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한 노숙자 할아버지/ 안희환
노숙하는 이들을 많이 보곤 하지만 그들 중 특이한 분이 한 분 있습니다. 그 분에겐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째로 그분은 할아버지이십니다. 적어도 환갑은 지나신 것 같습니다. 물론 노숙을 하는 분들이 고생을 하는 덕에 실제 나이보다 많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그런 것을 감안한다 해도 연세가 많은 분임에 틀림없습니다.
둘째로 그 할아버지는 수염을 기르고 계십니다. 한두 달 기른 수염이 아닙니다. 한 뼘 혹은 그 이상으로 수염이 자라있으니까요. 머리보다 관리하기 더 어렵다는 수염을 그렇게 길게 기르면서도 지저분하지 않게 관리를 하고 있으니 노숙하는 분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할아버지에게 수염은 불가불리의 관계인 것처럼 여겨집니다. 수염 없는 그분의 모습은 상상이 가지 않으니까요.
셋째로 그 할아버지는 날마다 걷습니다. 보통의 노숙자들이 신문이나 종이 박스 등을 깔고 누워서 지내거나 하는 일이 많은데 그 할아버지는 잠을 자야하는 시간 외에는 끊임없이 걷는 것입니다. 제가 산책을 좋아하기에 걷다가 그분을 만날 때면 늘 활기차게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습니다. 마치 분명한 목적지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넷째로 그 할아버지는 돈을 구걸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먹고 사시는지 어떻게 굶주림을 면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아무튼 그 분이 구걸하는 것을 본적이 없습니다. 한번은 만두를 사 가지고 집으로 가다가 그 분을 지나쳤는데 마음이 편하지를 않았습니다. 되돌아가서 집에서 먹으려 하던 만두를 그 할아버지에게 드렸습니다. 또 한 번은 빵을 드리기도 했고요.
다섯째로 그 할아버지는 술을 입에 대지 않습니다. 보통의 경우 술 취한 노숙자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심지어는 추운 겨울에 술에 취한 채 길에 누워 있기에 경찰에게 연락하여 데리고 가게 한 적도 여러 번입니다(차마 집으로 데려가지는 못했음). 그러나 할아버지는 늘 정신도 몸가짐도 반듯합니다. 자세가 흐트러져 있는 것을 본적이 없습니다.
며칠 전 산책하는 중에 그 할아버지를 또 봤습니다. 저는 얼른 다가가서 할아버지에게 만 원짜리 한 장을 드렸습니다. 혹시 식사를 못하셨다면 밥이라도 사 드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는 그 돈을 받으면서 말했습니다. “고마워.” 돈을 받기는 하는데 결코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고맙다고 말하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역시 특이했습니다.
사실 기회가 된다면 그 할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살아오신 삶의 과정이나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계신지를 묻고 싶습니다. 또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특징들의 이유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마음만 있지 실천은 못하고 있습니다. 공연히 할아버지의 자존심을 건드려서 기분을 언짢게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제가 처음 그 할아버지를 보았을 때에 비해 지금은 더 나이가 들어 보입니다. 아무래도 세월의 무게는 사람을 짓누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한 동안 산책하는 길에 그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아서 궁금해 하다가 다시 나타나셨을 때 반가워했던 적이 있는데 부디 건강하셔서 마음껏 걸어 다니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함께 있을 수 있는 친구 분도 생기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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