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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사관을 찾아가는 길/ 김영권

안희환2 2010. 1. 20. 07:22

한국대사관을 찾아가는 길/ 김영권


할아버지는 그 날 오후 2시경에 돌아왔는데 자기가 잘 아는 교포 할머니 한 분이 친척 방문으로 일시 남조선으로 가게 된다고 하며 그 수속 때문에 모스크바 남조선 대사관에 일시 떠난다는 것이다. 그 날 저녁 나는 노인과 함께 그 집으로 찾아갔다. 할머니는 나의 말을 다 듣고 나서 북조선 사람들이 불쌍하다느니 김일성이 죽지 않고 오래 산다느니 하면서 한참 말하고 나서, 자기는 모스크바에 못 가고 자기 사위가 자기 여권 수속 때문에 일시 모스크 바로 떠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기집에서 자고 아침에 사위를 만나 토론해 보자는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할머니와 함께 사위(오쎄르게이)를 만났는데 그는 아무런 증명서도 없이 어떻게 가겠느냐고 하며 이렇게 말했다.

『증명서 없이 가자면 열차로 가야 하는데 열차는 7일간 가야 해요. 그런데 나는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오랫동안 시간을 낼 수 없어요.』

할머니가 옆에서 어떻게 잘 생각해보고 도와주라고 하자 쎄르게이는 한 가지 방법은 남의 신분증을 빌려가지고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인데 이건 위험하고 또 신분증을 빌리자면 돈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대담하게 한 번 해보리라 마음먹고 신분증을 빌리는데 돈이 얼마나 드느냐고 물었다. 2~3천 루블이 면 된다는 것이다. 그때 나에게는 미화 100달러와 소련돈 4,500루블이 있었는데 100달러를 내주면서(당시 1달러는 40루블 정도) 신분증도 빌리고 비행기표도 준비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쎄르게이는 내일 당장 떠나자고 하면서 잠간 나갔다 들어오더니 신분증을 빌리려고 했던 친구가 출장가고 없으니 며칠 후에 떠나자고 하였다.

며칠 후인 9월 6일 저녁 쎄르게이는 나를 찾아와 신분증과 비행기표를 다 준비했으니 내일 아침 11시 비행기로 떠나자고 하면서 신분증의 이름과 생년월일 같은 것을 외우라고 하였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오쎄르게이와 그의 처 오따찌야나와 같이 비행장으로 나갔다. 우리는 혹시 북조선 안전원들이라도 있을까봐 으슥한 곳에서 약 15분가량 기다리는데 모스크바행 비행기를 타실 분들은 개찰구로 나오라는 안내 방송원의 목소리가 울렸다. 극도의 긴장으로하여 쿵쿵 울리는 심장의 박동 소리가 귓가에까지 울렸다.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경찰은 신분증을 대조하지도 않고 그냥 통과 시켰다.
후- 하나님! 그때 시간은 하바로프스크 시간으로 오전 10시 30분경이었는데 7시간만에 모스크바로 날아오니 모스크바 시간으로 아침 10시 40분이었다.

모스크바 공항에 내린 후 나는 『후- 이젠 됐구나.』하고 긴장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날씨는 안개가 꼈는지, 구름이 꼈는지 분간하기 어렵게 음침하고 안개같은 가는 이슬방울들이 쌀쌀한 바람에 실려 온 몸을 감싸며 우수수 떨려났다. 그때 음침한 모스크바의 날씨와는 달리 나의 가슴은 성공하였다는 기쁨으로 가볍게 설레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나의 앞길에는 기쁨이 아니라 죽음으로의 언덕과 간고한 시련의 가시 덤불길이 놓여 있었다. 파란 곡절이 놓여 있는 자기의 운명을 내가 어찌 알 수 있었으랴.
우리는 공항에서 모스크바 안내 약도를 하나 사들고 대사관을 향하여 떠났다. 달리는 차에서 차창 밖을 내다보노라니 생각했던 모스크바와는 너무도 달랐다. 어둠에 잠긴 듯한 음침한 날씨에 건물들도 대체로 구식 건물, 말 한 마디 없이 차를 모는 운전수 역시 무뚝뚝한 표정이다. 그러나 여기가 바로 세계적인 대도시라고 생각하니 잠자고 있는 크나큰 괴물과도 같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