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상상력엔 남이섬 14만평도 좁다
'책벌레'와 '상상가'에게 빈 소주병을 주고 재활용을 주문한다. 병 속을 깨끗이 씻어 그 안에 기름을 담는 이는 책벌레다. 상상가가 피식 웃는다. 빈 소주병을 불에 녹인 다음 주둥이를 잡아당겨서 비튼다. 비췻빛 꽃병이다. 납작하게 누르고 뭉쳐도 본다. 비췻빛 타일, 보도블록, 샹들리에, 커튼, 심지어 크리스마스트리가 탄생한다.삼류 유원지에 나뒹굴던 빈 소주병들이 그렇게 아름다운 '작품'으로 변신했다. 고성방가 난무하던 쓰레기 섬이 대한민국에 유례가 없는 생태문화관광지로 부활했다.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른 상상가의 이름은 강우현(58). '우왕좌왕', '좌충우돌'을 모토로 삼고 사는 철없는 중년이다.
마흔아홉 살에 시작한 모험이었다. 교수 자리를 마다하고 접수한 문제투성이 섬이라 주위에선 혀를 찼다. 섬 주인에겐 두 가지만 요구했다. 월급 100원과 맘껏 상상하고 저지를 수 있는 자유. 10년 후. 27만명(2001년)이던 남이섬 관광객이 200만명(2010년)을 돌파했다. 1년 매출이 200억원대다. 삼성, 포스코, LG의 임직원들이 '경영수업'을 받으러 남이섬으로 몰려온다. "한 수 배우겠다"며 대통령도 오고 도지사도 온다. "재미나서 내 마음대로 한 것뿐인데 사람들이 창조 경영, 역발상 경영이라며 찾아오네요. 162명 중 157등이었던 낙제생을 찾아오네요. 하하!"
9월로 남이섬 CEO 취임 10년을 맞는 강우현을 만나러 갔다. 선착장엔 전에 없던 철탑이 솟아 있다. 25층 아파트 높이의 철탑에서 쇠줄을 타고 남이섬으로 날아서 들어오란다. 외마디 비명은, 반달 모양 14만평 섬의 풍광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고공(高空)에서 곧장 탄성으로 바뀌었다. 장난기 가득한 눈동자를 굴리며 강우현이 물었다. "배 타고 들어오는 것보다 100배는 재미나지요?"
- ▲ “이것도 내 작품!” 25층 높이의 철탑에서 강우현 사장이 쇠줄을 타고 남이섬으로 낙하하고 있다. 반달 모양 남이섬 풍광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재활용 은행잎
―10년 사이 스타가 되셨다.
"나는 그냥 53년생 강우현일 뿐이다. 영원히 53세이고 싶은 남자일 뿐이다.(웃음)"
―취임 10년을 맞은 소감은?
"날 잘 아는 사람들은 두 가지에 놀라워한다. 산만 한 내가 10년이 되도록 안 잘린 것, 매출이 한 번도 꺾인 적 없는 것."
―술병으로 트리 만들고, 고장 난 양변기로 화분 만들고, 죽은 나무엔 시를 쓴다. 쓰레기만 골라 섬을 단장한다.
"애당초 섬을 꾸미고 말고 할 돈이 없었다. 처음엔 돈 아끼려고 재활용, 지금은 습관이 되어 재활용한다."
―가을이면 온통 노란빛으로 물드는 '은행나무 길'도 재활용이라고 들었다.
"남이섬은 겨울이 일찍 온다. 은행잎도 빨리 떨어지고. 집이 서울 송파에 있는데 가을이면 거리에 은행잎이 천지여서, 구청장에게 물었다. 저 은행잎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고. 청소해 매립하는 데만 4000만원이 든단다. 옳거니, 전부 나 달라고 했다. 은행잎 200t을 남이섬에 뿌렸더니 연인들 뒹구는 은행나무 카펫이 됐다."
―'상상력'이 비결이라지만, 당신은 굉장한 현실주의자다.
"무지하게 현실적이지. 우리 어머니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일 좀 그만하라'고 혀를 차셨지만 내게는 다 실현 가능한 일들뿐이었다. 나는 상상, 공상에서 멈춘 적이 없다."
―취임할 때 화제가 됐던 '월급 100원'도 결과적으로는 매우 실리적인 거래였다.
"월급은 100원만 달라고 했지만, 매출이 두 배 이상 오르면 수익금은 내가 다 갖겠다는 옵션을 걸었다. 그땐 누가 봐도 매출이 오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거래가 성사됐다.(웃음) 그만큼 뭘 해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남이섬 사장이 되기 전에도 벌여놓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본업인 그래픽 디자인에 동화도 쓰고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도 이끌고. 재생용지로 공책 만들어 나눠주는 환경운동까지 했더라.
"그래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거지. 그런데 그런 경험들이 지금 남이섬을 키워가는 데 엄청난 자양분이 됐다. 네트워크가 장난 아니다. 독에서 흘러나온 물이 흙에 스며들어 아무 데나 씨를 뿌려도 열매가 생기고 꽃이 핀다.(웃음)"
월급 100원 사장
내 맘대로 하는 조건으로 대학원장 자리 대신 택해
재미나서 한 것뿐인데 창조경영이라며 배우러 와
재활용으로 재탄생
술병 트리·양변기 화분… 서울서 버린 은행잎으로 명물 '은행나무 길' 만들어
직원 정년
80세경륜 넘치는 선배세대 조기퇴진은 어불성설
종신 직원 되면 죽을 때까지 月80만원
◆14만평짜리 캔버스
―유명대학 대학원장직을 제안받았다던데, 왜 남이섬을 선택했나.
"남이섬의 달빛, 별빛, 그리고 새벽 물안개를 보았다면 누구라도 이 섬에 매료당한다. 내가 섬을 좋아하니 주인장이 작업실을 하나 내주더라. 틈날 때마다 와서 그림을 그려 작업실 밖에 걸어두었더니 관광객들이 그 앞에만 모여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너가 찾아왔다. '디자이너가 남이섬 사장 하면 재미있지 않을까요?' 하더라. 아무것도 간섭받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수락했다."
―열에 아홉은 빚투성이 섬 대신 교수 자리를 선택한다.
"내 입장에선 14만평짜리 캔버스를 공짜로 얻는 셈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사장 되고 나서 처음 한 일이 청소였다.
"흥청대는 유원지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하니까. 음식 가격 내리고, 술집은 섬 밖으로 내보냈다. 술판, 스피커 고성이 사라지니 남이섬에 고요가 찾아왔다. 전깃줄은 땅속에 묻고, 알록달록한 천막은 치우고, 폐품은 재활용하니 남이섬에 자연색이 돌아오더라. 밤 10시면 무조건 불을 껐다. 별빛과 달빛이 살아났다. 나무에 농약을 안 치니 벌레가 생겼고, 벌레가 생기니 새들이 날아왔다. 새똥에 묻어온 씨앗에서 야생화가 피어났다."
―고생도 많이 했다. 섬에서 쫓겨난 상인들의 공갈협박에 시달렸고, 보복성 고소고발로 경찰서도 번질나게 드나들고.
"60번도 넘는다.(웃음) 한번은 밤 10시 넘어 배를 타고 섬을 나오는데 괴한들이 달려들어 나를 강물에 빠뜨리더라. 그 후론 어떤 일을 당해도 겁 안 난다. 당하고만 있을 수 없어서 라면 두 박스 분량으로 우리도 그들의 죄를 고발했다. 5년 만에 평화의 시대가 왔지. 재밌는 게, 고소고발로 전과가 수십 건인 나한테 대검찰청에서 남이섬 성공 스토리로 특강해달라는 요청이 온다."
- ▲ 사진=채승우 기자
―한류의 원조 '겨울연가' 덕을 많이 봤다.
"취임한 그해 11월 윤석호 감독이 남이섬으로 답사를 왔다. 직원이 드라마 촬영 견적비를 200만원 잡아 제시했다기에 내가 깜짝 놀라 윤 감독에게 달려갔다. 촬영료라니! 언제든 와서 찍고 가시라고 했다. 제작발표회도 남이섬에서 해주면 통돼지 잡아드리겠다 약속했지. 운이 좋게도 그해 남이섬에 눈이 펑펑 쏟아졌고, 제작발표회 날 눈 덮인 남이섬이 전국에 생중계됐다."
―외국인 관람객도 1년에 20만명이나 된다더라. '겨울연가' 특수가 아직도 이어지는 걸까.
"드라마의 영향력은 길어야 3년이다. 한번 꺾이면 롤러코스터다. '겨울연가' 너머의 무엇을 팔아야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게 '세계책나라축제' '세계청소년공연축제' 같은 국제문화 행사다. 유니세프, 환경운동 단체들의 활동 터전을 섬 안에 만들어주고, 국내외 예술가들이 창작활동 할 수 있게 방갈로를 예술가의 집으로 꾸몄다. 봄 축제 때는 국내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맘껏 놀고 쉬다 가라고 차편, 배편, 음료와 식사를 공짜로 제공한다. 세계 최고 아동문학상인 한스 안데르센상 공식스폰서 자격도 일본 닛산자동차를 제치고 우리 남이섬이 따냈다. 세계화가 살길이다."
―직원 100명 중에는 전직 교장, 대기업 임원, 공무원, 화가도 있다더라. 정년 80세라는 고용방식으로 화제가 됐다.
"사오정, 오륙도라는 말로 경륜 있는 선배 세대의 조기 퇴진을 당연시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우리는 직원을 뽑을 때 나이, 학력, 경력을 묻지 않는다. 정직하고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이 최우선 자격이다."
―남이섬엔 언제까지 있을 건가.
"딱 10년만 하려고 했는데 '조폭' 같은 우리 직원들이 다리를 잡고 안 놔준다. 내가 섬에 있으면 일이 많아져서 싫지만, 없으면 불안하단다.(웃음)"
―직원들을 혹사시키나 보다.
"남이섬은 온종일 행사고 1년 내내 축제니까. 행사도 외부에 용역을 주지 않고 직원들이 전쟁 치르듯 치열하게 한다. 직접 기획하면 엄청난 상상력이 동원되고 그 경험이 개인의 역량 개발로 이어진다."
◆책 읽지 말고 놀아라
―어릴 땐 산만하고 엉뚱한 게 공부 못하는 아이의 전형이었다.
"배운 게 많고 책에서 읽은 게 너무 많으면 상상할 수 없다. 빈 술병을 기름병 정도로 쓰는 게 책벌레들의 한계다. 술병을 녹여서 굴려보고 눌러보면 장난감도 만들고 조명등도 만들 수 있다. 나는 책읽기 대신 많이 보고 만지고 경험했다. 장난도 많이 쳤지. 유치해져야 상상할 수 있다."
―용의주도한 스타일은 아니다.
"투석문로(投石問路). 먼저 돌을 던져놓고 길을 묻는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야 한다는 말이 제일 싫다. 뒤도 잘 안 돌아본다. 돌아본다고 그 발자국을 도로 밟을 수도 없잖은가. 차라리 새로운 발자국을 내는 게 낫지."
―남이섬으로 낙하하는'집 와이어(zip wire)'는 강우현의 '상상+추진력'의 산물이다.
"나는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일단 그림으로 그린다. 2001년 남이섬에 들어와서 저 쇠줄을 그렸더랬다. 배 대신 공중에 줄을 매어 타고 들어오면 얼마나 재미날까, 하면서. 실제로 그런 기구가 해외에 있더라. 완전 무동력이다."
―2010년 집 와이어를 개시하던 날 김문수 경기도지사,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도 왔다.
"남이섬에 쇠줄 타고 들어오라고 홍보해야 하는데, 두 도지사 얼굴이 떠올랐다. 남이섬은 행정구역상 강원도 춘천이지만 지리적으로는 경기도 가평에 가까우니 두 도에 걸쳐 있는 셈이다. 두 분 다 참석 가능하다는 말을 전해 듣고 보도자료 안 뿌렸다. 방송카메라들이 안 따라오고 배기겠나. 내가 헤드라인은 좀 뽑을 줄 안다.(웃음)"
◆성공은 실패의 아버지
―집무실 천장에 매달린 '도깨비 방망이'는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잘나갈 때 자만하지 말라고 뚝딱! 잘 안될 때 걱정하지 말라고 뚝딱!"
―낙천적이시다.
"안 되는 일 돌아보면서 불평할 시간이 내게는 없다. 할 수 있겠다 싶으면, '아닐 불(不)' 자는 다 빼고 뛰어든다. 성공 여부는 내가 정하는 거다."
―솔직히 남이섬이 '작품'으로서 완성도가 있는 섬은 아니다. 재미난 재활용 섬일 뿐이지.
"예술? 너나 하라고 하세요."
―남이섬의 성공 비결은?
"시동을 걸되 거꾸로 거는 것. 성공은 실패의 아버지! 웃음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성공했다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이 위기다."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장난'은?
"남이섬 컨셉트를 가지고 산과 골짜기로 들어갈 거다. 돈 안 되는 일만 벌이는 괴짜들, 발명가들의 창조 밸리를 만들 거다. 헬기 타고 답사하러 다닌다고 내가 요즘 바쁘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