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용수 정치부 기자
우리 정부가 올여름 폭우로 수해를 입은 북한 주민을 돕기 위해 마련한 지원 물자가 북한에 가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준비한 지원 물품은 영·유아용 영양식 140만개, 과자 30만개, 초코파이 192만개, 라면 160만개 등 50억원어치다. 제때 황해도와 강원도 수해 지역 주민들에게 전달되면 요긴한 식량이 될 수 있다.
지원 물자를 보내겠다는 대북 통지문을 지난 6일에 보냈지만 북쪽에선 3주가 다 되도록 답이 없다. 통일부 관계자는 "받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정부 소식통은 "우리가 준비한 지원 물자가 '체제 유지에 도움이 안 된다'고 봤기 때문"이라며 "북한이 원하는 건 오직 쌀과 시멘트"라고 했다. 실제 북한은 지난달 초 정부가 대북 수해 지원 의사를 밝혔을 때 "쌀과 시멘트를 보내 달라"고 했다.
북한은 특히 쌀이 절실하다. 쌀이 있어야 배급제로 살아가는 당 간부, 평양 시민, 군인 등 북한 권력 유지에 필요한 400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 배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나머지 주민 2000만명은 '각자도생'해온 지 오래다.
일각에선 '이왕 줄 거면 북한이 달라는 대로 통 크게 주자'는 주장도 한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들은 "북한 사정을 안다면 그런 말을 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북한은 장마당 중심의 지하경제가 급속 성장해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기반을 뒤흔들고 있다. 북한 가정 1세대의 생활비 8만~9만원 중 국영공장·기업소가 주는 임금은 1만원도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다양한 부업과 자영업을 통해 번다.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 식량·물자 지원은 휘청대는 계획경제와 배급제를 회생시켜 북한 당국의 시장 통제 능력만 키워줄 게 뻔하다. 대규모 지원이 애당초 기대한 인도 지원 효과보다는 주민 억압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얘기다.
대북 지원은 이제 "그냥 주자"는 단순 논리로 접근할 단계를 지난 듯하다. 대북 지원이 북한 내부에 어떤 정치·경제·사회적 파급 효과를 가져올지를 따져봐야 하는 고차원 방정식으로 변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