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 자작시

거미의 항변/ 안희환 시인

안희환2 2016. 10. 22. 16:58

거미의 항변/ 안희환 시인

 

널 묶으려 한 게 아냐.

내가 살기 위해서였을 뿐.

집 없이 살 순 없잖아.

먹지 않고 살 순 없잖아.

집을 지은 것뿐이고

먹고 살려할 것뿐인데

네가 걸려들었을 뿐이야.

 

새벽이 올 때 맺힌 이슬

예쁘다는 걸 나도 알아.

그렇지만 난 난초가 아닌 걸.

이슬만 먹고 살 순 없어.

이슬 한 모금 마셨다가

엄청 고생한 걸 넌 모를 걸.

어쩔 수 없는 게 있어.

 

널 묶으려 한 게 아냐.

애써 그물을 짠 후

던진 게 아니란 걸 알잖아.

거미줄을 짜서 늘어놓고

앉아서 쉬고 있었는데

네가 달려와 걸려버린 거지.

내게 책임전가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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