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문제인 걸까?/ 안희환
그림과 조각이라면 너무 좋아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내게 다급한 소식이 들렸다. 예술의 전당에서 서울국제조각페스타가 열리는데 13일 일요일이 마지막 날이라는 것이다. 그 소식을 토요일 밤에 접했으니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기적으로 예술의 전당이나 국립중앙박물관이나 서울 시립미술관 사이트에 들어가 보는데 최근에 바쁘다고 들어가 보지 못해서 생긴 현상이다.
사실 목회자로서 주일은 무척 정신없는 날이다. 1, 2부 예배 설교. 오후 예배 설교. 기관장 회의. 당회. 그리고 아기를 낳은 김상혁집사 부부 심방. 이것이 오늘의 일과였다. 틈을 낼 수 있는 시간은 오전 예배와 오후 예배 사이의 시간뿐이었다. 1부 예배 후 김원준 전도사에게 2부 예배 끝나자마자 교회 1층 바깥으로 나와 있으라고 했다.
2부 예배 후 성도들과 인사를 나눈 후 나와 김전도사는 점심도 먹지 못한 채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따라나선 김전도사는 어안이 벙벙한 모양이었다. 예술작품을 워낙 좋아하기에 일부러 데리고 나왔는데 가는 도중에 왜 나오라고 했는지를 이야기해 주었다.
드디어 예술의 전당에 도착했다. 작품들은 기대 이상이었다. 나도 작품들 구경하느라 난리였지만 김전도사 역시 좋아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사실 시간 여유가 넉넉하지는 못한 상황이었다. 내 경우 적어도 예배 시작 30분 전에는 도착해서 기도 준비를 하는 것이 습관이기 때문에 2시까지는 교회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작품들을 구경하는 중에 내가 사고를 치기도 했다. 작품들을 사진 찍어도 된다기에 열심히 찍으며 다니다가 한 작가가 모여든 사람들에게 작품 설명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그 장면을 찍으려고 뒤로 물러가다가 그만 작품 하나를 건드리고 만 것이다. 작품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올려놓은 것이었기에 넘어지고 말았고 그와 함께 그 옆에 있던 작품들도 같이 넘어지면서 바닥으로 떨어지고 만 것이다.
우르르 무너지는 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다 내게로 향했다. 얼마나 창피했는지 모른다. 설명을 하던 작가는 무너진 작품 쪽으로 향했고 하나씩 올려놓기 시작했다. 문제는 넘어진 작품 중에 한 개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깨져버렸다는 것이다. 보상해달라고 하면 보상하리라 생각하고 있는데 작가가 봐주었다. 나무라지도 않았다. 참 고마웠다. 내 평생 이런 일은 처음 겪었다.
차분하게 감상하면서 모든 작품을 둘러봐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워하며 예술의 전당을 떠났다. 김전도사는 그래도 이게 어디냐며 감사해했다. 차를 타고 교회로 향하면서 관대하게 봐준 작가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큰 빚을 졌다는 생각을 했다. 인사를 나누고 명함도 받고 후에 연락도 했어야 했는데 창피한 마음에 정신없어서 그냥 빠져나온 것이 마음에 걸렸다.
다행스럽게 2시가 조금 지난 시점에 교회에 도착했다. 강대상 뒤에 앉아서 기도하다가 2시 30분에 시작되는 오후예배 때 말씀을 전했다. 사실 오늘 내가 한 행동이 잘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오늘 못 보면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엉뚱한 짓을 벌이고 말았다. 덕분에 더 피곤해진 몸이지만 사진 찍어온 조각품들을 들여다보니 피곤이 말끔하게 씻기는 것 같다. 내가 문제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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