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사랑이야기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다/ 안희환

안희환2 2009. 2. 24. 09:17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다/ 안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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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가운데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인생이 영원하지 않으며 인생의 영광스러운 때도 곧 지나간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풀에 대한 또 하나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약한 존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동물들이 밟고 지나가도 한 마디 항변조차 못하는 것이 풀입니다. 잡아 뽑아도 제대로 버티지도 못한 채 뽑히거나 잘리는 것이 풀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연약합니까?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셨는데 흙으로 빚어 만들었다고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철이나 다이아몬드로 만들면 튼튼해서 자동차에 부딪혀도 끄떡하지 않을 텐데 왜 하필이면 흙일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튼 사람을 흙으로 만들었다고 할 때 그 역시 약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깨지기 쉽고 부서지기 쉬운 것이 흙이기 때문입니다. 성분이 같더라도 돌은 단단한데 흙은 그 단단함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람이 정말 약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늘을 날아다니고 우주를 향해 나아가며 모든 동물들 위해 군림하고 신기한 것들을 만들어 내지면 여전히 연약하고 깨지기 쉬운 존재가 사람 아닌지요? “인간은 초극해야할 그 무엇이다”라고 외치면서 초인을 부르짖었던 니체도 결국 발작을 하면서 고통을 겪을 것을 보면 어느 누구라도 큰소리 칠 수만은 없는 존재가 사람이고요.

 

지저스 아미 컨퍼런스를 앞둔 시점에 저는 저 자신을 보면서 사람의 연약함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거창하고 대단한 사건을 겪거나 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평범하고 단순한 일일 수 있는데 그 경험을 통하여 제가 얼마나 다치기 쉬운 존재인지 깨닫게 된 것입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면서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놀릴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한번 웃고 넘어가 주시길 바랍니다.

 

이마트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심방용 음료수를 사려고 음료수가 전시된 곳으로 갔습니다. 제주 감귤이 괜찮아 보여서 진열된 제주감귤 상자 중 하나를 잡아 빼려고 손을 넣었습니다. 순간 제 손 끝에 통증이 느껴졌는데 제주감귤 상자의 거친 부분에 둘째손가락을 벴기 때문입니다. 피가 스며나왔는데 그 후로 며칠 동안 컴퓨터로 글을 쓰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릅니다. 종이 상자에 손가를 베고 피를 흘리는 제 모습이 얼마나 연약합니까?

 

둘째 동생이 운영하는 마트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물건들이 진열된 가게뒷문을 열고 나가면 물건들을 쌓아놓은 더미들이 있습니다. 그 뒷면에 물건들이 없기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순간 제 몸은 아래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평지라고 생각했던 그곳이 사실은 평지가 아니고 급경사로 이루어진 계단이었던 것입니다. 어둡기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하고 굴러 떨어진 저는 계단 모서리에 온 몸이 찍히는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후유증은 감귤상자에 손가락을 벤 것보다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머리, 어깨, 목, 옆구리, 엉덩이, 종아리가 다 아팠습니다. 근육을 덜 뭉치게 하고 덜 아프게 하는 약을 사먹었는데 여전히 몸이 아팠습니다. 일주일 정도가 지나 겨우 통증이 줄어들기 시작하였는데 그래도 계단 모서리에 닿았던 부분의 통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조금 어둡다고 제대로 보지 못하는 눈과 조금 굴러 떨어진 것으로 온 몸이 아픈 것을 보면 제 몸이라는 게 얼마나 약한 것인지 파악이 됩니다.

 

이렇게 약한 몸, 다치기 쉬운 몸이니 소중하게 다루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저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 역시 연약하고 깨지기 쉬운 존재이니 역시 귀하게 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약하기 때문에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약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신경 써서 보살피고 애정을 쏟아야 하는 존재가 사람이라고 할 때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위해주는 삶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