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룬을 위해 기도합시다/ 안희환
인구 2005년 어림 16,322,000명 (58위)
카메룬(문화어: 까메룬), 공식 명칭 “카메룬 공화국”은 중앙 아프리카의 단일제 국가이다. 나이지리아, 차드,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콩고 공화국, 가봉, 적도 기니, 기니 만과 접경하고 있다. 1884년에 독일의 보호령이 되어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 독일의 식민지였던 카메룬은 독일이 전쟁에서 지자, 프랑스와 영국이 분할 점령하였다. 1960년 프랑스령 카메룬은 독립 공화국이 되고 1961년에 영국령 카메룬의 남쪽 부분을 합병하여 카메룬 공화국을 형성하였다. 1972년에 카메룬 연합 공화국으로 명명되었다. 1978년 연방제를 폐지하고 카메룬연합공화국으로 개칭했다가 1984년에 카메룬 공화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수도는 야운데이다. 사나가강과 베누에강이 흐르며, 중앙상부에 아다마와 고원과 카메룬산(4,070m)이 있다. 연평균 기온은 2 ∼30 이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 비해서 카메룬은 비교적 정치와 사회가 안정되어 있다. (2009년 10월 까지) 이는 농업, 도로, 철도, 특히 석유산업의 발달에 기인한다. 정치적 개혁 운동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권력은 인종적인 과두정 형태를 굳게 유지하고 있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주민의 70% 정도가 종사한다. 코코아·커피·땅콩·고무 등이 수출용으로 재배되고 있고, 코코아는 세계 5위로 주요 수출품목이다. 지하자원으로는 보크사이트·철 등이 풍부하며 석유생산이 본격화되고 있다. 주민은 반투족·세미반투족·햄족과 셈족의 혼혈족 등 수십개의 부족이 살고 있다. 공용어는 영어와 프랑스어이다. 오늘날에 카메룬의 범죄률은 세계에서 2위를 차지한다. 종교는 부족신앙과 북부는 이슬람교, 남부는 그리스도교가 강하다.
역사
현재 카메룬 지역은 신석기 시대 동안에 최초의 거주자가 나타났다.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거주자들은 바카(Baka) 등의 민족들이다. [2] 사오(Sao) 문명이 500년 경에 차드 호 부근에서 발생했고, 카넴(Kanem) 제국과 그를 계승한 국가들(보르누(Bornu) 제국 등)로 이어졌다.
1884년에서 1919년까지 독일의 식민지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연합군에게 지면서 영국과 프랑스가 양분해서 지배했다.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으며, 1961년 서 카메룬과 통합했다. 1992년 다당제 선거를 실시했지만, 부정선거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지리
전체 면적은 457,123 ㎢이며 세계에서 53번째로 큰 나라이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주보다 약간 크며 파푸아뉴기니와 거의 면적이 비슷하다. 아프리카 대륙의 중서부에 위치하며 기니 만과 대서양인근과 접한다. 여행객들의 수기를 보면 카메룬은 아프리카의 미니어쳐라고 묘사되는데 모든 주요 기후와 식물군이 카메룬 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해안, 사막, 산악, 우림, 사바나에 이르기까지 모든 아프리카의 지리적, 기후적 특질을 카메룬에서 경험할 수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서쪽으로는 나이지리아, 북동쪽으로는 차드, 남쪽으로는 적도기니 등과 접한다.
카메룬은 5개의 주요 지방으로 구분될 수 있는데 기후와 지리적 특성을 고려한 것이다. 해안 평원은 15150km 정도로 뻗어 있으며 기니만 과 함께 평균 90cm 정도의 해발고도이다. 남카메룬 평원이 나타나며 이 지역은 평균 고도 123m 정도이다. 적도 인근에는 열대우림이 대부분이지만 우기와 건기가 번갈아 나타나기 때문에 덜 습하다.
산맥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서 산 지형이 불규칙적으로 나타나는데 카메룬 산이 4,095m anaal로 솟아 있다. 서부 지역의 고원으로 가면 강수량이 높아지는데 기후는 대체적으로 따뜻한 편이다. 카메룬 내에서도 가장 토질이 비옥하다.
외교
한국과의 관계
대한민국과는 1962년에 공식수교하였으며 북한과는 1972년 수교하였다. 우리나라는 1969년 1월부터 카메룬에 상주대사관을 유지하여 왔으나, 1998년 외환위기의 여파로 상주대사관을 철수한 후 주나이지리아대사관에서 겸임하다가, 2008년 9월에 상주대사관을 재개설하였다.
그밖의 주변국들과의 관계
카메룬은 차드, 니제르등과 사이가 매우 좋지 않으며, 1970년 당시에는 카메룬은 이 나라들과 민족 다툼도 있었다.
경제
산유국인 카메룬은 2007년 일산량 8만2천 배럴로, 아프리카 대륙 내 11위의 생산량을 기록하고 있으나 기존 유전지대의 개발이 완료되어 1990년 이래로 생산량은 감소추세를 기록하고 있고 새로운 유전지대가 추가로 발견되지 않아 향후 산업다각화를 통한 석유의존적 경제구조의 탈피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3]
주민
주민은 남부와 서부는 반투계의 팡족, 바미레케족, 바가족, 북부는 수단계의 둘족, 풀라니족 등으로 나뉜다. 민족 집단은 275개 이상으로 나누어져 있다.
언어
1996년 1월 18일자 헌법 1조 3항에 "공용어는 영어와 프랑스어다. 두 언어는 동등한 지위를 갖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10개주중, 2개주는 과거 영국의 식민지여서 영어를 공용하고, 8개주는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여서 프랑스어를 공용하고 있다. 즉, 법적으로 동등하다고 명문화했다는 것이 실제에서는 역설적으로 동등하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 밖에 영어, 팡어, 풀라니어 등이 사용되고 있다
카메룬은 영연방과 프랑스어사용국기구(프랑코포니)의 정회원국이다.
종교
종교는 현지 부족들이 믿는 토착종교가 40%(주로 남부), 그리스도교가 63.2%(개신교 22%, 가톨릭 40%,주로 남부), 이슬람교가 24%(주로 북부)이다.
1. 현재 나타나고 있는 종교의 자유, 교회성장, 전국에 걸친 영적부흥을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자. 그러나 전체적인 상황이 아직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태이다.
1) 정치적 불확실성과 내전의 위험성. 정부 내 끊임없는 부정부패와 공정한 선거를 거부하는 국가 지도자들로 인해 불만이 가득하다. 평화적인 변화와 지도력을 통해 인종적으로, 종교적으로 갈라져 있는 이 나라가 단합되도록 기도하자. 이런 단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큰 재앙이 초래될 것이다.
2) 기독교인들의 영적 빈곤. 널리 퍼져 있는 명목주의와 자유주의적인 가르침은 교회에 다음과 같은 결과를 초래했다. 영적 기준을 낮추고, 기독교인 사이에 사교적 관습이 행해지고, 지도자들의 교만, 타협, 죄가 도전받지 못하고 있다. 깊은 회개, 계속되는 구원의 역사, 진정한 부흥, 성경읽기, 전도와 성결한 삶이 기독교인들 가운데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자.
2. 기독교가 중부과 남부에서 우세하다. 장로교, 침례교, 루터교 선교사들의 일세기에 걸친 노력의 결과이다. 아직도 교단과 언어의 장벽으로 교회지도자들의 영적교제를 개발하는 것과 공동목표의 달성이 방해받고 있다.
3. 북부는 여전히 개척지로 기독교인이 상대적으로 적다. 수년 동안 회교도인 풀라니족이 이 지역의 무역과 정치를 지배해 왔다. 교회가 그들 주위의 회교도와 이교도에 대해 강력히 복음을 증거하도록 기도하자.
4. 신학 훈련이 매우 필요하다. 북부지방을 벗어나면 복음주의자가 별로 없다. 카메룬에 있는 10개의 공인된 교단과 교단간 신학교에 거듭나고 경건한 국내외 교수들이 충원되도록 기도하자. 또한 이런 신학기관과 신학교가 교회 내에 오랫동안 박탈당했던 새생명과 성경적 기준을 가져올 수있는 영적 혁명을 위해 기도하자.
5. 성경번역. 카메룬의 275개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카메룬인과 외국인들이 소명을 받고 훈련되어 이 사역에 동참하도록 기도하자. 토착어 성경의 부족이 교회 내 영적 빈곤의 주된 원인이다.
6. 개척 선교사가 회교도 지역과 북부 이교도종족을 위해 필요하다. 또 성경번역 사역을 위한 선교사가 필요하다. 복음주의 선교사들이 명목상의 교회에 새생명의 탄생과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으나 그렇게 하기 위한 기술과 은사가 필요하다.
7. 복음전도가 미미한 종족. 이 나라의 모든 지역과 종족의 영적 필요에 대한 주의깊고도 깊이 있는 연구가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자.
8. 지원사역을 위해 기도하자.
1) 기독교 문서가 널리 충분하게 이용되지 않고 있다. 국외추방자든 본토인이든 문서선교를 위해 일할 일꾼들 곧 영어, 프랑스어, 지역 방언으로 집필하고 출판하여 보급할 국내외 문서 사역자가 필요하다.
2) 카세트 테이프 사역이 교회 내에 이용되고 있다. 많은 언어가 사용되는 이 땅에서 이것은 아주 유용한 도구이다.
3) 기독교 라디오 프로그램이 지방 방송국을 통해 방송될 수도 있다.
4) 영화 "예수"가 아다마와 풀라니어로 녹음되었다.
한국인터넷선교네트워크 http://cafe.naver.com/internetministry
국제인터넷선교회 http://cafe.daum.net/gogogoc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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