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 오후설교

베드로의 외식 갈라디아서2:11-14(2012.7.29 주일오후예배 설교)

안희환2 2012. 7. 29. 13:00

베드로의 외식 갈라디아서2:11-14(2012.7.29 주일오후예배 설교)

 

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최근에 쓴 글.

 

나폴레옹의 신념보다 더 위대한 신앙

 

나폴레옹이 알프스산을 넘어가려 할 때의 일이다. 척후병을 보내서 탐지를 해 봤다. 돌아온 척후병이 보고했다. "갈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가다가는 큰일 나겠습니다. 못가겠습니다"라는 말이었다. 나폴레옹같은 지도자에게 안 된다는 보고를 했다가는 혼이 날 것 같아 우회적으로 이야기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나폴레옹이 그러나라는 말 다음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는 알프스산을 넘어버렸다.

 

또 한 번은 5만 명의 군대가 다리를 건너가야 하는데 다리가 금방 내려앉게 생겼다. 참모들은 갈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자 나폴레옹이 칼을 휘두르며 위험해 보이는 다리 한복판에 섰다. 그리고 지나가라고 명령을 내렸다. 생명을 걸고 다리 가운데 서서 건너가라고 명령하는 나폴레옹의 명령에 군인들이 순종했다. 결국 5만 명이 그 다리를 건너갔다.

 

나폴레옹처럼 해야 할 일을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전진하는 사람을 신념의 사람이라고 한다. 이런 신념이 있는 자가 무언가 큰일을 해낸다. 신념을 가진 자는 사람 눈치 살피느라 해야 할 것을 못하지 않는다. 환경의 두려움 때문에 주눅 들어서 뒤로 물러가는 일도 없다. 소신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옳다고 혹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온갖 비난과 공격도 감내하면서 자기의 할 일을 해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신념의 사람보다 더 강한 사람이 있다. 신앙의 사람이다. 왜 그럴까? 신념의 근거는 자아이지만 신앙의 근거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신념이 강한 사람도 자아가 무너지면 주저앉고 만다. 근거가 무너지니 그 위에 선 사람도 무너지는 것이다. 그러나 신앙의 근거인 하나님은 무너질 일이 있으니 진짜 신앙의 사람 역시 무너뜨릴 방법이 없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악기 소리가 들리면 자신이 지은 거대한 신상에 절을 하라고 온 나라에 명령을 내렸을 때의 일이다. 워낙 무서운 왕이었기에 너나 할 것 없이 신상에게 졸을 했다. 그러나 우상에서 절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이들이 있었다. 사드락, 메삭, 아벧느고는 분노한 왕에게 말한다. “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사드락, 메삭, 아벧느고의 용기는 신념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신앙에서 나온 것이다. 신앙이 사드락, 메삭, 아벧느고로 하여금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 앞에서 자신의 소신을 지킬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고,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기에 그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데 있어 그 어떤 대가라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요즘 세상에서는 신념을 가진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고 요즘 교회에서는 신앙을 가진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상황 따라 환경 따라 갈대처럼 이리저리 휘어지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정말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위해서 손해를 보고 대가를 지불하고 희생까지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거대한 세상에 주눅 들지 않고 하나님이 진정 하나님이심을 세상에 보여주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부디 여러분은 신앙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란다.

 

베드로의 외식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눌 때에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을 반성하고 내 문제를 고쳐나가며 하나님 앞에 보다 성숙한 성도로 설 수 잇기를 축원한다.

 

 

1. 베드로의 외식

 

오늘의 본문으로 돌아오자.

 

1) 이방인들과 함께 먹던 베드로

 

오늘 본문에서 참 놀라운 모습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모습.

 

의아할 것임. 그것이 놀라운 일인가 하고.

 

그것은 유대인의 선민의식과 연관이 있음. 그리고 그것은 베드로도 예외가 아님.

 

고넬료의 사건-사도행전 10장에

 

하나님께서 경건한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청하라 명령하심.

“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3 하루는 제 구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6 저는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 하더라 7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종졸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8 이 일을 다 고하고 욥바로 보내니라”(10)

 

그리고는 고넬료의 보낸 사람이 도착할 무렵에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이심.

“9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시더라 10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14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대 15 또 두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16 이런 일이 세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가니라”(10)

 

왜 그러셨을까? 이방인과 상종하지 않으려는 잘못된 선민의식이 베드로에게도 있었던 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셨던 것임.

 

고넬료의 집에 가서 베드로가 한 말에 잘 드러남.

“24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25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26 베드로가 일으켜 가로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27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의 모인것을 보고 28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29 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뇨”(10)

 

이런 베드로의 모습은 확실히 변화되어야 할 모습임.

 

예수님의 지상명령이 무엇인가?

 

“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8)

이 말씀에 의하면 전도하여 구원하고 제자 삼을 대상은 누구인가? 모든 족속이다.

그러면 모든 족속을 제자 삼으려면 어떻게 하는가? 모든 사람에게 가야한다. 그런데 이방인이라고 꺼리면 도대체 이방인은 누가 구원한단 말인가?

 

우리도 주의할 것

 

-불신자들을 멀리하는 것.

그러면 전도 못함.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 못함.

교회는 세상을 향해 문을 열어놓아야 함.

우리끼리의 교회는 안 됨. 어느 목사님이 부임한 교회. 전도도 하지 말고 다른 곳으로 가지도 말고 이곳에서 재미있게 목회하시라고 한 교인들.

 

-또 다른 주의할 것

불신자들과 친밀히 하는 것은 좋은데 문제는 영향을 주지 않고 영향을 받는 것.

친구 영향도.

 

다시 베드로에게로 돌아오자.

 

이방인과 식사한 베드로. 참 잘한 것임. 많은 변화를 일으킨 것임.

 

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

 

그런데 여기에서 변수가 작용함.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식사를 하는데 야고보에게서 온 사람들이 옴.

 

야고보는 누구? 예수님의 동생. 열두제자 야고보가 아님.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교회지도자임.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 이 두 사람은 모두 당시 교회에서 기둥과도 같은 인물.

 

두 사람 사이는 서로 인정하며 존중하는 사이라고 할 수 있음.

 

그런데 그 야고보에게서 온 사람들이 베드로 있는 곳에 왔을 때 베드로는 이방인들과의 식사 자리를 부리나케 피함.

야고보에게서 온 사람들이 누구이기에 베드로는 이방인들과의 식사 자리를 피했을까?

 

오늘 본문에 할례자라고 언급되어 있음.

 

이 할례자들 가운데 여전히 율법주의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음.

이들은 상당히 공격적인 사람들임.

 

15장에도 그런 사람들이 나옴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2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15)

 

예수도 믿고 율법도 지켜야 한다고 보는 사람들.

 

3) 베드로의 외식

 

바울은 그들을 염두에 두고 식사 자리를 피한 것임.

 

할례자들과 충돌이 되거나 비난받을 것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임.

 

바울은 이런 베드로의 태도를 외식이라고 하면서 책망함.

사람들 눈치 보느라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것임.

 

외식이 무언가? 밖에서 밥 사먹는 것. 아님.

 

그러면 도대체 외식이 무엇인가?

 

외식하는 자의 모습과 관련한 성경말씀을 살펴보자.

 

-사람의 영광을 구함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6)

 

-사람에게 보이려 함

“5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6)

 

-남을 판단하기를 좋아함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속에서 티를 빼리라”(7)

 

-겉과 속이 다름(23:25)

23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24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25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23)

 

-입술로만 섬김

“6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9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10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11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12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 13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7)

 

-타인을 시험하기를 좋아함

“13 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14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15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한대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니 16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화상과 이 글이 뉘것이냐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17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저희가 예수께 대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더라”(12)

 

-거짓말을 함(딤전4:2)

“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2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3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딤전 4)

자신을 더 경건한 자로 드러내기 위해서임.

 

그러면 베드로는 어떤 면에서 외식?

 

사람을 염두에 두고 보이기 위해서 자신의 행동을 꾸밈. 그러고도 안 그런 척 함.

 

결국 외식이란 게 그리 어려운 말이 아님. 그러면서 안 그런 척, 안 그러면서 그러는 척 하는 것이 외식임. 그리고 그 동기에는 하나님이 아닌 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의식이 자리 잡고 있음.

 

 

2. 베드로의 외식이 미친 영향

 

오늘 본문에 보면 베드로의 외식은 자신의 외식으로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침.

 

1) 남은 유대인들이 외식함

 

먼저는 남은 유대인들에게 영향을 미침. 이방인과 함께 식사하던 유대인들이 베드로가 이방인들과의 식사 자리를 슬그머니 피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따라한 것임.

 

그러고 보면 베드로의 영향력은 참 대단함.

 

고기 잡으러 갈 때도 영향을 미쳤던 베드로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21)

 

오늘 본문의 영향이나 고기 잡으러 가던 때의 영향의 공통점. 부정적인 영향력.

 

2) 바나바도 외식에 유혹됨.

 

베드로의 외식의 영향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음.

 

바나바에게까지 그 영향력을 미침.

 

바나바는 어떤 사람?

 

-권위자. 밭을 팔아 사도들의 발에 둠

“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4)

 

-바울을 사도들에게 소개해 줌-바울에 대한 회심 소개

“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9)

 

-안디옥 교회에 파송된 좋은 목회자

“19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11)

 

-바울에게 사역의 길을 열어준 사람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11)

 

-바울과 더불어 위대한 선교의 역사를 염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13)

 

간략히 정리해 보면 너무 너무 훌륭한 신앙인이요 존경할만한 교회지도자인 바나바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 훌륭한 교회 지도자 바나바가 베드로의 영향으로 외식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사람 눈치 보느라고 자기 자신을 속인 것이다.

 

3) 교회 지도자들의 지대한 영향-파괴적인 측면에서도

 

여기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

 

교회 지도자의 영향력을 너무 크다는 것. 그리고 좋지 못한 방향으로 흐를 때 교회 공동체 전체에 악영향을 줌.

 

교단 총회장 되려는 쓸모없는 소모

목사님은 3억 밖에 안 들어서 다행이네요. 나는 지금도 그 빚을 못 갚고 있는데...” 하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종종 있다는 신문 기사.

장로도 총회장 되려고 안달. 장로교의 한 교단. 그 장로도 문제지만 그런 영향을 준 목회자도 문제.

 

장로나 권사의 신앙. 특별히 좋지 못한 것. 그것은 놀랍게 파급됨.

 

먼저 믿은 여러분 조심하시라. 전도한 대상과 초신자들 앞에서.

 

주일 소홀히 여기면 초신자들도

예배 시간에 전심으로 하나님 바라보지 않으면 초신자들도

전도의 열정이 없으면 초신자들도

사랑이 메말라있으면 초신자들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봉사하면 초신자들도...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교훈을 누룩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하심. 퍼진다는 의미.

“5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째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6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7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우리가 떡을 가져 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8 예수께서 아시고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9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10 떡 일곱 개로 사천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이던 것을 기억지 못하느냐 11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2 그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16)

왜 바리새인의 누룩 즉 교훈을 피하라고 하셨을까? 외식이기에. 왜 누룩이라고 하셨을까? 번져가는 것이기에. 다른 이들에게 동인한 모습을 보이도록 힘을 미치기에.

 

누룩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중에-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대한 설명에서

“20 또 가라사대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할꼬 21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13)

 

여러분이여. 부디 좋지 못한 영향력을 초신자들에게 미치는 어리석은 신자들이 되지 마시라. 신앙생활의 본질이 무엇인지 분명히 가르쳐 줄 수 있는 모범적인 성도들이 되시라.

 

 

3. 베드로는 왜 외식하게 되었나?.

 

이쯤해서 한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베드로가 왜 외시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사람을 의식하기 때문이라고 앞에서 말씀드렸다. 그런데 좀더 정확한 이유가 오늘 본문에서 언급되고 있다.

 

1) 사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할례자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실 베드로는 두려움이 많던 사람이었다. 사람 앞에서 예수님 부인하지 않았는가?

“54 예수를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쌔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55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 56 한 비자가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여 가로되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하니 57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이 여자여 내가 저를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58 조금 후에 다른 사람이 보고 가로되 너도 그 당이라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아 나는 아니로라 하더라 59 한 시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장담하여 가로되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60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아 나는 너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방금 말할 때에 닭이 곧 울더라 61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62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22)

 

바로 얼마 전만 해도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던 그 베드로가 왜 이렇게 예수님을 부인하게 되었는가? 자기도 예수님처럼 잡혀가서 무슨 일을 당할 지 알 수 없고 베드로는 그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바로 자신에게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냐고 묻는 그 사람이 자신을 신고할까봐 겁을 먹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베드로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사람이 된다. 그것은 성령충만을 받은 후에 놀랍게 변화된 베드로의 모습이었다.

 

서슬퍼런 산헤드린 공의회 앞에서

“5 이튿날에 관원과 장로와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6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예하여 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9 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4)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왜 또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왜 똑같은 실수를 다시 반복하고 있는가? 극복한 것 같은 상황을 왜 또 다시 재연하고 있는가?

 

그런데 조금 자세히 살피면 똑같은 모습을 재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동일하게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지만 그 종류와 성격은 다른 것이다. 즉 대적자들을 인한 두려움은 확실히 극복을 했는데 지금은 대적자가 아닌 같은 동료를 향한 두려움인 것이다. 다시 말해 대적자들의 비난과 공격은 이제 두렵지 않은데 같은 동료들이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은 두려웠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깨닫는 것.

 

-두려움의 종류가 참 다양하구나.

-두려움은 사람으로 하여금 어리석게 만드는구나.

-두려움의 상당 부분이 사람에 대한 것이구나.

-두려움은 사람에게 뿌리 깊은 것이구나.

 

2) 신앙을 망치는 중요한 요인

 

여러분이여. 신앙의 순례자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두려움의 문제를 잘 극복해 나가야 한다. 두려움은 신앙을 망치는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못한 사울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

“1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을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2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을 내가 추억하노니 3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삼상 15)

 

좋은 것을 진멸치 않고 남겨둔 사울

“7 사울이 하윌라에서부터 애굽 앞 술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사람을 치고 8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9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낮은 것은 진멸하니라”(삼상 15)

 

결국 불순종 때문에 버림받는 사울

“10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11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삼상 15)

“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 15)

 

왜 그는 그런 불순종을 했을까?

사람에 대한 두려움 때문임.

“17 사무엘이 가로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18 또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19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의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였나이까 20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였으나 21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취하였나이다 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삼상 15)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지 못한 유대인의 관원들

“42 그러나 관원 중에도 저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을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43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12)

 

이런 사람들이 지금도 많이 있음. 사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신앙을 드러내지 못하고 감추는 사람들이 많은 것임.

 

자신이 예수 믿는 것 드러내라. 분명히 하라.

 

여기 있는 여러분은 신앙을 감추는가? 아니면 드러내는가? 혹시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신앙이 성장하는데 걸림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혹시 사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주님을 숨겨두고 산다면 주님도 여러분을 부끄러워하실 것이다.

 

주님은 일찍이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말씀하셨다.

“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10)

 

3) 사람을 두려워하는 근본 원인.

 

그러면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여러분은 신앙인이 사람을 두려워하는 근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가?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결여이다.

 

베드로-같은 신앙지도자들의 비난이 두려움. ? 비난받으면 지도력이 떨어질까 봐 그러지 않았을까? 비난받으면 사람들이 더 이상 자신을 존경하지 않거나 인정하지 않을까봐 그러지 않았을까?

그러나 베드로가 잊고 있는 것. 지도자의 권위는 하나님이 세워주신다는 것.

 

사울-백성들을 향한 두려움. 사울을 이제 초대왕. 권력 기반이 든든하지 않음. 백성이 자신을 등질 수도 있음.

그러나 그가 있고 있는 것. 자신을 들어 왕으로 세우신 것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 왕권을 끝까지 지키시고 번영케 하시는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사실을 망각함.

 

결국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신뢰가 결여되었다는 이야기임.

 

바울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는가?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1)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란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10)

 

특별히 자신이 누구인가를 기억하라.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가? 하나님의 백성이 사람 두려워하여 하나님 백성 답게 살지 못하면서 어떻게 불신자를 하나님의 백성 답게 만들 수 있겠는가?

 

오늘 본문에 바울은 베드로에게 분명히 말함.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2)

 

 

결론

 

사람에게 보이려고 신앙생활하지 말라. 그것이 바로 외식이다.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 앞에서 하라.

 

특별히 외식하지 않는 신앙이 되려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을 염두에 두지 않는 신앙의 외골수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나머지 사람을 너무 의식해서 신앙에 걸림이 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여러분의 삶이 온전히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온전히 하나님만 신뢰하시기를 바란다.

 

외식? 누구나 가능함. 베드로같은 사도도 범하지 않았는가? 우리도 아차 하는 순간에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 내륙에 들어가 양주에서 선교사역을 할 때의 일이다. 선교사들이 의료 선교를 열심히 하자 양주의 학자들과 일부 군 인사들은 선교사들에 대한 나쁜 유언비어를 유포하였다. 그 후 선교사 집의 창문에 돌들이 날아오고 비난의 글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그 글에는 선교사들이 죽어가는 사람들의 눈알을 도려내고 어린아이들을 잡아 먹으며 아이 밴 여자의 배를 갈라 그것으로 약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이에 분노한 군중들은 폭도로 변해갔다. 이 일로 많은 선교사들이 심한 상처를 입거나 죽어 갔다. 영국 당국은 양주 사태에 대해 직접 개입하였다. 그러나 양주 폭동 이후 허드슨 테일러가 이끄는 선교회는 ?군함을 앞세우는 선교회?라는 심한 비난의 대상이 되어 헌금이 대폭 줄어들었다. 200여 명이 넘는 중국 내륙 선교회에 후원금이 영국으로부터 들어오지 않았다.

 

이때 허드슨 테일러는 자기를 돕던 후원자들이 후원을 끊었고 또 앞으로 끊을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구차하게 자신의 상황을 변명하거나 어떻게든 후원자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쓰지 않았다. 만약 허스든 테일러가 후원자의 눈에 잘 보이려 노력했다면 그도 은연중에 외식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한분만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허드슨 테일러는 그 갑갑한 상황 속에서 오직 하나님께 기도만 하였다. 그후 얼마 있지 않아 죠지 뮬러에게서 편지가 왔다. 2000파운드의 수표와 함께...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 두려워 말자. 사람에게 보이려고 외식하지 말자. 오직 하나님만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