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 자작시

22편의 14행시/ 안희환

안희환2 2005. 11. 9. 07:49

22편의 14행시/ 안희환

언어를 가지고 노는(?) 일은 참 재미가 있다. 그 재미 속에는 뼈저린 글쓰기가 포함되지만...어릴적부터 내성적인 성격의 사람이라 외부의 활동보다는 글을 쓰며 보낸 시간이 많았는데 그 버릇은 지금도 여전한 것 같다.

잘 쓰고 못 쓰고를 따지지 않고 그저 쓰는 것 자체가 참 좋다. 장난 삼아 삼행시(?)를 써보기도 했다. 상당히 많은 사람의 이름을 가지고...이제 그것을 확장하여 14행시를 써본다. 가나다라마마사아자차카타파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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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로 쓴 14행시


1. 

가 버리고 오지 않걸랑

나를 잊었다 여기시고

다신 찾지 말아주세요

라일락 향기의 추억을

마음에 남겨두지 마시고

바보같은 세월이었다 하시며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해주세요

아직 그럴 수 없다시지만

자학하시는 건 볼 수 없어요

차라리 내게 손가락질하며

카랑카랑하게 욕을 하세요.

타인들은 신경쓰지 않아도

파란 하늘 같은 당신

하늘이었습니다, 내게만은


2.

가고 싶어 간 것이 아니다.

나가기 싫었던 공간을 떠난 건

다만 널 보기 원해서였을 뿐.

라듐의 방사선에 쏘인 듯

마구 허물어져가는 영혼

바라보던 사람들을 나를 떠밀었다.

사랑하면 찾아나서라고 소리쳤다.

아주 먼 옛 기억처럼 흐려지는

자신감을 겨우 끄집어 올려

차곡차곡 쌓아올려도 낮기만하다.

카우보이처럼 말을 탈 수 없는 나는

타박타박 온 땅을 돌고 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먼 길

하룻밤의 호흡만 남아 있을 뿐이다.


3.

가지 치는 아픔을 몰랐었다.

나의 분신을 잘라야 하는 고통을...

다른 이가 아닌 나의 손으로

라벨을 붙여 쳐야할 가지를 고르는 슬픔.

마치 자식을 버리는 어미처럼

바다에 유골을 뿌리는 아비처럼

사무치는 느낌은 감당하기 어렵다.

아~ 소리가 절로 나는 이 밤

자려해도 잘 수 없는 눈꺼플에

차가운 이슬이 맺힌다.

카나리아처럼 우는 소리는

타래처럼 얽혀서 새벽을 잇는다.

파경에 도달한 감정은 금이 가고

하루살이의 수명처럼 약해진다.


4.

가는 길 열고 오는 길 막으니

나에게 요구함은 떠남인가요

다 용납하시던 님의 따스함은

라운지에서 나누던 정겨운 이야기는

마음이 실리지 않은 장난이었나요?

바라만보아도 행복하다시더니

사랑한다 말함이 진부하지 않다시더니

아침이 오기도 전 맘이 변하셨나요?

자유로우라 하시지만 그건 형벌입니다.

차라리 님에게 매인 구속이

카누를 젓는 자유라는 것을

타관살이로 생을 끝낸다 해도

파닥거리며 님을 따르고 싶다는 것을

하소연 하고 있습니다, 님이여


5.

가다듬은 고운 목소리로

나긋나긋한 고운 몸짓으로

다감한 성품을 드러내었던 그대

라일락 향기를 담은 미소를 띈 채

마력을 띈 눈길로 날 향하면

바꾸어지는 속 깊은 곳의 분노

사르르 녹아지는 옛 상처의 추억들

아무런 고통도 남아 있지 않다.

자각할 그 어떤 설움도 없다.

차갑게 얼어붙은 심장은 뛰고

카오스의 혼돈은 줄을 서며

타락의 뒷걸음질은 멈춰선다.

파락호같은 방탕아에게 그대는

하나님이 내리신 선물이었다.


6.

가리개로 막아버린 눈동자

나무 뒤에 숨어버린 그대 향기

다짐하고 찾아도 볼 수 없는 그대는

라인조차 보이질 않게 숨어버렸다.

마법의 지팡이라도 가진듯이

바람처럼 어디론가 가버린 후

사모에 병이 난 사람을 찾아오지 않는다.

아예 먼 나라로 가신건가?...

자신도 가누지 못하는 몸으로

차일피일 미룰 수 없는 애절함에

카네이션의 붉은 빛깔로

타고 떠나는 여행의 피눈물

파란 하늘을 가린 먹구름이 보인다.

하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7.

가련하게 보이는 그대의 가냘픈 몸

나 감싸주고 싶어 울었습니다.

다 주어도 또 주고 싶은 맘

라이벌과 경쟁이라도 하는 듯이

마음껏 주어도 늘 서운했습니다.

바라보는 것이 행복임을 알게 한

사랑하는 이여 고맙습니다.

아련히 다가왔던 사랑의 의미

자연히 깨닫게 해 준 그대

차라리 그대를 몰랐으면 하는 것은

카드에 목을 맨 도박중독자처럼

타는 듯 그대가 목마른 탓입니다.

파나마 운하의 물을 다 마셔도

하짓날처럼 갈증만 일어납니다.


8.

가시라 한 것은 진심이 아닙니다.

나라를 통째로 소유한다한들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세상살이

라단조의 곡조처럼 슬픈 노래가

마음대로 연주되고 있습니다.

바로 그대가 곁에서 멀어지면서...

사치한 감정놀음이라 하실지라도

아무도 이해 못할 나의 사랑

자신도 주체하지 못함을 아시는지요?

차를 몰아 질주하는 거친 들판

카운슬링으로도 진정되지 않는 영혼

타오르다 꺼진 불씨는 싫습니다.

파괴를 위한 시작이었다 하시어도

하나뿐인 사랑은 그대일 것입니다.


9.

가랑이 찢어지는 뱁새의 걸음

나무라지 마시라 그 아픈 핸디캡

다그침은 상처의 깊이를 더할 뿐

라놀린으로 만든 값진 연고로도

마그마 흐른 자국을 없애지 못한다.

바보들의 합창인들 어떠한가?

사람살이가 다 그렇고 그런 거지

아무 흠도 없는 사람인 듯이

자신을 포장함이 더 보기 싫다.

차도를 가로지르는 뱁새의 달음질

카오디오엔 운명이 흘러나온다.

타념없이 달려도 위험한 짧은 다리

파국을 위한 출발이었는도 모르지만

하기야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라놀린/ 화장품, 연고의 재료


10.

가루가 되어버린 석고상

나를 향한 미움 때문이었을까?

다른 분노가 만든 과격함이었나?

라임 오렌지 나무 꼭대기 위에서

마음 먹고 내려던진듯이

바스라진 아픔이 밀려들어온다.

사랑의 형상은 그렇게 깨어지고

아지랭이같은 그리움만 남아

자신을 잊어버린 꿈을 꾼다.

차 밖엔 비가 내리고

카니발이 쓸쓸하게 끝이나면

타다만 장작엔 슬픔에 벤다.

파랗게 멍이든 심장엔

하염없이 찬 바람이 들어온다.


11.

가련하게 꺾여버린 장미

나는 그 허리를 부러뜨리지 않았다.

다만 바라보는 것만으로 기뻐했는데...

라면의 가는 줄기가 목에 걸린다.

마음 한 구석이 무너져 내린다.

바라보는 기쁨마저 앗아가버린

사람아, 너는 사랑을 알고 있는가?

아직도 들썩이는 어깨의 흐느낌

자라목처럼 움쯔러들은 모가지

차마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했음에

카오스에 빠져 허우적대는 영혼

타오르는 불길 앞에서도

파르르 오한에 떠는 육체

하늘은 무심하게 떠 있다.


12. 가면을 벗어던지고파

나의 나됨을 찾아내고파

다 벗겨내려 몸부림치는데

라라라 들려오는 흥겨운 가락

마음엔 분노가 스물거린다.

바보처럼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무지함에 치가 떨리나.

아~그것은 이기심의 발로

자기에게만 집착하는 어린아이처럼

차분하게 생각지도 못한 아집

카메라 앞의 굳어진 표정으로

타령만 일삼았다.

파뿌리처럼 하얘진 얼굴로

하하하 억지 웃음 웃는다.


13.

가려해도 갈 수 없는 길

나무들은 빽빽이 막아서 있고

다른 형상을 띈 사람들이

라마단의 승려들처럼 가득하다.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신기루

바위같은 심장도 답답해진다.

사라지지 않는 이 모든 것들은

아무도 설명할 수 없는 현상

자유를 위한 싸움은 치열해

차력사의 힘을 필요로 한다.

카멜레온처럼 변색하든지

타짜의 마지막 승부를 내든지

파국은 면해야만 하는데...

하염없이 눈물만 흘러내린다.


14. 

가늘게 뜬 눈가에 비치는

나무 한 그루, 창공으로 뻗은

다양한 가지, 그 아래 누워

라디오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마치 꿈이라도 꾸고 있는듯이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듯이

사막 한 복판을 걸어가는듯이

아스라한 꿈들이 지나간다.

자아는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차가운 느낌에 눈을 뜨면

카르멘의 음악 소리 들리고

타오르는 그리움의 열정들

파릇한 나무 잎사귀 사이에 맺히고

하루는 그렇게 저물어간다.


15. 

가로수엔 그림자가 없다.

나무 위에 올라가기 지친 해는

다락방에 누워 일어나질 않는다.

라일례라 불리우던 소녀가 간 후

마구잡이로 땅에 부딪히는 빗줄기

바람에 밀려 옆구리를 친다.

사랑이 다 그렇지 하면서도

아른거리며 나타나는 환영

자막이 뜨는 영화인듯하다.

차르르 돌아가는 아름다운 날들

카인의 심정으로 통곡하다가

타지 못해 응어리진 영혼인듯

파르르 떨고 또 떨더니

하릴없이 얼굴만 새까마진다.


16.

가랑비는 굵게 울지 않는다.

나루터에서 흘러간 배 한척

다리는 허리가 끊겨 아파하고

라까지 올라간 작별 노래

마음을 꿰뚫는 화살이 된다.

바람개비는 젖은 채 돌아가고

사루비아가 강가에 떨어지면

아름다웠던 시절을 꿈꾼다.

자랑스럽게 부르던 그대의 이름

차도르를 덮어쓴 채 사라졌는데...

카르맨의 쓸쓸한 곡조가 낮게 깔리면

타볼 생각도 못한 님 실은 배

파리해진 낯빛으로 바라본다.

하루만이라도 볼 수는 없는건가?


17. 

가물어 갈라져버린 땅바닥

나오다가 말라죽은 새싹들

다람쥐는 물 찾아 헐떡이고

라파엘은 맥이 풀려 손을 흘린다.

마귀는 지루한 잠에서 깨어

바로왕처럼 거만하게 웃다가

사막을 늘려간다.

아름드리 가로수가 견디다 못해

자리에 가만히 누워버리면

차들이 지나다니던 거리는 비고

케메라의 후레쉬는 터지지 않으며

타원으로 늘어선 사람들 속에

하나뿐인 그대만 보이지 않는다.


18.

가지를 천지사방에 펼치듯이

나 모든 감각을 온땅 가득 퍼뜨리고

다만 그대를 찾고자 헤매인다.

라이오 방송에 띄운 사연

마음 졸이며 귀기울이는 사람들

바라는 그대 소식은 아직도 없다.

사모함에 바라보는 사람을

아예 소경이 되게 한 태양아

자신의 눈부신 아름다움을

차라리 거두어 가려무나

카리브 해변을 거니는 연인들을

타르에 더러워진 눈길로 보며

파릇하던 과거의 꿈을 되새긴다.

하하하 웃는 웃음이 공허하다.


19.

가리워도 가리워도 보이는 건

나는 새의 몸짓만이 아니다.

다른 세상에서의 찬란함과

라이언킹의 용기를 갖춘 채

마른 땅의 단비처럼 다가온다.

바위를 사방에 쌓아놓아도

사하라 사막 한 복판에 서 있어도

아주 선명한 색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자유를 구속하여 손발을 묶어도

차가운 동굴 속에 가두어두어도

카멜레온처럼 색깔을 바꾸어도

타고난 광채는 땅 위에 하려하다.

파랑새는 그대의 다른 이름

하지만 내게선 너무 멀다.


20. 

가람이란 이름을 가진 소녀

나는 뫼라는 별명을 가졌었지.

다정하게 어우러진 강과 산

라르고의 음악처럼 잔잔했는데

마치 어느날 폭풍이 몰아치듯

바닥을 차고 오르던 강물

사슴을 놀라게 하며 요동치다가

아주 먼 나라로 가버렸지.

자신의 가람을 잃은 뫼는

차갑게 패어버린 강줄기를 보며

커운트를 했지, 한달 두달...

타닥거리다 일어난 거대한 산불

파란 나무를 잃은 강 잃은 산

하루 종일 타들어가고 있지.


21.

가슴은 머리보다 예민하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섬뜩한 느낌

다 이해하진 못해도 알 수가 있었다.

라라라 흥겹게 웅얼거리는 노래

마지막까지 숨기려하는 눈속임

바로 가로지르는 눈길로 꿰뚫어

사모하는 이의 슬픔을 알아챈다.

아차 하는 사이에 빼앗겨버린

자아가 함몰하는 격정의 사랑

차용증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

카드 결제도 의미가 없다.

타고난 상술로 그대를 샀다.

파는 일은 결코 생기지 않는다...고

하루라도 말할 수 있고픈데...


22. 

가장 허무한 정상에 서서

나름대로 이룬 성공들을 세다가

다만 부질없는 욕망이었음을 안다.

라면을 끓이면서도 행복했던 날들

마음을 채우고 있던 충족감이

바람빠진 풍선처럼 늘어졌다.

사람살이가 재미없어졌다.

아예 돌아가고픈 과거의 시간

자유를 담보로 얻었던 성취가

차려놓은 음식 앞의 구역질같다니...

카메라에서 터지는 후레쉬

타인들의 박수갈채에 아파오는 고막

파리날리던 시저마저 그립다.

하마처럼 입을 벌려 하품한다.

 

사진은 유명조님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