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진정한 사명자가 되자. 삼상6:10-16(2012. 7. 15. 주일오후예배 설교)
10. 그 사람들이 그같이 하여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11. 여호와의 궤와 및 금 쥐와 그들의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으니
12.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
13. 벧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눈을 들어 궤를 보고 그 본 것을 기뻐하더니
14.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암소들을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리고
15. 레위인은 여호와의 궤와 그 궤와 함께 있는 금 보물 담긴 상자를 내려다가 큰 돌 위에 두매 그 날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니라
16. 블레셋 다섯 방백이 이것을 보고 그 날에 에그론으로 돌아갔더라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사명자라는 의식이 있어야 함. 정체성.
내 경우 어릴 때 깨달음. 그렇게 되니 삶이 달라짐.
목사가 되는 것.
-목사가 되려면 능력이 있어야 한다. 기도하게 됨. 학생회 때도 늘 기도. 용선이 용섭이에게 정화함. 우리 교회에서 기도하자. 산기도도 가고.
-목사가 되려면 말씀을 잘 알아야 한다. 성경 읽게 됨. 하루에 50-60장씩 읽은 날이 수두룩함. 암송함. 묵상함. 성경공부함.
-목사가 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사람들 앞에 서서 이끌고 가려면 실력 있어야 한다. 정말 열심히 책을 읽음. 철학 역사 시 소설 신학 기타 등등.
큰 아들 보고 한 말. 너 시험 기간에 공부하는 게 내 평소에 하던 것 만큼도 안 된다고.
금요예배에 나옴. 안수기도 때 기도해준 것이 있음. 왜 공부도 해야 하는지 목적을 알게 해달라고.
다시 원점.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정체성이 매우 중요하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사명자임.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2장.
자신이 누군이지를 알자. 그리고 이 시대의 진정한 헌신자가 되자.‘
설교 제목. 이 시대의 진정한 사명자가 되자
*배경 설명.
법궤를 빼앗고 곤욕을 치르는 블레셋 사람들
a. 다곤이 엎드러짐
“1 블레셋 사람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가지고 에벤에셀에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 2 블레셋 사람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당에 들어가서 다곤의 곁에 두었더니 3 아스돗 사람이 이튿날 일찌기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4 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둥이만 남았더라 5 그러므로 다곤의 제사장들이나 다곤의 당에 들어가는 자는 오늘까지 아스돗에 있는 다곤의 문지방을 밟지 아니하더라”(삼상5장)
b. 아스돗 사람들에게 독종의 재앙이 내림
“6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종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경을 쳐서 망하게 하니 7 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 가로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게 못할찌라 그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
c. 가드 사람들에게 독종의 재앙이 내림
“8 이에 보내어 블레셋 사람의 모든 방백을 모으고 가로되 우리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찌할꼬 그들이 대답하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가드로 옮겨가라 하므로 이스라엘 신의 궤를 옮겨 갔더니 9 그것을 옮겨간 후에 여호와의 손이 심히 큰 환난을 그 성에 더하사 성읍 사람의 작은 자와 큰 자를 다 쳐서 독종이 나게 하신지라”
d. 에그론 사람들이 크게 반발함
“10 이에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에그론으로 보내니라 하나님의 궤가 에그론에 이른즉 에그론 사람이 부르짖어 가로되 그들이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 하고”
e. 돌려보내기로 결정
“11 이에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가로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본처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 죽임을 면케 하자 하니 이는 온 성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12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종으로 치심을 받아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삼상 5장)
f. 선택받은 벧세메스 암소
1.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있은 지 일곱 달이라
2. 블레셋 사람들이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을 불러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할까 그것을 어떻게 그 있던 곳으로 보낼 것인지 우리에게 가르치라
3. 그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려거든 거저 보내지 말고 그에게 속건제를 드려야 할지니라 그리하면 병도 낫고 그의 손을 너희에게서 옮기지 아니하는 이유도 알리라 하니
4. 그들이 이르되 무엇으로 그에게 드릴 속건제를 삼을까 하니 이르되 블레셋 사람의 방백의 수효대로 금 독종 다섯과 금 쥐 다섯 마리라야 하리니 너희와 너희 통치자에게 내린 재앙이 같음이니라
5.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의 독한 종기의 형상과 땅을 해롭게 하는 쥐의 형상을 만들어 이스라엘 신께 영광을 돌리라 그가 혹 그의 손을 너희와 너희의 신들과 너희 땅에서 가볍게 하실까 하노라
6. 애굽인과 바로가 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 것 같이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겠느냐 그가 그들 중에서 재앙을 내린 후에 그들이 백성을 가게 하므로 백성이 떠나지 아니하였느냐
7. 그러므로 새 수레를 하나 만들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소에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8. 여호와의 궤를 가져다가 수레에 싣고 속건제로 드릴 금으로 만든 물건들은 상자에 담아 궤 곁에 두고 그것을 보내어 가게 하고
9. 보고 있다가 만일 궤가 그 본 지역 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이 큰 재앙은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의 손이 아니요 우연히 당한 것인 줄 알리라 하니라
삼상5장.
*사명을 떠올리는 벧세메스 암소
1. 수레를 끌고 가는 암소들
1) 처음을 짐을 메는 암소
맨 몸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짊어지고 가야할 것이 있음. 이것은 힘든 일. 멍에 메어 보지 않은 소. 가벼운 물건조차 날라본 적이 없는 것임. 그런데 법궤를 운반하기 위해 생전 처음으로 수레를 끄는 것임.
2) 주님을 따르는 데는 짐이 있음.
이런 짐이 없이 편안하게 따르면 좋을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음.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지 않으면 제자가 되지 못한다는 말씀. 실제적인 말씀인 것임.
25.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28.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29.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30.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33.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14장.
a. 마음 고생하는 바울
b. 이스라엘 백성들 자체가 모세에게 짐이 됨.
c. 초대교회 성도들이 짊어진 짐들. 예수 믿을 때 생긴 수많은 어려움.
3) 오늘날 우리에게도 짐이 있음.
벗고 싶은 멍에.
경제적인 것.
육체적인 것.
인간관계적인 측면.
이것은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님. 사랑하심에도 그런 과정을 주시는 것임.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사실 사람들은 자신의 짐에만 주목함. 자신만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함. 그러나 사람마다 나름대로의 짐이 있고 그 짐 때문에 힘들어함.
사명자는 그 짐으로 인해 힘들어 하면서도 주의 일을 감당해 나가는 것임.
교회에서의 짐. 예배드리기. 맡겨진 일. 짐일 수 있음. 그러나 벗으면 안 됨.
2. 새끼들과 이별한 암소들
1) 새끼들과의 이별은 힘겨운 것
이것은 사람만이 아님.
해야 할 일, 즉 사명을 위해 암소는 새끼들과 생이별을 해야 했던 것임.
개를 분양할 때.
새끼가 있을 때는 사나워짐. 왜? 지키려고.
그런데 새끼들과 생이별한 암소들.
2) 사명을 위한 단호함
a. 때로 너무 할 정도로 단호하신 예수님.
“57 길 가실 때에 혹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61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 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눅 9장).
b. 사무엘을 성전에 맡기는 한나
아이 키워본 사람들은 안다. 이것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벌벌 떤다. 며칠간 어디다 맡기는 것도. 그런데 한나는 하나님 앞에 맡김. 그러니 위대한 사무엘도 나오는 것이다.
c. 아들 이삭을 번제단에 드리는 아브라함.
이건 더 어려운 일.
3) 사명이 최우선 되어야 함.
이것은 가족을 소홀히 여기라는 것이 결코 아님. 가족은 정말 중요하다.
나도 역시 가족에게 잘 하려고 함.
그 동안 일 중심이었음. 가족들은 늘 뒷전이었음. 그것도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많이 바뀌고 있음.
작년에 처음으로 가족들끼리만 휴가를 감. 정선으로 1박2일. 얼마나 좋아하던지. 이제 그런 시간을 가지려고 함. 목회자 가정이 행복해야 설교에도 독이 들어가지 않음.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때로 가족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다.
그때는 아내와 아이들도 이해를 해야 한다. 이해 못해도 해야할 때도 있다.
성도들 역시 마찬가지임.
3. 울면서 가는 암소들
“12상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1) 왜 울었을까?
힘들어서
새끼들과 이별해서
두 가지 모두일 것임.
2) 울며 사명을 감당했던 사람들
a. 예레미야. 너무 힘드니 죽음을 사모함.
“14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미가 나를 생산하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15 나의 아비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기를 네가 생남하였다 하여 아비를 즐겁게 하던 자가 저주를 받았더면, 16 그 사람은 여호와께서 훼파하시고 후회치 아니하신 성읍 같이 되었더면, 그로 아침에는 부르짖는 소리, 낮에는 떠드는 소리를 듣게 하였더면, 17 이는 그가 나를 태에서 죽이지 아니하셨으며 나의 어미로 내 무덤이 되게 하지 아니하셨으며 그 배로 항상 부르게 하지 아니하신 연고로다 18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수욕으로 보내는고”(렘 20장).
그러나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을 중단하지는 않음. 왜 그런가? 사명자이기 때문에. 울면서 사명을 감당함. 그래서 눈물의 선지자임.
b. 엘리야
하나님께 죽음을 요청함. 그 대단한 선지자. 그 용감하고 믿음 있는 선지자가.
사실 어느 누구나 초인은 아님. 다 인간임. 연약함.
하나님이 그에게 일을 맡기셨을 때 이어서 함.
나는 엘리야의 이런 면이 오히려 좋음. 나 자신도 그렇게 울기도 하고 절망도 해 보았기에.
3) 우리도 눈물 흘릴 때가 있음.
힘이 든 일로 인해.
맘 상하는 일로 인해.
이럴 때는 하던 모든 것을 접고 싶기도 함. 열등감이 생기기도 하고. 의욕을 다 잃어버리기도 함. 그냥 훌훌 털어버리고 어디론가 가버리고 싶기도 함. 그러나 사명자는 그럴 수 없음. 울면서 맡겨진 일을 계속 해 나가는 것임.
인용)
찬송가 <내 주여 뜻대로>는 독일의 루터교 목사인 벤야민 슈몰크(Benjamin Schmolck)의 1000여 편의 찬송가 중 대표작이다. 그는 위대한 설교가요 경건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사람으로, 어떠한 환경에 놓여도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순종적 신앙인이었다. 그의 신앙이 이 찬송에 아름답게 나타나 있다.
신교와 구교 간의 30년 종교전쟁(1618~1648)으로 유럽은 엄청난 인명과 재산을 잃었다. 결국 쌍방이 잿더미 위에서 베스트팔렌 평화조약(The peace of Westfalen)에 서명했으나 신교와 구교의 대립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유럽 여러 나라의 싸움터가 되었던 독일은 1600만 인구가 600만으로 줄었고 그들의 산업시설은 물론 삶의 터전도 모두 재로 변했다. 전쟁에서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도 흑사병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참으로 죽음이 횡행하는 곳이었다.
이 찬송의 작시자 슈몰크 목사가 시무하던 실레지아(Silesia)는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의 하나로, 전후(戰後)의 고통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전후 로마 가톨릭교의 반(反)개혁파 세력으로 인해 그곳의 루터교회들은 모두 로마 가톨릭교회로 돌아갔고 그 넓은 지역에 단 한 교회만 루터교회로 허용이 되었다. 그 지방에서 유일한 루터교회는 통나무 움막에 흙벽으로 지은 건물이었으며 종탑이나 종도 없었다. 그 평화조약으로 인해 루터교는 도심지에 교회를 세울 수 없고 성 밖에서만 허용되었다. 또한 로마 가톨릭교회 신부의 승낙 없이는 루터교 성직자가 그 지방의 환자를 방문할 수도 없고 장례식도 치를 수 없도록 많은 제재가 가해졌다.
이 움막 교회에서 슈몰크 목사가 조사(助事) 2명과 더불어 시무해야 했던 것이다. 이들은 36개 마을이나 되는 넓은 교구를 가톨릭교회 신부들의 눈치를 살펴가며 돌봐야 했다. 이 어려운 일을 감당하던 슈몰크 목사는 1730년 어느 주일에 과로로 쓰러졌고 중풍 병으로 한동안 자리에 누워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회복된 후에도 끝내 오른손은 쓰지 못했다. 그 후에도 그는 두 번이나 중풍 병이 재발하였고 백내장으로도 고생하였다. 성공적인 수술로 잠시 병세가 나아지는 듯 했으나 결국은 실명을 하고 와병 중에 있던 그는 1737년 2월 12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그토록 널리 퍼져 있는 양들을 충실히 돌봤다. 로마 가톨릭교회와 루터교 사이에서 방황하던 양들은 목사가 건강한 몸으로 심방을 왔을 때는 그다지 감사함을 느끼지 못했으나, 다리를 저는 반신불수가 되어 몸을 지팡이에 의지하고 그 먼 길을 심방 왔을 때는 그들의 마음이 녹아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목자는 뜨거운 사랑으로 양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양들은 목자의 건강을 눈물로 호소했다. 병든 몸으로 심방 온 목자에게 조금이라도 염려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신자들은 열심히 교회에 출석해야 했고, 교회는 부흥했다.
1704년 어느 날, 슈몰크 목사 부부가 먼 지역의 심방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집이 불타고 있었다. 타다 남은 것들이 마저 타느라고 여기저기에서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슈몰크 목사는 아들 형제를 찾아보았다. 열심히 불러 보았으나 대답이 없었다. 섬뜩한 생각이 들어 잿더미를 헤쳐 보니 그곳에 사랑하는 두 아들이 타 죽어 있었다. 슈몰크 목사 부부는 새까맣게 탄 두 형제의 시체를 앞에 놓고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울부짖었다. 그 내용을 이후에 시로 옮겨 놓은 것이 바로 이 찬송시이다.
내 주여 뜻대로
1.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2.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3.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아멘
4. 죄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암소들
“12하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까지 따라 가니라”
1) 죄로나 우로 치우치면?
하나님의 뜻을 그르치게 됨.
블레셋 사람들의 말. 엉뚱한 곳으로 가면 그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것이 아니라 우연히 우리에게 임한 것이라.
2)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명자의 모습
완벽하지는 않음. 허물이 있고 어리석음이 있고 나약함이 있음. 그러나 하나님의 뜻 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삶의 태도가 있음.
“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9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수 1장).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 중압감이 심함. 무기나 전략 주지 않으심.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만 주심. 사실은 그게 살 길. 사실은 그게 승리할 길.
사명자들이 빗나가는 경우
a. 너무 잘 나갈 경우. 교만해져서.
큰 교회가 된 후에 망가지는 분들이 있음.
사업 성공. 돈 많이 벌고. 사회에서 잘 나갈 때.
b. 너무 어려운 경우. 분별력을 잃어버려서.
너무 힘드니까 망가지는 분들이 있음. 한 전도사님. 너무 힘들음.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서 소주를 마심. 인간적으로 이해함. 사실 너무 힘들면 기도도 안 나옴. 곁길로 새고 싶음. 그러나 빗나가는 것임.
3) 빗나감의 유혹을 받는 우리
나와 여러분 모두 예외가 아니다.
어떨 땐 반항하는 심정으로 비뚤어지려고 함. 그러나 그것은 내 생각이 아님. 사단이 우리 마음속에 가져다주는 생각임.
사명자는 마지막까지 정도를 걷는 사람.
천로역정. 양쪽의 사자. 그러나 중앙으로 가면 안전. 결국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것은 우리를 위한 말씀임. 철로 위를 달리는 기차. 물속의 물고기.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
5. 생명을 다 드린 암소
“14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소를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1) 마지막 암소의 모습.
좋은 음식이 주어졌나?
좋은 외양간에 들어갔나?
수고했다고 비단으로 덮개라도 만들어주었나?
아님 불살라져 하나님께 번제로 드려짐.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목숨까지 하나님께 드린 것임.
2) 하나님껜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a. 바울. “22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5 보라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지금은 너희가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줄 아노라”(행 20장).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딤후4장.
b. 예수님의 말씀. 하나님을 사랑할 땐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여지를 남겨놓지 않는 것임.
반쪽짜리 마음이 아닌 모든 것을 쏟아 붓는 마음.
c. 예수님은 이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예수님이 먼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기에. 그 과정에 대한 언급. 겟세마네 기도. 가시면류관. 채찍질. 십자가 지고 오르기. 못박힘.
정신적으로도 충격.
영적으로 가장 강한 충격.
십자가를 묵상하는 것.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묵상하는 것. 이것은 내게 큰 능력이 됨.
3) 우리의 생명도 하나님께
참 어려운 말씀. 자칫하면 괜히 하는 소리로 들릴 수 있지만 우리의 생명도 하나님께 드리자.
인용)
우리나라에 온 선교사들중에도 유명의대를 졸업하고 보장된 삶을 뒤로하고 당시 미개했던 조선에 와서 각종 전염병과 풍토병에 대항하면서 살다가 젊은 나이에 죽어간 선교사들이 많다. 어떻게 보면 살아남아서 더 많은 좋은 일을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젊은 나이에 오지에서 죽고마는 것이 한편으로 안쓰럽고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다.
양화진에 가면 선교사묘역이 있다. 거기에 최초로 묻힌 분은 헬렌선교사이다. 그는 알렌선교사가 세운 최초의 근대식병원 '광혜원'을 2대원장으로 이끌었고 고종의 시의역할도 하던 사람이었는데, 전염병으로 죽고 만다. 그의 나이 34세. 고종에게 탄원해서 얻게 된 묘지가 바로 양화진이다.
그후 이 양화진에는 약 4-500명의 선교사들의 묘비가 놓이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무렵 나라에서 허가를 받아 의료/교육 등의 모습으로 선교하던 시절보다 훨씬 이전에는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순교한 개신교 순교자 토마스가 있다.
그는 제너널셔먼호를 타고 평양 대동강까지 올라왔다가 배가 불에 태워지고 다른 모든 사람들과 함께 죽음을 당한다. 그의 나이 26세. 토마스선교사처럼 선교를 제대로 시작해보지 못하고 이땅에서 죽은것같은 이 사건을 통해서도 얼마나 많은 복음전파의 열매들이 맺혔는지, 감동이 아닐 수 없다.
그가 죽기전에 불타는 배위에서 강가로 던져대던 한문 성경책들.. 그 책들이 돌고 돌아서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고 후에 들어온 선교사들에 의해 평양에 최초의교회 널다리교회가 생기게 된 배경이 된다. 그후 이 교회는 장대현교회로 발전하게 되고, 외부에서 온 선교사 뿐 아니라 한국에서 많은 목사님들을 통한 복음전도의 사역들이 눈이 부실정도이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썩지 아니하면...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런 일을 도무지 당할 일이 없다. 그러나 이런 자세는 있어야 한다. 그게 사명자다. 생명을 드리면 못 드릴 것이 없음.
생명 드릴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무엇이든 다 드릴 수 있음.
결론
1. 수레를 끌고 가는 암소들
우리에게 지워진 짐. 십자가 지고 주님 따르자.
2. 새끼들과 생이별한 암소들
가족들 소중하지만. 더 소중한 예수님. 사명을 위해
3. 울며 가는 암소들
힘이 들어서, 마음이 아파서 울면서도 주께서 맡기신 일 감당.
4.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암소들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5. 자신의 생명을 드린 암소
우리의 생명도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자.
지난 주간에 전국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 정말 많은 도전을 받고 옴.
특별히 온전한 순종에 대해. 한 사람의 헌신에 대해.
설교 제목. 이 시대의 진정한 사명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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