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을 근원을 뽑아내라 민11:4-9
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6.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7.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
8. 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으니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더라
9. 밤에 이슬이 진영에 내릴 때에 만나도 함께 내렸더라
“원망의 근원을 뽑아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눌 때에 이 말씀이 나와 여러분을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는 말씀이 되기를 축원한다.
오늘의 본문으로 돌아오자. 오늘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울음이 언급되고 있다. 이들은 엄청 울고 있다. 그런데 왜 울었을까?
1. 이스라엘 백성들의 울음
1) 이들은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님
이들은 감사해서 울었던 것이 아님. 감사해서 우는 것이라면 그것은 아름다울 것임.
2) 이들은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님.
이들은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님.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라면 그것도 아름다움.
3) 이들은 사랑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님
이들은 사랑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님.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가진 자는 그 사랑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 하나님을 떠나 죄를 짓는 백성들, 그 죄 때문에 자신이 망할 줄도 모르는 백성들 때문에 마음이 아파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4) 이들은 원망의 눈물을 흘리는 것임.
그러면 이들은 왜 울었는가? 원망 때문에 울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많이 운 이유이다.
여러분 기억하라. 원망 때문에 우는 울음은 울음 중에 가장 가치가 낮은 울음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절대로 울지 말아야 할 울음이다. 원망의 울음이야말로 사단이 요구하며 사단이 기뻐하는 울음이다.
2. 무엇을 원망하는가?
여러분. 여러분에게 묻자. 이들은 무엇 때문에 원망하는가? 무엇을 가지고 원망의 마음이 생기는가?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는 것은 두가지 내용이다.
1) 지금 없는 것을 원망함.
첫째로 이들은 지금 없는 것을 원망하고 있다.
애굽에 있을 때에는 생선도 외도 수박도 부추도 파도 마늘도 있었는데 이제 그런 것들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없다고 원망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 사람들이 무엇을 가지고 원망하는가? 없는 것을 가지고 원망하지 않는가?
돈이 없다고 원망함.
건강이 없다고 원망함.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원망함.
뜻대로 되는 것이 없다고 원망함.
그런데 이렇게 없는 것을 찾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원망이 점점 더 늘어간다.
그리고 이렇게 없는 것을 찾아가며 원망하는 사람은 그 판단 능력까지도 흐트러지게 된다.
여러분은 혹시 이 어리석은 자처럼 되지 않는가?
여러분. 기억하라. 여러분이 현재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은 기도의 대상이지 원망의 대상이 아니다. 없는 것만 자꾸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시길 바란다.
2)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원망함.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을 원망하고 있는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원망하고 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아까는 없는 것을 가지고 원망했는데 이제는 있는 것을 가지고 원망한다니 무슨 말이 그런가? 그러나 실제로 그렇다.
그럼 무엇을 가지고 원망했는가? 만나를 가지고 원망했다.
만나만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 만나가 지긋지긋하다는 것이다.
여러분 만나가 무엇인가? 광야에서 굶어죽을 수 밖에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내리신 것이 아닌가?
처음에 만나가 내렸을 때 그들은 얼마나 기뻐했는가? 광야에서 죽지 않도록 먹을 것을 주시는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감격했었는가? 그런데 이제 그 만나를 원망하다니...
무언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는구나. 배은망덕도 유분수구나’하고 생각이 될 정도이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뿌리깊은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처음 아담에게 하와를 데려왔을 때 아담은 얼마나 기뻐했는가?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선악과를 따먹은 후 아담은 왜 선악과를 따 먹었냐는 하나님의 책망에 “당신이 내게 주신 이 여자가 내게 주어서 먹었습니다”하고 하나님께 대답했다. 하와를 원망하고 있는 것이다. 기쁨과 감사의 대상이던 하와가 원망의 대상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3. 왜 원망하게 되었는가?
그런데 여러분 내가 보기에 이런 것들 말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한 더 깊은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없는 것 때문에 원망하고 있는 것 때문에 원망하지만 이보다 더 본질적인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오늘 본문은 원망의 이유, 원망의 근본 동기에 대해서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왜 원망하는가? 탐욕 때문이다.
자족하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기 때문에 원망이 생기는 것이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시험에 드는데 왜 그런지 아는가? 욕심 때문이다. 남보다 잘나고 싶은 욕심, 남보다 더 대접받고 싶은 욕심, 남보다 더 큰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심, 남보다 더 많이 가지고자 하는 욕심이 그 사람을 자꾸만 시험에 빠뜨리는 것이다. 일단 가장 낮아져서 섬기려하는 사람은 시험들 새가 없다. 섬길 일이 천진데 언제 시험 들겠는가? 그런데 욕심을 부리기 시작하면 사사건건 시험거리가 된다.
그러기에 성경은 말씀한다. “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장)
여러분 기억하라. 욕심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
여러분 또한 기억하라. 욕심에는 감사가 없다. 욕심 있는 사람은 늘 요구불만인데 언제 감사하겠는가?
3) 잡족의 영향 때문에 생긴 원망
그런데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생긴 원망의 시발점이 어디인지 아시는가? 오늘 본문을 보자. “4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이다.
이들이 누군가? 애굽에서 쫓아 나온 자들이다.
왜 쫓아 나왔는가?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열가지 재앙. 마지막 재앙은 특별히 그것을 안 모든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줌. 그러니 하나님은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고 그런 하나님이 함께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따라 나온 것이다.
그러나 실상 이들에겐 신앙이 없다. 그저 좋아보여서 따라나온 것일 뿐이다. 그리고 신앙이 없으니 쉽게 탐욕을 품을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이다. 잡족들에게 영향을 받을 것이 아니라 영향을 주어야 하는데 거꾸로 잡족들에게 영향을 받아 잡족들과 똑같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많은 교회들의 문제도 바로 이와 유사하다. 교회 안에는 신앙의 사람도 있고 사실 신앙은 없이 자리만 지키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신앙없는 사람들의 욕심에 같이 영향받아 원망이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신앙 있는 사람들이 신앙없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어 그들이 감사하는 신앙의 백성이 되게 해야 하는데 거꾸로 자신들도 감사를 잊어버리고 원망하는 어리석음을 보이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신앙의 투덜이들이다. 교회에 도움은 주지 못하고 교회를 약화시키는 사단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가 부흥하면서 사람들이 많아지면 신앙의 투덜이들도 많이 생길 것이다. 잡족과 같은 사람들이다. 그때 여러분은 영향을 받아 같이 원망하는 자가 되지 말고 영향을 주어 서로 감사하는 자가 되시길 바란다. 그렇게 영향력을 미쳐 다른 사람들을 참된 신앙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살아있는 믿음이 아니겠는가?
결론
혹시 여러분 가운데 원망에 빠져있는 분이 있는가? 두려워하시기 바란다. 철저하게 회개하시기 바란다. 그러나 원망만 회개하면 해결이 안된다. 원망의 근원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근원이 남아 있으면 다시 원망이 솓아 나기 마련이다. 뿌리가 있으면 다시 풀이 돋아나지 않는가? 뿌리까지 뽑아서 태워버려야 다시는 그 풀이 살아나지 않는 법이다.
원망의 근원이 무엇인가? 욕심이다. 욕심이 있으니 자족할 수도 없고 감사할 수도 없는 것이다. 욕심대로 되지 않으니 짜증만 나는 것이다.
여러분이여. 사실 자족하기 시작하면, 감사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지 않은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라. 그들이 감사할 조건들이 없어서 원망했는가? 쓴물을 달게 하신 분이 누군가?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그들을 위해 만나를 내리신 분이 누군가? 홍해를 가르신 분이 누군가?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더위를 막아주신 분이 누군가? 밤에는 불기둥으로 추위를 면케 하신 분이 누군가? 설사 이 모든 것을 다 잊어도 애굽에서 노예로 살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자신들을 능력의 팔로 구원해 주신 분이 누구신가? 하나님이 아니신가? 그 하나님이 비록 광야이지만 그곳에서 함께 하시는데 정말 원망만하고 있어야겠는가?
여러분 우리는 안 그런가? 두 손과 발 성하게 하신 분이 누구신가? 먹고 살게 해주신 분이 누구신가? 광야같은 세상에서 이날 이때까지 돌보아주신 분이 누구신가? 설사 이 모든 것 다 잊어도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나, 영원한 심판에 떨어질 수 밖에 없는 나, 내 힘과 노력으로는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는 나를 구원하신 분이 누구신가? 독생자 예수께서 왜 죽으셨는가? 왜 물과 피를 쏟으셨는가? 왜 멸시와 조롱과 천대와 침뱉음을 당하셨는가? 왜 온 몸애 채찍을 맞고 피투성이가 되셨는가? 왜 하나님에게조차 버림받고 십자가 위에서 절규하셨는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 아닌가? 그리고 그 예수께서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데 어떻게 원망만 하고 있는가? 참으로 벌받을 죄가 아닌가?
주님이 함께 하신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말인가? 주님 말고 다른 것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그래서는 안될 것이다.
나와 여러분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신 예수 우리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 그것으로 자족하시기 바란다.
“1. 주와 함께라면 가난해도 좋아 참된 부요함이 내맘에 가득하니까 때로는 날 유혹하려고 세상 바람 휘몰아쳐와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어 자비로운 주의 음성을
2. 주와 함께라면 병들어도 좋아 참된 강건함이 내맘에 가득하니까 때로는 날 넘어뜨리려 거친 바람 휘몰아쳐와도 나는 결코 놓을 수 없어 따사로운 주의 손길을
3. 내맘 아시는 주 항상 함께 계셔 약한 내 영혼에 위로와 능력 주시네 가난해도 병이 들어도 시련의 밤 어둡고 깊어도 나는 결코 또날 수 없어 아름다운 주의 나라를“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여러분 속에서 원망의 근원인 욕심을 언제까지 가지고 있겠는가? 기도로 뿌리 뽑으시기 바란다. 말씀으로 뿌리 뽑으시기 바란다. 성령의 능력으로 뿌리뽑으시기 바란다. 하나님께 매달리시라. “하나님 아버지. 내 속에 탐욕이 남아 있나이다. 이것이 채워지지 않을 때마다 내 속에는 원망이 솟아나오나이다. 감사를 송두리채 잊어버리고 짜증만 내게 되나이다. 성령의 불로 저를 살라주옵소서. 와전히 새사람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부디 원망의 근원인 욕심을 이기고 자족하며 감사하는 능력의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한가지 예화를 드리고 말씀을 마치고자 한다.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의 가족은, 나찌 치하에서 곤경에 처한 유태인을 돕다가 붙잡혀서, 수용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후에 코리 텐 붐은, 피난처(The Hiding Place)라는 제목의 책으로, 수용소에서 겪은 참담한 경험을 소개한 바 있다.
나찌 수용소에서, 코리 텐 붐은 그의 언니, 벳치(Betsie)와 함께, 벌거벗은 채, 검사관 앞에 줄 서도록 강요받았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온 무력한 짐승처럼, 벌거벗은 채, 검사관 앞에 줄지어 섰다. 여러분은 그때 코리텐 붐이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상상이 가시는가? 코리 텐 붐은 그때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았다는 절망감을 느꼈다.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시면 그런 처참한 꼴을 당하도록 내버려둘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왜 침묵하시는가? 하나님이 능력의 주이시라면 왜 역사하시지 않는건가?
그런데 그 순간, 코리 텐 붐은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 주님의 모습을 떠올렸다.
마태복음 27장 35절과 36절은 "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거기 앉아 지키더라"고 말씀한다.
많은 예술가들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이 한 조각의 옷을 걸치고 있는 것으로 그리고 있지만, 성경은,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예수님의 옷을 제비 뽑아서 나누어 가졌다고 증거한다. 보다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예수님은 벌거벗은 채 십자가에 매달리셨던 것이다.
입고 있던 옷을 강제로 빼앗기고, 나찌 수용소의 어두운 복도에, 벌거벗은 채 서있던 코리 텐 붐은, 앞에 서있는 누이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벳치, 그들도 주님의 옷을 뺏어 갔었어." ......(침묵이 흐르고)
코리 텐 붐의 속삭임을 듣고서, 한참동안 아무 말 없이 앞만 바라보고 있던 벳치는, 뒤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코리, 난 여지껏, 지금처럼 주님을 가까이 느낀 적도 없고, 이렇게 주님께 감사했던 적도 없어." 이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무엇이 그토록 당신들을 힘들게 하는가? 무엇이 그토록 당신들을 원망하게 하는가? 자족하지 못하게 만드는 욕심, 감사하지 못하게 만드는 탐욕때문이 아닌가?
오늘 설교의 제목이 무엇인가? “원망의 근원을 뽑아내라”. 그와같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하나님이시여. 이 설교를 축복해 주옵소서. 저로 하여금 수많은 절망을 겪게 하셨고 그로 인해 자족하는 법을 가르치신 주님이시여. 이 말씀이 성도들의 욕심을 파헤치고 원망을 날려버리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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