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 특별설교

힘들어도 해야 할 일-사명자 예레미야 예레미야 20:7-13/ 안희환목사

안희환2 2011. 11. 22. 16:25

힘들어도 해야 할 일-사명자 예레미야 예레미야 20:7-13

 

 

1. 예레미야가 당하는 고난

 

오늘의 본문으로 돌아오자. 오늘 본문에서는 예레미야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고난에 대해 탄식하며 아뢰이는 내용이 나온다.

 

-예레미야가 당하는 고난의 성격은 무엇인가? 첫째로 예레미야의 고난은 그가 겪는 인격적인 모독 때문에 발생한다는 점이다. “조롱, 치욕, 모욕, 비방등의 표현은 예레미야가 당하는 인격적인 모독의 극심함을 잘 표현하고 있다.

 

사람들마다 고난의 종류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고통을 당한다. 어떤 사람은 가족들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 어떤 사람은 질병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 어떤 사람은 인간관계로 인해 고통을 당한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인격적인 모독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다.

 

여러분이여. 우리는 사람에게서 무시를 당하거나 모욕을 당한다는 것이 얼마나 열 받는 것이며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차라리 맞붙어 싸우는 것이 낫지 놀림감이 되고 조롱거리가 되는 것은 견디기 힘든 것이다. 왕따의 고통.

 

더구나 그런 인격적인 모독이 한번이나 몇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적으로 이뤄진다면 얼마나 마음이 상심이 되고 답답할까? 그것도 한 두 사람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나를 조롱하고 나의 인격을 모독한다면 얼마나 살고 싶지 않고 힘이 들까?

 

실제로 예레미야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탄식하기도 한다. “14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미가 나를 생산하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15 나의 아비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기를 네가 생남하였다 하여 아비를 즐겁게 하던 자가 저주를 받았더면, 16 그 사람은 여호와께서 훼파하시고 후회치 아니하신 성읍 같이 되었더면, 그로 아침에는 부르짖는 소리, 낮에는 떠드는 소리를 듣게 하였더면, 17 이는 그가 나를 태에서 죽이지 아니하셨으며 나의 어미로 내 무덤이 되게 하지 아니하셨으며 그 배로 항상 부르게 하지 아니하신 연고로다 18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수욕으로 보내는고”(20)

 

무슨 말인가? 자신이 태어날 때 죽어서 나왔으면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았을 텐데 하는 뜻이다. 얼마나 고통이 극심했으면 자신이 태어난 것 자체에 대해 탄식을 할까?

 

2) 친한 벗들로 인한 상처

 

예레미야가 당하는 고난의 성격은 무엇인가? 둘째로 친한 벗들로 인한 상처가 있었다고 하는 점이다.

 

여러분이여. 친구가 무엇인가? 서로 간에 우정을 나누는 존재가 아닌가? 어려울 때 서로 돕고 힘이 되어주는 것이 친구가 아닌가?

성경엔 친구에 대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17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17). “10 네 친구와 네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며 네 환난날에 형제의 집에 들어가지 말찌어다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나으니라”(27)

 

실제로 요나단은 위기에 있는 다윗에게 용기와 위로를 준 멋진 친구로 나타난다. 요나단은 자기의 아버지며 이스라엘의 왕인 사울이 친구인 다윗을 죽이려 했을 때 자신의 생명을 걸고 다윗을 도우려 한다. 모든 사람들이 다윗을 등지는 와중에서 요나단은 자신이 물려받을 왕권을 위협하는 다윗을 위해 모든 것을 건다. 참으로 요나단은 친구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친구들로부터 그런 위로와 용기를 얻지 못한다. 거꾸로 친한 친구들로부터 공격을 당한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히는 신세가 된 것이다. 자신의 타락을 기다리는 친구들에 둘러싸인 예레미야, 그는 도움을 받고 힘을 얻어야 할 사람들로부터 확실한 왕따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에 느끼는 배신감과 소외는 예레미야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가 되었을까? 그는 실로 커다란 고통의 한복판에 놓여있는 것이다.

 

3) 고난의 원인인 말씀

 

예레미야가 당하는 고난의 성격은 무엇인가?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인해 생긴 고난이라는 점이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여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라고 예레미야는 고백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만 않았어도 편히 살 수 있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덕분에 그 모든 고난을 겪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레미야의 고난은 주를 위한 고난이라는 데에 그 특성이 있다.

 

 

2. 고난 중에 예레미야가 한 일

 

그러면 이런 고난의 와중에서 예레미야가 한 일은 무엇인가? 그가 고난 중에 한 일이 무엇이기에 하나님의 종다운 면모를 드러낼 수 있었는가?

 

1)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상기

 

첫째로 예레미야는 고난의 와중에서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상기하고 있다.

11.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큰 치욕을 당하오리니 그 치욕은 길이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능력이다. 예레미야의 고백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이기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을 대적하다가 자신만 망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셨을 때 어떤 일이 발생했는가?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하시니까 나라의 최고 권력자인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그렇게 난리를 폈는데도 다윗을 어찌하지 못했다.

 

그러기에 다윗은 하나님을 향하여 분명하게 고백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23:1-4). 따라해보자.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2) 하나님을 찬양

 

고난의 와중에서 예레미야가 한 일은 무엇인가? 둘째로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13.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객관적으로 볼 때 예레미야는 분명 찬양할만한 처지가 아니었다. 사실 예레미야는 죽음의 위협 가운데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생명의 건짐만 받았을 뿐이지 상황이 나아진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예레미야의 예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오히려 예레미야를 매국노 취급하고 괴롭힌다. 예레미야에게는 용기를 주거나 힘을 돋구어주는 가족이나 친지도 여전히 없다. 그는 완전히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라도 있으면 그나마 자기편이 하나라도 있으련만 예레미야는 아내도 없다. 게다가 예레미야는 천성이 여리고 유약한 사람이다. 또한 현재의 모습으로 보건대 앞으로 그의 처지가 좋아지리라는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는 고통 속에서 찬양을 잊지 않고 있다. 그는 참으로 하나님의 사람이요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이 아닌가?

 

여러분이여. 여러 가지로 힘든 환경 속에 있는 분들이 많이 보인다. 그런 와중에서 하나님 앞에 나와 찬양하는 여러분이여. 분명히 선언한다. 여러분들은 참으로 하나님의 사람답다.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들이다.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란다.

 

1879년 어느 여름날에 [루이자 스테드] 여사는 남편과 네 살난 아들과 함께 뉴욕의 동 아일랜드 사운드에 있는 해수욕장에 갔다. 그들이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 살리라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한 소년이 익사 직전에 있었다. [스테드]씨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소년에게로 헤엄쳐 갔다. 소년은 자기를 구원하러 온 그를 물 속으로 끌어들여 두 사람 모두가 익사하고 말았다. 목전에서 남편이 익사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한 순간에 남편을 잃어버린 [루이자 스테드] 여사는 비통한 통곡 속에서 "?"라는 물음을 던지며 하나님을 원망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와 많은 고생 끝에 이제 겨우 행복한 가정을 꾸몄는데 너무나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망 중에 일주일 동안을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할 때이다. 어느 순간 스테드 여사의 마음에서 한 찬송시가 뭉개구름처럼 피어 올랐다. 이 찬양이 우리의 찬송가에 실려있다.

 

"구주 예수 의지함이 심히 기쁜 일일세 허락하심 받았으니 의심 아주 없도다

구주 예수 의지하여 죄악 벗어 버리네 안위받고 영생함을 주께 모두 얻었네

구주 예수 의지하여 구원함을 얻었네 영원무궁 지나도록 함께 계시리로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그녀는 고난과 아픔 속에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성도의 기쁨이요 믿음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 후 그녀는 아프리카의 [케이프 콜로니]로 가서 선교사로 활약했다. 1917118일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그곳의 원주민 성도들이 그녀의 시체를 블랙 마운틴 중턱의 큰 바위에 구멍을 뚫어 암자를 만든 후 그곳에 안장시켰다. 흑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평생을 헌신한 [스테드] 여사에게 최선의 대우를 한 것이다.

 

또한 그녀가 죽었을 때 동료 선교사였던 [그릴레이]는 다음과 같이 그녀를 추모했다. "그녀는 갔지만 원주민이 그 찬송을 부르는 한 그녀는 끊임없이 우리 속에 살아 있을 겁니다."

 

3) 계속적으로 말씀을 전파함(사명을 감당함)

 

고난의 와중에서 예레미야가 한 일은 무엇인가? 넷째로 예레미야는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그것이 예레미야의 사명이었기 때문이다.

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는가? 고통의 한복판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끝없이 감당해나가는 예레미야의 모습이 우리를 자극하지 않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한 고통이 너무 힘겨워서 잠시 말씀을 전하지 않았지만 가슴에 붙은 불길이 너무 뜨거워져서 다시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예레미야는 돈을 위해 일하는 삯군도 아니요, 상황에 따라 변하는 변절자도 아니요, 말씀 전파에 자신의 삶을 걸었던 사명자였던 것이다.

 

 

결론

 

결론적으로 말씀드린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들에게도 고난은 있다. 솔직히 예레미야 만큼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럼에도 그는 고난을 겪지 않았는가? 그러나 예레미야에게 있어 고난은 예레미야를 망하게 한 것이 아니라 예레미야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게 했을 뿐이다. 오히려 예레미야로 하여금 더욱 위대한 사명자가 되게 했을 뿐이다.

 

원하기는 나와 여러분 고난으로 인해 무너지는 자가 아니라 고난으로 인해 믿음이 증명되는 자가 되길 원한다. 예레미야는 고통의 와중에서 무엇을 함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충성된 종임을 드러냈는가?

 

첫째로 예레미야는 고난의 와중에서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심을 상기하고 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 아닌가? 하나님이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지 않은가? 삶의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잊지 않는 나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란다.

 

둘째로 예레미야는 고난의 와중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요즘 계속 중복되는 메시지가 아닌가? 여러분의 입에서 찬양이 그치지 않았는가를 다시 한번 점검하라. 마귀가 여러분을 넘어뜨리러 왔다가 여러분에게서 흘러나오는 이해할 수 없는 찬송을 듣고 기겁하게 하라. 찬양이 원망과 불평을 압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한다.

 

셋째로 예레미야는 고난의 와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적으로 전한다. 그것이 그의 사명이었기 때문이다. 바울도 그랬고 초대교회 성도들도 그랬다. 어렵고 힘드신가? 그래도 복음을 전하자. 고난의 한복판에서 말씀을 전하는데 하나님이 이 교회에 부흥을 안 주시겠는가? 올 한해 부흥을 경험하는 나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