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정죄가 아닌 새삶을 주신다 요8:1-11(2012. 10. 7. 주일오전예배 설교)
1.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누구를 만나느냐가 인생을 좌우함.
좋은 만남은 인생의 복.
어릴 때 나를 지도해줄 사람을 찾았음. 사실 제대로 만나지 못함. 성경 속의 인물과 책 속의 인물들을 끝없이 만남. 감사하게도 이제는 사람들을 직접 만남.
그런데 좋은 만남들 중 최고의 만남은 역시 하나님과의 만남.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고 달라짐.
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창28장.
예수님을 만나도 새로워진 사람들 이야기는 너무나도 많음. 나 역시 마찬가지임.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이나 한계를 지적하고 비난하는 분이 아니고 받아주시고 변화시키는 분.
오늘 설교 제목. 예수님은 정죄가 아닌 새삶을 주신다
1. 허물이 없는 인생은 없다.
1)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
부끄러운 일.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음.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인 시대임.
이 여인이 잘한 것은 아님. 분명히 율법을 어긴 것이기 때문임.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는 여인은 부끄러움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을 것임.
2) 사람은 누구에게나 허물이 있다.
허물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다른 사람들 앞에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없는 일들이 있을 수 있다.
왜 사람에게는 이런 허물이 있는가? 죄 때문임.
죄를 짓기에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에 죄를 짓는 것임. 포도나무가 포도 열매를 맺듯 사과나무가 사과 열매를 맺듯 죄인 된 사람은 죄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허물은 죄의 열매 중 하나이다.
만약에 자신에게 허물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이라면? 거짓말쟁이이거나 위선자임.
3) 위대한 인물들에게도 허물이 있었다.
하나님이 사용하신 위대한 사람들. 그들 역시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됨. 허물을 보여주고 있음.
-노아
20.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2.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23.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26.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창9장.
-바울
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행15장.
-이삭
1.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이르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2. 이삭이 이르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3. 그런즉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4.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창27장.
하나님의 말씀을 잊은 것임.
19.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20. 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 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21.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22.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창25장.
위대한 인물들도 허물이 많을진대 보통 사람들은 오죽할까?
나와 여러분 모두 마찬가지로 허물이 있는 사람들.
가정에서 실수할 때가 있음.
직장이나 학교에서 잘못된 말과 행동을 할 때가 있음.
원치 않았지만 문제가 발생할 때도 있음.
2. 세상에는 정죄가 가득하다.
1.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1) 여인을 사람들 앞에 세운 사람들.
여인이 얼마나 창피할까 하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음.
여인이 얼마나 두려울까 하는 것에 무관심함.
그들의 관심은 오직 자기들의 목적을 이루는 것.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넣는 것.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한 여인의 허물을 정죄하면서 망신을 주는 것임.
이들이 이용하는 것. 율법.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좋은 것도 사용하는 사람이 악하게 사용할 수 있음.
하나님은 율법을 주실 때 스스로를 돌아보라고 주신 것인데 그것으로 남을 정죄하는데 사용하고 있음.
2) 타인에 대해 무관심한 세상
누군가가 아파해도 함께 아파하지 않음.
누군가가 기뻐해도 함께 기뻐하지 않음.
말세의 징조 중 하나. 무정하며. 정이 메마른 시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끈한 유대관계가 많이 깨짐. 그냥 형식적이고 가벼운 관계를 편하게 생각하는 풍조.
이웃이라는 개념이 무너짐. 근처에 살아도 누가 누군지를 잘 모름.
아파트도 마찬가지임. 같은 동에 살아도 서로가 잘 모름. 알려고 하지도 않음.
무관심은 사랑의 반대.
말세의 징조 중 하나로 언급된 것.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는 것.
3) 타인을 정죄하는 세상
무관심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함.
탈북자들 대상으로 한 사기가 있다는 말에 가슴이 아픔. 탈북자들은 통일의 바로미터임. 그들을 포용하지 못하고 통일되어도 하나를 이룰 수 없음.
효원이가 전해준 말. 외국인 근로자가 하는 말. “한국인 나빠요”
불법체류자들이 많음. 불법체류자라는 것 자체가 허물. 그것을 이용해서 급여를 주지 않는 사람들. 신고할 수도 없으니까. 낯선 땅에서 고생하면서 일하는 것도 힘든데 더 힘들게 하는 사람들.
요즘 사람들을 보면 다 날이 서 있는 것 같음. 누군가가 허물을 드러내기를 기다리는 것 같음. 드러나면 난리가 남.
대선 앞둔 시점. 대선 후보의 허물을 캐느라 난리. 좋은 정책을 내는 것으로 승부하지 않음.
국민들도 매한가지. 욕하느라 난리임. 누가 더 좋은 정책을 내놓느냐에 관심 갖고 그것을 홍보하는 게 아니라 드러난 허물을 가지고 난리가 벌어짐. 나라가 조각날 것 같음. 심지어 명절에 정치 문제로 다툼이 벌어진다는 뉴스. 자신의 정치 성향보다 가족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편협함.
다를 수 있음. 그러나 그것으로 틀렸다고 상대방을 몰아세울 필요는 없음.
사랑이 식어진 세상의 영향을 받은 교회의 모습. 정죄의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음.
공동체 내의 누군가에 대해 판단하는 마음. 정죄하는 마음. 공격적인 태도.
성경은 말씀함.
11.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12.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약4장.
교회를 보면서 감사한 것. 서로를 비판하기보다 서로를 세워주려는 모습이 많이 보임. 누군가가 힘들어하면 왜 그 모양이냐고 하는 사람보다 간절히 기도해주는 사람이 많음.
내 경우도 마찬가지임. 그러게 왜 무리하고 그러냐고 나무라는 사람보다는 마음 써 주는 사람들이 더 많음. 덕분에 몸은 약한데 마음은 행복함.
주보에 올린 글.
이렇게 기도해주는 사람들이 많다니
내가 뇌종양에 걸린 후 감사하는 것 중 하나는 기도해주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기도가 얼마나 큰 능력이요 축복인지 다 알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역사하시는 통로가 바로 기도이기 때문이다.
기도해주는 분들을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1. 내 아내이다. 의사를 만나 뇌종양이라고 확증을 받기까지 아내는 밤늦은 시간에 수 시간씩 매달려 기도했다. 지금도 시간 내서 집중적으로 기도하고 있다.
2. 사랑하는 예수비전교회 성도들이다. 매일 저녁 8시가 되면 함께 모여 기도를 한다. 릴레이 금식기도에 참여하는 분들도 있다. 참 사랑을 많이 받는 안희환 목사이다.
3. 장경동 목사님을 중심으로 한 세선회와 그에 속한 교회들이 기도해주고 있다. 세선회 총무이신 김호민 목사님께서 이야기해주셨다.
4. 에스더 기도운동 본부에서 기도해주고 있다. 에스더와는 참 많은 것을 함께 해왔었다. 기도와 행동이 다 살아있는 귀한 모임이다.
5. 서울 기독교청년 연합에서 기도해주고 있다. 역시 나와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모임이다. 앞으로 한국을 위한 귀한 일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6. 한동대학교 대구 학부모모임에서 기도해주고 있다고 한다. 이전에 대구쪽에 강의를 갔던 덕분에 연결된 것이다.
7. 사랑의 교회 중보기도 모임에서 기도해주고 있다. 국민일보의 백상현 기자님이 인터뷰하러 왔다가 사랑의 교회에 요청한 덕분이다.
8. 윤요셉 목사님을 중심으로 30분이 넘는 목사님들이 매일 작정된 시간에 기도를 해주고 계신다. 교단이 다르고 연배가 다르지만 귀한 동역자이신 윤목사님이시다.
9. 기도해주는 교회들이 있다. 함께 모여 예배드릴 때 나를 위해 합심해서 기도해주는 교회들이 여럿이라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10. 개인적으로 기도해주는 분들이 많이 있다.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마음을 쏟아 기도해주는 분들을 생각하면 감격스럽다.
11. 내가 있는 것까지 찾아와서 기도해주고 가시는 분들이 있다. 먼 곳에서도 오신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다짐하게 되는 것은 기필코 그 은혜를 갚아야겠다는 것이다. 건강을 회복하고 이전처럼 활동할 수 있게 된다면 지금의 나처럼 약해진 이들을 찾아가 격려하고 위로하는 일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에 더 집중해야겠다. 그것이 사랑이요 관심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됐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모자란 사람을 가르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3. 예수님은 정죄가 아닌 새 삶을 주신다.
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1) 땅에 글을 쓰신 예수님.
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무엇을 쓰셨는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학자들이 있음. 인용할 필요가 없음. 성경에 없는 이야기를 일부러 할 필요가 없는 것임.
분명한 것은 흥분한 사람들의 시선이 예수님께 향했을 것이라는 것. 궁금해했을 것이라는 것. 그 사이에 차분해졌을 것이라는 것.
사람들이 흥분 상태이면 제대로 된 이야기도 잘 안 들어감.
이런 걸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전달하시는 능력이 탁월하심.
2)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
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이것은 대단한 말씀.
죄없는 자는 없음. 돌로 치라고 하시지만 치라는 의미가 아님.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나에게 큰 힘이 됨.
전병욱 목사에 대한 난도질이 시작되었을 때 글을 썼음.
전병욱 목사의 개척에 너무 요란 떠는 사람들에게
전병욱 목사가 교회 개척을 했다. 개척한 교회의 이름은 홍대새교회이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그 반응이 크게 일어났다. 가장 활발한 반응은 소위 개혁을 표방하는 단체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이다. 성명서를 내고 기사화하면서 전병욱목사와 홍대새교회를 비판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그 와중에서 전병욱목사가 담임으로 있던 삼일교회에서도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교인들이 홍대새교회로 빠져나갈 것을 염려한 대응으로 보인다.
온라인 상에서의 활동 역시 상당하다. 네이버에는 [전병욱 목사 진실을 공개합니다]라는 카페가 만들어졌는데 회원이 9900여명이나 된다. 그 카페 안에는 전병욱 목사를 공격하는 글들이 가득 차 있으며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는지 한국 교회 목회자들을 공격하는 글들 역시 상당히 올라가고 있다. 자칭 교회 개혁의 기수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어 그 동안 갈고 닦은 개혁의 칼을 휘두르는 재미에 쏙 빠져버린 것이다.
마구잡이로 공격을 칼을 휘두르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 한국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이냐고 말이다. 또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그렇게 타인을 향해 정죄의 돌을 과감하게 집어던질 만큼 자신들의 삶은 거룩하냐고 말이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다면 거침없이 돌을 집어던질 사람들이 많을 것만 같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돌려 치려했던 사람들은 그래도 순수했던 것일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은 후 돌을 버리고 도망갔으니 말이다.
죄를 대충 덮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개혁을 하지 말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개혁은 자신의 가슴을 먼저 찢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며 타인의 죄를 지적할 때조차도 긍휼과 사랑을 바탕으로 해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공격적인 대도와 말 속에서는 사랑과 긍휼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저 신이 나서 개혁이라는 이름 하에 돌팔매질 하는 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전병욱 목사와 한국교회 목사들을 향해 서늘한 한을 품고 있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전병욱 목사를 향해 회개의 흔적도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는데 그들은 무엇을 근거로 상대방의 속을 다 읽고 있다고 말하는 건지 그 점도 궁금하다. 내 경우 전병욱 목사가 너무 일찍 목회 현장으로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기에 불편한 마음이 있다. 한국 교회 전체를 생각해서라도 조금 더 자숙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았겠다 는 생각도 한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전병욱 목사가 하나님 앞에서 양심껏 행동해야할 문제이지 타인들이 정죄의 자격증을 얻은 양 지속적으로 떠들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병욱 목사를 따라 홍대새교회로 모여든 사람들을 향해서도 비난의 소리가 높은데 자중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다른 이들을 향해 무지하다느니 소경이라느니 분별력이 없다느니 하는 것을 함부로 말할 만큼 완전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면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의견도 존중해주자. 그들에게 상처 입히는 것이 한국 교회의 개혁을 위한 필수항목은 아니지 않는가?
이 글 이후에 나를 공격하는 사람들. 자기 편 안 들면 다 적군임.
전병욱 목사 관련 글을 쓰고 난 후
전병욱 목사의 개척으로 인해 많은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전목사 스스로의 잘못이 컸으니 비판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현 흐름에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판단 하에 글을 썼었다. [전병욱 목사의 개척에 너무 요란 떠는 사람들에게]라는 제목의 글이다. 왜 “너무”라는 표현을 썼을까? 정도를 넘어서는 모습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글을 쓴 후 반응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 반응 역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명예훼손의 글을 서슴없이 올리고 있다. 개혁이라는 명분하에 범죄 행위도 기꺼이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아래는 다함이라는 분의 글이다.
안희환목사는 예수비전교회 목사이고 40대 초반(43세?)이며 한국인터넷선교네트워크라는 괴단체의 대표?이고 글을 부지런히 쓰며 온갖 궂은 일을 마다않는 행동대원 스타일의 사람이며 안티대응을 소명으로 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독교관련 글에 달려들어 온갖 글을 쏟아내는 ‘근본주의 인터넷 잡객’이며 어려운 형편에 신문배달을 하던 중학생 시절 사고를 당해 왼팔을 잃은 아픔이 있으며 매우 집요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합니다.
한기총 정보통신위원이라고 하네요. 한기총 한기총 .... 헤체되어야 할. ‘밝은인터넷세상만들기 운동' ‘국제인터넷선교회’ 등을 만들이 동성애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에 앞장서고, 한기총 행동대원으로 활동하는 사람입니다.
그 교회당 입당감사예배 때 한기총, 기독교사회책임, 한국교회언론회 인사 등 우파 활동가들이 대거 참여축사를 하였습니다. An목사는 Anti를 Anti하는 Anti안티인데 가장 기독교를 욕 먹이는 대형교회를 위해 충성하니 모순이군요.
위 글의 내용을 읽다보면 나에 대해 단정 짓는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1) 근본주의 인터넷 잡객. 그러면 자신들은 논객인 건가?
2) 중학교 시절의 아픔. 누가 봐도 신상털이이다.
3) 한기총 행동대원. 정말 그럴까?
4) 동성애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에 앞장. 이게 문제일까?
5) 매우 집요한 성격의 소유자. 나에 대해 그토록 잘 아나?
6) 입당예배 때 한기총, 기독교사회책임, 한국교회언론회 인사 등 우파 활동가들이 대거 참여축사. 뭐가 우파라는 걸까?
짧은 글 하나만 더 인용하려고 한다. 은혜의단비라는 분이 쓴 글이다.
안희환이란 이름은 제가 다음이나 네이버에서 자주봤던 이름입니다. 주로 토론장에 상주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아주 격한 단어들을 써가며 나름 열심히 토론하더군요. 가끔 인터넷 들어갈 때마다 그 이름이 보이길래, '이 사람은 대체 뭘 하길래 마치 정의의 사도인냥 이러나...'했는데, 목사였군요. 쩝. ;;;; 그 열정으로 자기 양들이나 잘 돌보지... ㅉㅉㅉ
토론장에 상주한다고 하는 것은 거짓이다. 그렇게 시간이 없기 때문이며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날 보고 “아주 격한 단어들을 써가며” 토론 했다고 하는데 그런 단어들을 찾아내서 올려주었으면 좋겠다. 안티기독교인들이 나를 비방하기 위해 썼던 표현들이 다시 반복되고 있음에 웃음이 나온다. 내가 욕한 것 단 하나라도 찾아다가 올리라고 하면 하나도 올리지 못하면서 엉뚱한 비방만 하는 안티들의 말을 그대로 믿는 기독교인(?)도 있긴 하니 사람의 귀가 참 얇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냥 그 글 내용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면 된다. 그 반박 글에 대해서 내가 다시 반박 글을 쓰면 그때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신상털이가 벌어지는 것일까? 왜 한 사람을 매도하는 글을 올리는 것일까? 거기에 동조하여 집단 이지매 현상을 보이는 건 왜일까? 이런 모습들 때문에 비판적인 글을 쓴 것이다. 그 글에 대한 반응들을 보면서 내 판단이 옳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래의 글은 어떤가?
보라주라는 분의 글. 이 시대의 진정한 똥파리십니다.
금땡엄마라는 분의 댓글. ㅋㅋㅋ 웃으면 안되는데... 너무 촌천살인 멘트 여서.
이건 교회 개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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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실 것임.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
다시 몸을 굽혀 땅에 쓰심. 8.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시간을 주심.
사람들이 다 떠나감.
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그래도 양심적인 사람들. 오늘 날 자신이 의롭다고 하는 이들 같았으면 돌 들고 쳤을 것임.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돌 들고 칠 만큼 깨끗하다고 외치면서 말이다.
3) 정죄하지 않는 예수님.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이것이 예수님이 사람을 대하시는 방법이다.
이제 죄 짓지 말고 새로운 인생을 살라고 여인에게 도전하시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새롭게 만들어 쓰신 사람들을 보면 다 허물 많은 사람들이다.
성경상에 그런 사람들로 가득하지 않은가?
-세리 마태. 손가락질 당하는 인생.
-역시 세리 삭개오. 그의 집에 찾아가심.
-수가성의 죄많은 여인. 놀라운 전도자가 됨.
-막달라 마리아. 7 귀신 들렸던 여인.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가 있는 여성들.
롯. 이방 여인.
라합. 기생이었던 여인.
다말. 시아버지의 애를 낳았던 여인.
아 이제 보니 성경이 거룩한 책이 아니라 지저분한 책이구나. 그게 아님. 지저분하다고 볼 수 있는 사람들조차 새롭게 만드셔서 사용하시는 위대한 하나님에 대해 보여주는 거룩한 책암.
결론
문준경 전도사님. 결혼 하자마자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인. 세상에 소망을 잃은 여인.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새로운 인생을 얻게 됨. 호남의 섬들은 복음화율이 매우 높은데 문전도사님 때문임.
문전도사님 덕분에 믿음의 용사들이 된 사람들. 이만신 목사님. 정태기 교수님. 김준곤 목사님.
자살하려던 한 여인. 삶이 너무 고통스러움. 이성봉 목사님 부흥회에서 은혜를 받고 새로워짐. 남자 전도사님과 함께 교회를 세움.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세운 최자실 목사님 이야기.
여러분에게도 허물이 있을 것임. 드러내지 못하는 부끄러움. 열등감에 빠지게 하는 요소. 나 같은 게 하는 자격지심을 느끼게 하는 내용.
그러나 기억하라. 예수님은 여러분을 정죄하지 않으시고 새삶을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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