 있는 능력의 소유자라고 그대의 교회신자들 등으로 부터는 조금은 인정을 받고 있지 않을까 하는 가정을 하기 때문이오. 그대가 그대의 교회 신자들로부터도 배척의 대상이 된다면 그대는 목사란 title이 어쩌면 상실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비록 내가 보기에 그대는 그야말로 위선으로 점철된 생을 살고 있고 또 목적을 위해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는 수단도 okay로 변형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 인 것 같지만 말이오. “거짓은 분명히 강력한 책임이 수반된다는 것을 명심하여 나에게 역공을 취하려면 취하시오”
-위선으로 점철된 생을 살고 있다는 표현이 참 날카로운 가시처럼 여겨지는군요.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내게 위선의 요소가 많다는 것은 나 스스로 인정하기에 그냥 넘어가도록 하지요. 역공이라? 님이여. 많은 전쟁터에서 승리를 경험한 역전의 용사처럼 여겨지는군요. 그러나 저는 투쟁의 한복판에서 선혈을 뿌리는 투사 스타일이 못됩니다. 그저 자기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나누고 싶어서 끄적끄적 글을 올리는 글쟁이일 뿐입니다. 역공이라는 강한 표현에 합당한 글을 과연 쓸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이 글이 세번째의 글인데요. 아직도 못 알아듣는다면 그대 참으로 미련하오하면서 내 글의 끝을 맺구려. 제발 좀 알아듣고 당당하게 행동하시오. 사람들께 각인을 시키기 위해 다시 한번 그대의 글 하나를 여기에 첨부하오. 왜냐하면 모든 의사표현은 책임이 따르니 말이오. 안희환씨, 자칭 잘난 안목사, 안수필가, 안시인, 그리고 안배운자씨. 글을 시/ 소설/수필/교회동인지등에 올리셔서 마음껏 활동하시죠? 녜! 왜 거기서는 수준 이하라고 잘 안 받아 주나요? 그렇다고 여기서 구정물을 일으키지는 마시고요. 여기 그대보다 이러한 글을 못쓰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자는 목사, 시인, 수필가, 소설가, 그리고 지성인이 아니고 궤변의 달인 또는 어둠의 선택을 강요하는 유치한 마법사라고 단언을 할 수가 있지 않을까요? 여기서 님이 발표하는 글들은 어딘가 노란 술수가 보이는 군요. 도대체 토론장에서 요구하는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란 주제하고 전혀 무관한 그대의 자칭 잘난 몸부림-대학원/대학/소설가-등하고는 어떤 연관이 있나요? (노파심에서 일러두는데요. 만약 그대가 내가 쓴 글 또는 부분을 나의 허락없이 어떤 동인지에 발표를 한다거나 그리고 나의 이름을 이유없이 더럽힌다거나 한다면 그에 대한 모든 책임을 강력하게 그대에게 묻겠습니다. 즉, 아무리 세상이 어둡다고 하더라도 정의는 살아있겠죠? 그리고 나는 이러한 불협화음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 그대의 글의 문구 하나하나를 전부 다 읽어보고 여기에 등재를 했거든요 즉, "그대의 글을 그대의 허락 없이 어디에도 등재를 할 수가 없다" 는 말이 하나도 없었고 또 차후 어떤 논쟁 (혹 있을 지도 모르는 저작권 논쟁) 에 증거로 제출키위해 대비용으로 그대의 글을 copy해 놓았음을 알려드립니다.)
-인용하신 글. 일부분이네요. 이왕이면 마저다 인용했더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래야 의미가 더 명확해지니까요. 차후 논쟁을 위해 카피까지 해놓으셨다는 말씀. 웃음을 유발하는군요(비웃음은 아니니 노여워 마시길). 그럴 필요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원치 않는다면 저는 기꺼이 이곳을 떠날테니까요. 자리 지키려고 싸울 만큼 제가 어떤 대의명분이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다만 제 글을 좋게 봐주셔서 제가 감사를 표했던 몇몇 분들이 신경쓰이는군요. 이 글 이후에 여러분들의 반응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다수의 반응이 부정적인 것이라면 정식으로 사과를 드리고 물러가겠습니다.
관심을 가져주시고 긴 글 써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아마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곳의 토론에 참여하시는 분이라 여깁니다. 그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이번 감기 무척 독하던데 건강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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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 토론방에서 운영자는 내 글을 방 주제에 맞지 않다고 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랫동안 보여지는 메인에 내 글을 세 개나 올려놔준 상황이기에 억울한 마음도 있고 속상하기도 했지만 훌륭한 면모를 갖춘 분이라 여겼기에 최선을 다해 마음을 누르며 나 자신을 변명한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하우형님(가명)은 그런 내 마음을 읽어주었습니다.
후에 하우형님은 따듯한 마음으로 대해주셨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였습니다. 나는 다음과 같이 감사를 표시하였습니다.
윤희복님이 써주신 댓글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르실 겁니다. 마음을 짓누르던 짐 하나가 벗겨진 기분입니다. 참으로 솔직하시고 겸손하신 분이시군요. 앙금을 남기지 않고 훌훌 털어주시니 고마울 뿐입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0^
며칠 후 [사람은 사람답게 개는 개답게](글 전문은 옆에 있는 부분을 클릭하면 나옵니다. 블러그 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blogId=29204&logId=769468)라는 글을 올렸고 하우형님은 다음과 같이 댓글을 달아주었습니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세상살이가 아무리 고달퍼도 어떠한 vision이 있다면 얼마든지 헤쳐나갈 수가 있는 것과 무조건 “잘났어 정말”을 외치는 것과는 별개인데요. 참으로 아둔의 무리들이 설치고 다니는 아름다운 내 나라의 현실이 서글프군요. 따라서 그렇습니다! 나, 너, 그리고 우리 모두가 최상위의 포유동물로서 개같은 삶을 살면 되겠습니까? 아주 시의 적절한 님의 타이틀에 무한의 박수를 먼저 보내드립니다. 목사님 겨울 감기 조심하시고 언젠가는 님과 한번 직접적인 대면을 하여 서로의 이상향이 무엇이고 가치관은 어느 정도인지를 가지고 소주를 한잔 같이 나눌 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분, 존경할만한 분을 벗(?)으로 두게 되어 기쁜 마음입니다. 악풀을 다는 이들 모두가 상식 이하의 사람인 것은 아니며 그중에는 정말 귀한 분들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토론에 임한다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고, 무엇보다도 정말 소중한 재산인 좋은 사람들과의 교제가 가능해진다는 것을 되새기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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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세히 읽으면 얻을 것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혹시 건성으로 읽으신 분은 다시 읽어주세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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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 ^0^/
목표가 있는 삶 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blogId=29204&logId=77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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