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땅을 떠나지 말라 룻1:1-5
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거기에는 때로 희생이 있을 수도 있고 고난과 시련이 다칠 수도 있고 그만 벗어나고 싶은 요구가 생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더 나은 자리가 있을 것도 같고, 내가 왜 여기서 이 모양 이 꼴로 고생을 해야 하는 생각도 종종 들고, 그러다가는 ‘에라 모르겠다. 나는 나 갈 곳으로 가련다’하고 자신의 자리를 떠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부디 여러분의 자리를 지키실 수 있기를 바란다. 툭하면 도망하려는 오합지졸 근성을 뿌리 뽑으시고 성령충만 받아 자신의 자리를 굳게 지켜 그 자리를 복의 자리로 만드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란다.
오늘의 본문으로 돌아오자.
1. 약속의 땅이 든 기근
1) 약속의 땅에도 기근이 든다
오늘 본문의 시대적인 배경은 사사들이 통치하던 시대이다. 사사들은 아직 왕이 이스라엘에 나타나기 전에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사람들을 일컫는다. 여호수아 이후부터 사울왕의 전까지 이런 사사들이 등장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렸는데 기드온이나 삼손이나 입다등이 유명한 사사들이다.
그런데 그 사사들이 다스리던 어느 시점에 이스라엘 땅에 흉년이 들었다.
“1 사사들의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라고 오늘 본문에 말씀하고 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이스라엘이 지금 머물고 있는 땅이 어디인가? 가나안땅이다. 도대체 이 가나안 땅은 얼마나 의미 있는 땅인가? 하나님께서 430년이나 이집트의 노예로 고생하던 이들을 모세의 손으로 구원하여 내시고 여호수아를 통해 얻게 하신 땅이 아닌가? 한 마디로 하나님이 선택하신 땅이요, 하나님이 친히 허락하신 땅이다.
신명기 11장에는 그 땅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10 네가 들어가 얻으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11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신 11장) 세초부터 세말까지 하나님의 눈이 지켜보시는 땅. 얼마나 대단하고 얼마나 의미 깊은 땅이다.
그런데 그 땅에 흉년이 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닫는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곳에도 시련과 고통은 있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능력이 모자라서도 아니고 하나님이 실수하셔서 생긴 현상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뜻이 있으셔서 그런 시련과 연단의 과정을 주시는 것이다.
여러분은 잘 기억하시라. 약속의 땅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에도 고난과 고통이 있을 수 있다.
2) 약속의 땅에 기근이 든 예
실례로 아브라함도 동일한 것을 겪었다.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머물기 전에 아브라함이 유하던 땅이기도 하지 않는가?. 원래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가 고향이다. 그런데 그곳을 떠나 아버지 데라와 함께 하란에 있다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75세라는 나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으로 간다. 그런데 하나님이 있으라 한 곳에 있으니 만사형통하게 해주셔야 할 것 같은데 영 딴판이다. 오히려 그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어 아브라함의 처지가 막막해 진 것이다.
3) 왜 하나님은 기근을 허용하시는가?
여기에서 우리는 궁금함을 금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왜 약속의 땅에 기근을 허락하시는가 하는 점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그런 의문이 생기지 않는가? (아무 생각없이 사시는가?)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하나님은 지혜로우신 분이다. 또한 나와 여러분을 사랑하신다. 지혜로우실 뿐 아니라 나와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통을 허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다. 우리는 그 뜻을 섭리라고 부른다.
때로 우리는 가족들로 인해서 고통을 겪는다. 때로 우리는 수많은 인간관계로 인해서 힘이 든다. 때로 우리는 직장에서도 애를 먹을 때가 있다. 심지어는 교회에서조차 시련을 당하기도 한다.
왜 그런가? 나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우리 안에는 못 되먹은 근성이 있다. 또한 너무 약해빠진 모습들이 있다. 이런 것들은 좋은 환경 속에서는 보완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눈물이 찔끔나는 상황 속에서 정말 제대로 된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어져 가는 것이다.
2. 약속의 땅을 떠난 사람들
1) 약속의 땅을 떠난 사람들
그런데 실상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나 섭리를 헤아려볼 지혜나 믿음이 없는가보다. 자신이 다듬어지는 자리를 지키면서 기도로 믿음으로 이기기보다는 그 자리를 피해 도망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으니 말이다.
오늘 본문에도 그런 사람들이 나온다. 바로 엘리멜렉과 나오미 부부, 그리고 그 아들들인 말론과 기룐이다. 온 가족이 약속의 땅을 떠나 이민을 간 것이다.
“1 사사들의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는데 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유하더니”
이들은 기근시에 경제적인 고통을 겪으면서 왜 자신들이 그런 고통 속에 놓여있게 되었는지를 묻지 않는다. 그런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무엇을 가르치시려는지를 탐구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참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채워주시고 공급해 주신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이들은 분명 출애굽시에 하나님이 굶어죽을 수 밖에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리시려고 만나를 내리시고 메추라기를 땅에 떨어뜨리셨다는 것에 대해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 말씀이고 현실은 현실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사람들 우리 주변에도 많지 않은가? 아니 여러분들도 그럴지 모른다. 말씀은 말씀이고 현실은 현실이고, 성경에 기록된 것과 나와는 별로 상관도 없고... 자기와 상관없는 말씀 들으려니 재미도 없고 지루하고 졸리기만 한 것 아닌가? 다 믿음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다만 믿는 척만 하는 것이다.
2) 우리에게도 있는 선택의 문제
그리고 이런 선택의 문제는 곧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말씀대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어렵기는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문제는 말씀대로 살려하니 원수 마귀가, 세상이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다. “무릇 하나님을 향하여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지 않았는가? 말씀대로 살려고 하기에 때로 세상 속에서 핍박을 받는지, 아니면 좀 편하게 신앙생활하기 위해서 말씀을 슬그머니 저버리든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다.
새벽기도도 마찬가지이다. 새벽기도는 물론 어렵다. 힘이 든다. 자신의 의지와 싸워야 한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할 수 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오늘날의 세상에서 신앙인이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분명 힘든 일이다. 좁은 길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선택하는 여러분에게 달려있다. 그리고 나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를 선택하기를 소원한다. 그것이 여러분에게 생명이 되기 때문이다.
3. 약속의 땅을 떠난 결과
약속의 땅을 떠난 가족에게로 다시 시선을 옮겨보자. 좀 편안해지려고 약속의 땅을 떠난 가족은 편안해졌는가? 더욱 윤택하게 되었는가?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풍성하게 받았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최악의 상태로 전락한다.
1) 더 큰 죄악으로 빠져듬
먼저 그들은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게 된다.
“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아내를 취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무슨 말씀인가? 그 가족의 두 아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여인과 결혼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역한 죄이다.
2) 비참해지는 가족
약속의 땅을 떠남으로서 첫단추를 잘못 끼었던 한 가족은 죄를 짓는 중간 단추를 끼울 수 밖에 없었고 그 결과로 비참해진 가족이라는 마지막 단추를 끼우게 된다.
“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 두 아들이 남았으며”
“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무슨 말인가? 다 죽고 세 과부만 남은 것이다. 과부촌의 원조이다. 이게 무슨 꼴인가?
3) 약속의 땅만 못한 이방땅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탕자의 비유에서 먼 나라가 아버지의 품보다 못하다는 것을 비참해진 후에야 깨달은 탕자처럼, 약속의 땅을 떠난 후 모압땅에서 비참해진 후에야 힘들어도 약속의 땅이 축복의 자리임을 뼈저리게 느낀 가족들처럼 시행착오를 격은 후 약속의 땅에 머물러야겠다고 생각하고 싶은 분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한번 따라해보자. “세상의 어떤 곳도 약속의 땅만 못하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다듬어 가시는 과정임을 기억하시고 자신의 자리를 지켜나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결론
결론적으로 말씀드린다.
부디 사랑하는 여러분은 약속의 땅을 떠나지 마시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리, 하나님이 거하시는 자리,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는 자리를 귀히 여기시라. 그 자리에서 받는 고난은 고난조차도 영광으로 변한다는 놀라운 비밀을 가르쳐 드렸으니 남은 시간도 잊지 않고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라.
특별히 우리에게는 약속의 땅이라고 할 수 있는 교회가 있다. 교회를 중심으로 한해를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축원한다. 문제가 있으면 무조건 교회로 오라. 속상한 일이 있으면 일단 교회로 오라. 틈만 나면 교회에 들려라. 아무 것도 안 해도 교회에 있는 것을 좋아하시라. 성전을 떠나지 않았던 청년 여호수아처럼 말이다. 교회에서 맡겨진 여러분의 자리를 절대로 놓치거나 빼앗기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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