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에서 미끄러진 후/ 안희환
몸의 균형 감각이 남보다 떨어지는 저로서는 미끄러운 바닥이 질색일 수밖에 없습니다. 덕분에 빙판길을 좋아하지 않으며 눈 쌓인 길이나 스케이트장 등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런 곳을 가게 되면 무척 조심합니다. 잘못 넘어지면 온 몸이 멍투성이가 되고 활동하는데 지장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심한다고 안전한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얼마 전의 일입니다. 새벽에 일어나 계단을 내려가다가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계단에 물기가 있었는데 그 물이 얼면서 빙판이 된 것을 모르고 밟은 탓입니다. 다행히 계단 위쪽이 아니라 아래쪽이었기에 한참 굴러 내려가는 것은 면할 수 있었지만 다리와 엉덩이가 계단 모서리에 부딪히는 것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대체 누가 계단에 물을 묻혀 놓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주저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고 몸을 움직여보았는데 허벅지와 엉덩이의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움직이지 못할 만큼의 고통은 없었기에 하루 정도 지나면 괜찮으려니 생각하고 하루를 살았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제 기대는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허벅지와 엉덩이의 통증은 여전했고 어깨와 목까지 아파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둘째 아들 효원이는 제 무릎에 앉으려고 합니다. 계단에서 넘어져 타격을 입은 다리는 비쩍 마른 효원이의 몸무게도 견디지 못합니다. 살그머니 효원이를 밀어내니 다시 올라옵니다. 아빠 다리가 아파서 그런다며 다시 밀어냈는데 섭섭해 하는 눈치가 역력합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효원이를 무릎에 올려놓을 형편이 아니니.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어깨는 여전히 아프고 목도 뻣뻣합니다. 허벅지의 경우 가만히 있으면 아무렇지 않아도 무게감을 느끼거나 뭔가에 닿기라도 하면 아픔이 느껴집니다. 괜찮아진 곳은 엉덩이 뿐입니다. 아내는 병원에 가보라고 하지만 병원이라면 질색을 하는 저로서는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병원에 가서 덜 고생하느니 병원에 가지 않고 조금 더 고생하자는 것이 제 철학이기도 하고요(병원에 하도 질려서).
앞으로 겨울이 다 지나가려면 적어도 2개월은 더 있어야 하는데 개인적으로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해봅니다. 눈이 많이 내리면 그 자체로 길이 미끄러워지고 쌓인 눈이 얼어버리면 길은 그야말로 빙판길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몸의 상태에서 한 번 더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요.
문득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넘어져 다리가 아파도 절만큼이 아닌데도 이렇게 미끄러운 바닥을 불편하게 생각하는데 다리를 저는 사람들은 얼마나 빙판길이 힘겨울는지요? 목발이나 휠체어의 도움을 입어야 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힘겨운 겨울나기가 되겠는지요? 그 동안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살던 저의 좁은 생각에 대해 반성을 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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