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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위해 봉사하느라 아플 시간이 없어요"유마디 기자 umadi@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안희환2 2011. 8. 2. 17:03

"남 위해 봉사하느라 아플 시간이 없어요"

입력 : 2011.08.02 03:03

방배동 복구현장의 베테랑 자원봉사자 국태현씨… 10년前 시한부 선고 기적적으로 극복
건설업체서 일하다가 "길어야 1년" 선고받고
"남 돕다가 죽겠다" 결심… 도움 필요한 곳 찾아다녀

"내가 시간이 없어요. 가면서 얘기합시다."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방배2동 주민센터 앞에서 만난 국태현(65)씨는 낡은 등산복 차림이었다.

그가 탄 회색 스타렉스 차량엔 삽, 마대, 장갑, 고무장화가 가득 실려 있었다. 서초구 주민센터 5곳과 우면산 산사태 피해복구 지역에 전달할 물품들이라고 했다.

"재해가 발생하면 피해를 본 사람도, 도우러 온 사람도 우왕좌왕하게 되죠. 마음은 앞서는데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으니까요. 얼른 가서 힘을 모아야지요."

우면산 산사태 피해 지역에 전달할 생수를 운반하는 베테랑 자원봉사자 국태현씨. 서초구 자원봉사센터에서 10여년째 봉사하는 그는 “돈을 버는 것보다 남을 돕는 일이 더 행복하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국씨는 지난달 27일 서울성모병원에서 자원봉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던 중 우면산에 산사태가 났다는 뉴스를 듣고 곧바로 서초구자원봉사센터로 달려갔다. 센터 직원에게 "복구작업에 필요한 물품을 구해 올 테니 필요한 수량을 조사해놓으라"고 당부한 뒤 남대문, 동대문 일대 새벽시장을 돌며 물량을 확보했다. 마대 4000장, 장갑 3000족, 고무장화 350족이 그의 손을 거쳐 센터와 복구작업 현장에 전달됐다. 덕분에 복구 작업도 차질 없이 이뤄졌다.

서초구자원봉사센터 직원 윤영미(33)씨는 "서초구에 자연재해가 드물어서 이번 사태로 모두 혼비백산했다"며 "국씨가 아니었으면 현장에 빈손으로 가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할 뻔했다"고 말했다.

중견 건설업체에 근무하던 국씨는 지난 2000년 서울의 한 병원에서 시한부 생명이라는 선고를 받았다. 당시 그는 췌장암 의심 판정을 받았고 간에서 종양이 7개 발견됐으며, 만성간염에다 당뇨병까지 심각한 수준이어서 길어야 1년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잦은 음주와 과로로 건강을 돌보지 못했던 탓이다.

치료를 받으면서 국씨의 몸은 극도로 쇠약해졌다. 계단 세 칸을 오르면 잠시 쉬어야 할 정도였다. 도움을 받지 않으면 걷기도 힘들었다. 처음엔 아내(63)와 아들, 두 딸 생각만 났고 매일 밤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죽음이 임박했다고 느끼면서 "내가 정신없이 살아오면서 남을 도와본 적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언제 죽든 간에 나도 남을 한번 도와보자"는 결심을 하게 됐다. 그는 "그땐 나도 왜 그런 결심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인생 마지막을 선하게 정리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때부터 국씨의 직업이 '자원봉사'로 바뀌었다. 국씨는 집 근처의 서초구자원봉사센터와 서울성모병원 중환자실로 나가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환자복을 갈아입히고 피 묻은 시트를 정리했다. 치매에 걸린 노인의 기저귀를 갈았고 무연고자로 사망한 사람들의 화장(火葬)도 도왔다.

국씨가 봉사활동에만 전념하자 친구들은 "일할 수 있는 힘으로 왜 봉사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회사에 다닐때는 모든 게 돈으로 보였지만 남을 위해 희생하는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고 답했다.

이왕 남을 돕는 데 자기 체력이 떨어지면 안 될 것 같아 운동을 시작했다. 매일 10㎞씩 걷고 새벽같이 일어나서 등산도 했다. 2004년부터 기적처럼 국씨의 건강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종양도 큰 문제가 아닌 것으로 판정이 났다.

그는 건강을 회복한 이후에도 자원봉사를 계속하고 있다. 자기에게 남은 삶은 선물 같은 것이며, 이것을 이웃들에게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는 "죽을 때까지 남을 위해 봉사할 겁니다. 제겐 그게 행복이니까요"라고 했다. 인터뷰를 마친 그는 "빨리 현장에 가야 한다"며 27일 우면산 산사태로 피해를 본 마을을 향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